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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동아빠 구재학 Sep 03. 2022

벤처 창업에서 글로벌 기업까지 (외전 2)

오오미야 사택 에피소드

1) 외국인이 일본에서 사택 구하기


2005년 1월 법인 설립과 함께 가장 먼저 한 것이 사택을 얻는 것이었다. 이유는 비싼 호텔비를 아끼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회사의 누구도 출장 가서 비용을 아끼라고 한 적이 없고 오히려 고사무열 사장과 김형석 이사는 밥 굶지 말고 맛있는 것 먹고 현지에 좋은 곳에도 가보라고 당부했지만, 우리는 '회사 돈은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도쿄외국어대학교 출신의 유승을 대표는 나보다 먼저 도쿄에 가서 법인 설립 행정 업무를 위해 관공서를 돌아다니는 동시에 사택을 구하러 다녔는데, 외국인에게는 아무도 집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는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빌라를 구하고 싶었으나, 도쿄에서는 아예 집을 보여주지도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기에 사무실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 오오미야구(大宮区, Ōmiya-ku, Saitama City, Saitama Prefecture)의 한적한 마을까지 가게 되었고,

그나마도 유대표의 일본인 동창이 개인 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겨우 방 2개 거실 1개에 부엌이 달린 일명 2LDK 빌라를 구했다.


사택에 들어간 후 첫 번째 쇼핑 목록은 이불과 전기담요였다. 도쿄, 아니 사이타마의 겨울은 바람이 많이 불어 꽤 추웠고 한국과 달리 온돌도 겹창문도 없는 일본의 빌라에서 자려고 누우면 입김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가스보일러가 있었지만 온수 전용이었고, 전기 온풍기는 선풍기처럼 켜놓고 있는 동안에만 직선 방향으로 따스한 바람을 제공할 뿐이었다.

'회사 돈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는 강박관념을 가진 두 남자가 한 집에 있다 보니, 둘 중에 상대적으로 조금 현실적이었던 나는 잠자는 동안만이라도 밤새 전기담요와 온풍기를 틀고 싶었으나 유대표는 일본은 전기세가 비싸니 전기를 아껴야 한다며 '1시간 취침 타이머'를 고집했다. 나는 사업을 하기도 전에 타향만리에서 감기라도 걸리면 낭패라며 설득한 끝에 '2시간 타이머'로 합의를 보았으나, 2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추위에 잠에서 깼고 이불을 침낭처럼 뒤집어쓰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잘 수밖에 없었다.


2) 신혼살림, 아니 사택 살림 장만하기


추위를 피하기 위해 이불과 전기담요는 샀지만, 사택은 그야말로 집만 덩그러니 있었기에 살림살이를 하나씩 장만해야 했다. 더욱이, 한 달 후에 서울 본사로부터 기술팀 직원 2명이 파견되어 사택에 합류할 예정이었기에 그들이 오기 전에 살림살이를 장만해야 했다.

유대표와 나는 매일 퇴근할 때마다 오오미야역 앞에 있는 DOM쇼핑센터(DOM ショッピングセンター)에 들러 그릇이며 접시, 수저 등등 살림살이를 사들였다.

결혼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신혼 때는 살림을 끝도 없이 사들여도 무심코 손톱을 깎으려면 손톱깎이도 없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매일 쇼핑센터 주방코너와 식료품 코너를 들러서 쇼핑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점원들이 우리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친절한 듯했던 그 눈빛이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이상하게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매일 저녁 30대 중반의 두 남자가 다정하게 들러서 외국어로 서로 이게 예뻐 저게 예뻐하면서 쇼핑을 하고 찬거리를 사가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게이 부부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순간 창피했지만,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도망가기는커녕 짓궂게도 오히려 시식코너에서 서로 다정하게 시식음식을 먹여주면서 사람들의 오해의 시선을 즐겼다.


3) 세계의 VISA가…


사택을 아늑하게 꾸미려면 살림살이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소파, 침대 등 가구도 있어야 하고 TV, 냉장고, 세탁기 등 기본적인 가전제품도 있어야 한다. 냉장고와 세탁기는 필수품이니 이불과 전기담요 다음으로 가장 먼저 장만을 했으나, TV와 가구는 천천히 장만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기술팀 직원들이 오기 전에는 마련해야겠다 싶어 가구는 버스로 1시간 거리의 리싸이클링 숍, 즉 중고가구점에서 꼬박 반나절 발품을 판 끝에 쓸만한 소파와 침대를 구했다. 반나절 동안 돌아다닌 게 어찌나 힘들었던지 마침내 좋은 물건을 찾아냈을 때 우리는 마치 얼싸안고 방방 따는 듯한 표정과 분위기였는데, 그때 느꼈다. DOM쇼핑센터 점원들이 우리에게 보냈던 그 눈빛을.. 아무려면 어때? 어쨌든 좋은 물건을 건졌잖아. (참고로, 나는 ROTC 장교 출신으로 정상적인 신체와 정신을 보유했고 유대표는.. 어쨌든 내 타입은 아니었다 ㅋㅋ)

이제 남은 건 TV였는데, 이건 중고로 사고 싶지는 않았고 대신 최대한 저렴한 제품으로 사기로 했다.

