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먹지 못해도, 품격 있게 식사할 권리

“선생님, 왜 직접 먹여주시나요?”

by 박혜현

​특수학교에 첫발을 내디뎠던 시절의 저는 의욕이 참 앞서는 교사였습니다. 아이가 단 한 가지 동작이라도 스스로 해내는 것이 교육의 유일한 승리라고 굳게 믿었지요.
​어느 점심시간, 묵묵히 아이에게 밥을 떠먹여 주시는 선배 선생님을 뵙고 저는 참지 못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아이가 스스로 먹는 법을 배우게 하지 않고 왜 직접 먹여주시나요? 조금 힘들더라도 자립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나름의 교육적 소신을 담아 건넨 질문이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제 교육관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만약 이 아이가 연습을 통해 스스로 식사할 수 있게 된다면, 난 몇 날 며칠이라도 기꺼이 가르칠 거야.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면, 나는 이 아이가 ‘품격 있게’ 식사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교육이란 단순히 ‘할 수 있게’ 만드는 기능적인 훈련만이 아니라는 것을요. 때로는 아이가 가진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품위와 자존감을 지켜주는 것 또한 교사의 소중한 역할임을 배웠습니다.

​입가에 묻은 음식물을 정성껏 닦아주고, 정갈한 모습으로 식사를 마칠 수 있게 돕는 그 손길. 그것은 무능을 확인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당신은 도움을 받더라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무언의 고백이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이자 특수교사로 살아가는 저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내가 전하는 교육은 누군가의 삶을 ‘품격 있게’ 만들고 있는가?”


​우리는 때로 ‘독립’이라는 높은 벽 앞에 좌절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벽을 넘지 못하더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자리에서 ‘존엄’이라는 꽃을 피울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그 꽃이 시들지 않도록 묵묵히 곁을 지키는 정원사가 되기로 마음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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