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너무 쓰고 싶었던 이야기
제조사에 다닌다면, 아무래도 자사의 프로덕트를 쓰지 않으면 눈치를 볼 일이 많을 것이다. 예전에 전해 들은 일화로, 어떤 분이 유명한 참치캔 회사에 근무를 하시던 시절에 팀원의 집에 초대받아 집들이를 갔었는데 집에서 자사의 참치가 아니라 다른 회사의 참치캔이 있는 것을 보고 집에서 부하 직원을 혼냈던 경험이 있었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후회된다고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이런 일화가 어이가 없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럴만하다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참치캔이 아니라 다른 제품으로 비슷한 일화가 우리나라.. 를 넘어서 전 세계에서 많이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버전은 휴대폰이었다. 휴대폰을 만드는 P사에 다녔기 때문에 무조건 휴대폰은 P사 것을 써야만 했었다. 그냥 눈치가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는데 물리적인 장벽이 있었다. 휴대폰 제조사였기 때문에 보안이 꽤나 강했고 내부 정보를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디지털 디바이스들은 내부적으로 승인을 받은 후 받을 수 있는 특정 보안 스티커를 부착해야만 사무실에서 가지고 나갈 수 있었다. 즉 휴대폰,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등등등 모두 사무실에 가지고 들어올 순 있지만 스티커가 없다면 가지고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사무실 1층 로비에 임직원들을 위한 사물함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휴대폰 빼고 모든 기기는 넣고 사무실로 올라갔었다. 즉 업무시간에 필요 없지만 지하철에서 사용하던 mp3 플레이어나 휴대용 게임기 같은 건 다 여기다가 두고 올라가곤 했었고, 휴대폰은 승인받은 스티커를 붙이고 가져 다녔다. 스티커를 발급받는 절차는 자사의 휴대폰이 아니라면 꽤나 눈치 보이는 과정이었다.
무조건 자사의 휴대폰을 사용해라 라는 분위기가 매우 강압스러웠지만, 회사는 휴대폰을 제공해주지도 않았고, 휴대폰 구매 시 그 어떤 혜택이나 지원도 해주지 않았다. 임직원은 그냥 강매 대상일 뿐이었다. 신입공채들을 강당에 앉혀놓고, 선물을 준다면서 휴대폰 사이즈? 의 상자들을 잔뜩 꺼냈을 때 다들 잠깐 흥분했었지만 휴대폰 고리를 하나씩 줬었다.
우리 팀에 이직해서 오신 어떤 분이, 입사 후에 핸드폰을 바꾸지 않고 타사 폰을 쓰고 있었는데 사무실을 지나가던 대표님이 이를 보고 지적을 했었다. 그 순간 사무실의 전체가 긴장감이 돌았고, 모두가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분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휴대폰을 구매하지 못했다고 둘러대었고, 대표는 스태프 직원을 시켜서 그분에게 휴대폰을 하나 선물 해주셨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나쁘지 않은 에피소드이나... 그분이 휴대폰을 선물 받는걸 팀의 모든 사람이 목격을 했었고, 휴대폰을 선물 받은 분에게는 그 휴대폰을 실제로 가지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압박이 들어왔었다. 이 또한 엄청난 꼰대 문화 같고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지 않으나 저걸 진짜로 받으면 안 된다 라는 그런 이상한... 압박이 있었고 그분은 휴대폰을 팀 워크샵시 경품으로 쓰라고 기증을 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왜 그래야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짜증이 난다.
그러다가 대한민국에 아이폰이 출시되었다. 스마트폰에 그 어떤 감흥도 없고 지루한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 당시에 아이폰이란 너무나도 빤짝빤짝하고 신기하고, 혁신적이고, 트렌디하고... 그냥 너무너무 가지고 싶은 물건이었다. 특히나 스마트폰을 기획하고, 맨날 들여다보는 고관여자들에게는 더더욱이 써보고 싶은 존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사의 성장을 위해서 강제로 해당 폰을 써보라고 하지는 못할 망정... 당연히 회사는 직원들이 아이폰을 쓰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는 너도 나도 너무 아이폰이 가지고 싶었기에, 용기를 내서 구입하고 전자결재 승인을 올려 스티커를 받아내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리고 나도 용기를 내서 스티커를 받는데 성공을 했었다. 기억이 가물 가물하지만 아마도 내가 인생 처음으로 샀던 아이폰은 아이폰4였고, 세상에 이렇게 예쁜 디바이스가 있을까 의 기분이었다. 너무 소중했고, 너무 예쁘고, 너무 좋았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의 사정이 점점 더 안 좋아지면서 사내 규정은 점점 더 살벌해지기만 했는데 회사의 매출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휴대폰에 있어서는 당연히 더더욱이 세게 나왔었다. 휴대폰 스티커를 받는 규정이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막판에는 폰을 2개 사용 (그중 하나는 자사폰)인 경우 정도는 봐주는 분위기였다. 당시 우리 회사에서는 폰을 2개씩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아이폰을 쓰고 싶어서 일수도 있지만, 개개인에게 내려오는 휴대폰 판매 할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사원이 최소 N개의 휴대폰을 개인적으로 팔아야만 하는 영업할당이 떨어지고 이에 대해 매일매일 직속 상사가 몇 개 팔았는지를 확인하곤 했다. 스마트폰이란 한두 푼짜리가 아닌 데다가, 통신사와의 계약을 해야 하는 복잡함도 있고, 당시에는 아직 스마트폰이 생소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리고 5만 원을 할인해 준다 외에는 그 어떤 혜택도 없었기 때문에 휴대폰을 파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못 이이고 그 당시 소위 말해 "자폭"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냥 자기 이름으로 휴대폰을 하나 더 개통하고 할당 1개를 해치우는 것이었다. 나도 그중 한 명이긴 했다.
그러다가 회사가 폰을 2개 써도 아이폰을 쓰는 꼬락서니가 보기 싫었나 보다. 타사 폰의 경우 예전보다 더 높은 결재 라인으로 승인을 받아야 하고, 승인을 받아서 스티커를 받더래도 1주일 후에 만료되는 정책으로 변경되었다. 결론적으로 타사폰 쓰지 말란 소리였다. 정책이 바뀌자 너무 화가 난다며 본인은 휴대폰을 쓰지 않겠다며, 출근 시에 휴대폰을 로비 사물함에 두고 출근하는 회사 후배도 있었다.
P사를 퇴사하자마자 아이폰으로 바꾸었었다. 그리고 다시는 안드로이드폰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내 돈으로 쓰는 휴대폰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감사하다. 그 당시에 억눌렸던 억한 심정에 난 아직도 아이폰을 고집하고 마냥 저냥 아이폰이 좋다.
세상에 완벽한 회사는 없고, 지금 회사도 다들 불평불만이 많지만 특정 참치캔이나, 휴대폰이나, 앱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상사에게 불려 가거나 하지 않아서 갑자기 너무 감사하며,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월요일 출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