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배려보다 뜨거운 소속감을 원했습니다.

배려라는 이름의 소외, 그 너머의 교실

by 박혜현

교실 현장에서 아이들을 보다 보면 마음이 복잡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특정 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아이에게 "특수학급에 가서 너에게 더 유의미한 활동을 하자"라고 권유하는 장면들.
아이를 아끼는 선생님들의 따뜻한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집니다.


휠체어를 타고 살아오며 저를 가장 깊은 늪으로 밀어 넣었던 건, 제가 가진 신체적 제약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자리가 지워지는 '배제'였고,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반복된 배려' 속에 숨겨진 지독한 소외감이었습니다.
"너는 힘드니까 쉬어."
"너는 못 하니까 다른 거 하자."
친절함으로 포장된 그 말들은 제게 절망감을 주었습니다. "너는 우리와 섞일 수 없는 존재야"라는 선언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리적으로 도저히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간절히 원했던 건 특별한 대체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방법이 조금 다르더라도, 그저 그 공간에 친구들과 함께 머물 수 있는 '소속감'이었습니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더라도 친구들 곁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 그것이 제가 세상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확인이었습니다.


학교는 '효율적인 학습'을 넘어서는 곳이어야 합니다. 남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참여할 수 없다 하더라도,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 당당히 내 자리가 있음을 확인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 소속감을 경험하며 자란 아이만이 훗날 사회에 나가서도 누군가를 쉽게 배제하지 않는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교실에서 '배려'라는 이름의 선을 지우고, '함께'라는 이름의 자리를 만듭니다. 우리는 완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하기 위해 이 교실에 모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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