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르트색 잠바
회사에서 옷을 나누어 주는 일은 꽤나 흔한 것 같다. 다들 살면서 회사 잠바나 회사 후디, 혹은 회사 행사 때 티셔츠를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지난 5년 동안 나에게 정말 많은 옷을 주었고, 현재 사무실 있는 곳에 점심시간에 돌아다니면 각종 회사 옷들을 구경할 수 있다. 꽤나 도톰한 패딩에 회사 이름이 세겨져 있는 것을 보고 좀 부럽기도 했었다 (매우 따뜻해 보였기 때문에).
첫 번째 회사에서는 입사할 때 "근무복"이라는 것을 제공해 주었다.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한국야쿠르트 (검색해 보았더니 한국야쿠르트 회사 이름이 hy로 바뀌었다는 걸 오늘 알았다)에서 파는 작고 달달한 바로 그 요구르트 색깔의 잠바를 주었고 우리 모두 요구르트 잠바라고 부르곤 했었다. 남녀 디자인이 나누어져 있었고, (남자버전이 조금 더 길고 소위 말해 더 잠바 느낌이 났고, 여자버전이 조금 크롭 된 버전이었다) 한겨울의 추위를 막아줄 만큼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잠깐 자리를 비울 때 (보통 담배 피우러 갈 때) 딱인 도톰 함이었다.
이 옷을 내가 지금 "근무복"이라고 적었는데 왜냐면 정말 말 그대로 근무복이었기 때문이다. 입사를 해서 회사 생활 가이드라인에 대한 책자를 받아 보았는데 (여기서 또 잠깐 슬픈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자를 만들었던 팀은 회사에 무슨무슨 아카데미 팀이었으나 회사 사정이 안 좋아서 내가 입사했을 당시엔 이미 조직이 없어졌었다) 거기에 지침사항으로,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는 근무복을 입고 근무할 것이며, 근무복의 지퍼를 3분의 2까지 채우고 일하라는 아주 구체적인 지시 사항이 있었다. 이런 짜치는 지시사항을 적었던 담당자분은 지금 이 순간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이 근무복은 퇴사할 때 꽤나 문제가 되었었다. 퇴사 시 근무복을 회사에 반납하는 것이 사규였는데 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근무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퇴사할 때쯤 회사가 많이 기울어져서 구조조정도 많이 하고 자진 퇴사도 엄청 많이 해서 퇴사자가 줄을 섰었는데, 그래서 근무복이 없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근무복을 훔쳐서 제출하고 퇴사를 했고, 그렇게 근무복을 도난당한 사람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근무복을 훔쳐서 반납하고 퇴사하는 악의 고리 같은 행태가 발생했었다. 정말 막바지의 사람들은 어떻게 퇴사를 했을지 잘 모르겠다.
다시 사용할 수 없는 그 잠바를 왜 반납하라고 했을지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마도 아주 보수적인 시각으로 퇴사자가 회사이름이 달린 옷을 입고 기업 이미지를 안 좋게 하거나 회사를 다니는 척?을 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게 의도였을 것 같다. 비록 망해가서 모두가 도망 나가고 싶어 했던 그 회사 옷을 가지고 딱히 그 누구도 어떤 악의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받은 수많은 옷들과 기념품들을 퇴사 시 반납하지 않아도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