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선생님의 70cm 일기: 다시

2층 교실에서 추락 후 사람이 우선인 곳에 서기로 한 17세의 생존 전략

by 박혜현

14살 제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그날의 청소 지시. 저 역시 수천, 수만 번 그날을 되감기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짜로 싸워야 했던 것은 그 말을 내뱉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고 이후 제 앞에 놓인 냉혹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지루하고 긴 병원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던 날을 기억합니다. 병원은 역설적이게도 안전한 요새였습니다. 그곳엔 나 같은 사람들이 가득했고, 휠체어는 당연한 풍경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세상은 날카로운 가시를 세운 채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리적인 통증보다 무서운 건,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할 앞날에 대한 막막함이었습니다.


퇴원 후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던 17살의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우연히 TV에서 '장애인의 날 특집극'을 보게 되었습니다. 화면 속에는 저와 같은 장애를 가진 성인들의 삶이 조명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상 속 풍경은 제가 꿈꾸던 '어른'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좁은 방 안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모습,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문밖조차 나가지 못하는 처절한 고립. 영상 속 그들의 눈빛에는 생기가 아닌,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TV 속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몇 년 뒤 제가 마주할 '예정된 미래'였습니다.


"내 미래가 저렇게 처절하면 어떡하지? 나도 평생 저렇게 살아야 하나?"


병원 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를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아까워졌습니다. 방 안에 앉아 과거의 사고 순간만을 곱씹기엔, 저 영상 속 주인공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입니다.


휠체어를 타야 하는 현실은 바꿀 수 없지만, 저 처절한 미래만큼은 반드시 내 손으로 바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명줄을 잡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인생의 '골든타임'을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열심히 사는 것을 넘어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휠체어를 탄 내가 가장 당당하게 숨 쉬며, 차별받지 않고 내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이윤 추구보다 사람이 우선인 곳, 조금 느리더라도 한 사람의 가치를 끝까지 기다려주는 곳, 무엇보다 장애 감수성이 가장 높은 곳이 어디인지 치열하게 찾았습니다.


제 결론은 '학교' 그중에서도 '특수교육'의 현장이었습니다. 나처럼 난간 끝에 서 있을 아이들에게 추락이 끝이 아님을 몸소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내가 겪은 처절한 공포를 내 제자들은 겪지 않게 하겠다는, 17살 소녀의 가장 뜨겁고도 냉철한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제 사고를 '비극'이라 말하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저는 그 비극의 끝바닥에서 오히려 저를 지탱해 줄 '사람의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원망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내 인생의 경로를 직접 설계하기 시작한 그날, 저의 진짜 인생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강단에서 세상을 향해 말합니다. 나를 주저앉히는 줄 알았던 그 결핍이, 사실은 나를 가장 나답게 살게 하는 강력한 엔진이 되었노라고. 그리고 확신합니다. 사람이 우선인 곳에 서기로 한 나의 이 전략적인 선택이, 누군가의 처절한 미래를 바꾸는 지도가 될 것임을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휠체어 탄 선생님의 70cm 일기: 자유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