어느 날 퇴근 후에 우리가 살림살이를 장만하러 거의 매일 들르곤 했던 DOM센터 5층 가전코너에 TV를 사러 갔는데, 우리가 원하는 저렴한 TV를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직원에게 TV 담당 직원을 불러달라고 했는데, 잠시 후 온 직원은 척 봐도 70에 가까운 할아버지였다. 몸에 털이 하나도 없는 무모증 환자였는지, 서투르게 그린 눈썹에 누가 봐도 가발인 것을 알 수 있는 코미디 프로에서나 볼 수 있는 싸구려 가발을 쓰고 있었다. 게다가 친절하기는 한데 성격이 얼마나 급한지, 우리가 뭔가를 물어보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둥지둥 뛰다시피 우리를 끌고 가서 빨리 답변을 해주려고 서두르는 나머지 말을 더듬으며 구구절절하게 제품 정보를 읊어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SONY 제품 중에서 3만엔(30만원 가량) 정도의 가성비 좋은 제품을 사기로 결정했는데, 친절한 무모증 할아버지가 배달을 맡기지 않고 우리가 직접 가져가면 5천엔(5만원)이 할인된다는 것을 뿌듯한 듯이 알려주었다. 우린 5만원이 어디냐 싶어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기분 좋게 계산을 하려고 법인카드를 냈는데, 웬일인지 승인이 나질 않는 것이었다. 성격 급한 무모증 할아버지는 열 번 정도 시도를 하다가 안되니 카드사에 직접 전화를 해서 급한 성격에 분을 참지 못하고 다짜고짜 큰소리로 카드사 고객센터 직원을 나무라는 것이었다.

“바쁘신 손님들이 귀한 시간을 내서 오셨는데 ‘세계의 VISA’가 서비스를 이렇게 형편없게 만들어서 손님들을 기다리게 하면 되겠느냐”가 요지였던 듯하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전화한 곳은 VISA가 아니라 결재시스템을 담당하는 VAN사였고, 생각해보니 그건 결재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법인카드 한도 부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살림살이를 사들이느라 카드를 너무 많이 썼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계산해보니 한도 부족이 확실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너무나 진지하게 고객센터 직원을 나무라고 계셨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영문도 모른 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마 한도 부족이라는 말은 못 하고, 현금으로 낼 테니 그만하셔도 된다고 여전히 흥분한 할아버지를 겨우겨우 말리고는 할아버지가 진상을 알아차릴까 두려워 허둥지둥 현금으로 결제를 마치고 박스 제품을 가지러 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한바탕을 치르고 난 뒤에도,

- 할아버지가 가져오신 TV 박스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무모증 할아버지에게 카트를 빌려서 사택까지 가져가려고 나온 일,

이런 모양의 구르마 위에 TV 박스를 얹고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우산도 없이 장대비를 맞으며 갔다.

- 카트에 TV 박스를 싣고 쇼핑몰을 나서자 마침 내리기 시작한 장대비에 우산도 없이 포장이 안된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지나 사택으로 가다가 박스가 떨어지면서 엄청 크게 쿵 소리를 내는 바람에 25만원이 허무하게 날아갔을까 봐 우울해졌던 일,

-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뛰쳐나온 동네 주민 아저씨가 우리의 비굴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레이저를 1분이나 발사하고 들어간 일,

- 다행히 집에 돌아와 박스를 열어보니 TV가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 멀쩡해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역시 '세계의 SONY'라며 칭찬했던 일.. 등등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TV를 사택꺼지 무사히 공수해 올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약 한 달 반에 걸친 사택 꾸미기 대작전을 마쳤으나,
추가로 파견될 직원은 2명이 아니라 4명으로 정해졌고,
방 2개 거실 하나인 사택에서 6명이 햄뽁으며 동거동락하게 되었다.



-- 17편에서 계속


벤처 창업에서 글로벌 기업까지 - Intro

1편 - 한국 최초의 CDN 전문기업 씨디네트웍스 탄생의 비화 

2편 - 창립 멤버

3편 - 통신 3사의 공동 투자, 첫 번째 그림의 완성

4편 - 처음 맞은 치명적인 위기

5편 - CDN 업계 1위 등극

6편 - 창업 후 첫번째 계약

7편 - 온라인게임 5개사 수주, 시장 개척을 통한 진정한 1위 도약

8편 - 국내 최초, 어쩌면 세계 최초 HD 고화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9편 - 총성 없는 가격 전쟁

10편 - Next Market은 어디인가?   

외전1 - 첫 해외출장 에피소드

11편 - CDN 3사 통일 & 後3社 시대 개막

12편 - 현해탄을 건너온 승전보, 글로벌사업의 시작

13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1

14편 - 맨주먹으로 동경에 서다, 일본법인 설립 - 2

15편 - 꿈은 이루어진다, 코스닥 상장

16편 - Softbank와 제휴, 일본 대기업 공략

외전2 - 오오미야 사택 에피소드

17편 - 글로벌 도약을 위한 프로세스 재정의

18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1

19편 - 해외사업을 넘어 글로벌기업이 되기 위한 조직개편 - 2

20편 - 글로벌 조직 운영을 위한 과감한 결단, Global PI Project

21편 - 처음이자 마지막 Layoff

에필로그 - 내가 이 글을 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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