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한

기다림과그리움이 쌓이고 쌓여

by 김중근

어머니의 한


- 김 중 근


단풍이 가득한 산을 가득 채운 새파란 하늘 아래, 어머니는 텃밭에서 자란 배추를 솎는다. 아들의 채 가시지않은 숙취를 위해 구수한 된장국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두부를 성둥성둥 잘라 넣고 풋고추 잘게 썰어넣어 고향맛 나게 잘도 끓이셨던 어머니다. 술국 끓이시던 어머니는 대한 적십자로 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 멀거니 넋을 잃고 계신다. 한동안 눈의 촛점을 잃고 서성이신다. 일요일 모레까지 ‘남북 이산 가족을 위한 영상편지’ 제작이 있으니 ‘전주교육대학교의 교육회관’ 1층으로 9시까지 준비물을 챙겨서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는 성모님상 아래 성수(聖水)를 올려놓고 정성으로 기도한 보람이라도 찾으신듯 얼굴에 화색이 돈다.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으면 묵은 김치를 송송 쓸어서 부치개를 잘도 부치셨던 어머니는 1951년 1. 4 후퇴때, 임신 6개월의 몸으로 미국이 제공한 배편으로 피난 길에 나섰다. 아구리배에서 하선(下船)하다 피난민에 떠밀려 바다에 빠져 구사일생으로 구조되기도 하신 어머니다. 1월 백령도 앞바다의 살인적인 추위는 살을 베는 혹한이었슴을 생각하면 온 몸에서 전율이 흐른다. 아마 그 때 어머니께서 구조가 안되셨다면, 나 또한 뱃속에서 세상 구경도 못한채 불귀의 객이 되었으리라... 어머니는 언제나 우리들 앞에서는 좋은 모습만 보일려고 애쓰셨다. 몇십 년 달아맸던 당신의 한이 복받혀 올라와 슬픔이 된다. 더운 여름이면 팔 걷어 부치고 큰 양동이 다라에 두레박 물 받아 땀 범벅이된 나를 멱 감겨 주시던 어머니다. 당신은 변변한 옷이 없어서 늘 값싼 옷만 입으셨으나 아들이 밖에 나가서 기죽는 꼴 보기싫다고 늘 좋은 옷과 용돈을 주머니에 찔러주시던 당신이다. 이젠 머릿카락은 하얗게 바랬다. 꼿꼿하시던 등과 허리는 점점 활같이 휘어만 간다. 깊은 주름과 함께 늙어가는 어머니를 뵐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오늘은 “ㅂ애야! ㅊ자야 ! 정말 보고 싶다”고 애타게 불러대신다.


하루하루가 넘어갈 때마다 내일이면 고향에 돌아가 만나리라는 기대를 갖고 산지 어언 벌써 55년째.....남북의 기러기는 오늘도 오고 가건만 아직까지 가족들의 생사(生死) 여부도 모른채, 한많은 세월을 보낸 어머니다. 이북에 어머니의 친 자매가 두 분 계시다. 또한 이복 동생들도 몇 분 계시다. 하루도 그들을 생각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세월이다. 하늘은 늘 허전하고 눈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셨던 어머니다. 전화 한 통에 그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없으셨던 모양이다. 어느덧 평생을 기다림 속에 지쳐있는 당신이다. 지나온 세월은 한 줌의 먼지처럼 흩날린다.


어느 날 상공에선 쌕쌕이가 나르고 앞집 마당에서 폭격 소리가 요란해 잠시 피할 요량으로, 온 집안을 걸어 잠그고 몇가지 귀중품과 가재만 보따리에 황급히 챙겨서 나온 것이 마지막이 되셨다. 어머니가 두고 온 건 가족들이었지만 사실은 고향의 냄새, 골목의 빛까지도 함께 두고 온 것이었다. 가족이 불현듯 사라진 그 날 이후, 미친 듯 찾아 헤매다 행방불명 되어버린 날이 바로 생 이별이 된 것이다. 한참 재롱둥이였던 여동생들은 모든 이들로 부터 귀여움을 받았고 총명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입이 마르도록 주윗분들로 부터 칭찬이 자자하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 마다 그녀들이 어머니께 남겨둔 모든 기억들은 어머니의 힘이요 삶의 의미가 되셨다, 지금은 얼마나 알아 볼 수 없도록 변했는지 벌써 부터 가슴이 메어온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이제는 길에서 만나도 그녀들을 알아 볼 수 없슴을 원망한다. KBS. TV.에서 한때 이산 가족의 상봉 장면을 방영할 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생들이 행여 보이지 않을까...넋이 빠진 모습으로 시청하시기도 하셨다. 세월이 원망스럽다며 당신의 동생들과 비슷한 모습이라도 보이면 길거리에서 멀거니 서서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셨다.


그렇지만 어렸던 그녀들은 원망과 가슴 아픈 세월 때문에, 아마도 그들은 당신을 잊어버리고 미워할 것이라며 하루하루 자책을 한다. 당신이 보고싶어 했던 것의 몇 겁을 돌아 그녀들은 참고 견뎌주었는데, 그 세월 동안 당신의 아버지께서는 1978년 가을경 인천에서 돌아가셨다. 내일이면 돌아 갈 수 있으리라던 고향 땅의 한을 풀지 못하고 구천을 헤메고 계실 당신의 아버지다. “자나깨나 그녀들 생각뿐이었다”며 한숨을 내몰아 쉰다. 그렇게 생각하며 수십 년을 보내셨는데....“아! 꿈에라도 살아있다면 달려가서 덥석 안아, 살아 있어 고맙고 감사하다고 전할텐데...” 하시며 유언같이 한마디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아직도 그 방에 들어가면 선한 그녀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어린 나이에 헤어진 그녀들의 고생만큼이나 이야기 하다보면 어느새 당신의 두 눈에서 눈물이 하나 가득 고인다.


어머니는 이 곳 땅에서 슬하에 2남 1녀를 두셨다. 그래도 대학 교수로 있는 장남에게선 장녀와 아들이 있고, 큰 손녀 딸은 현재 E여대 졸업반이다. 손자는 군 입대로 YS.대학교를 다니다 휴학중이다. 둘째 아들에게는 아들만 둘이고 현재 모두들 대학에 다니며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막내 고명딸은 청주에서 설비 사업을 견실하게 운영하고 있는 사위와 남부럽지 않게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자랑스러워 한다. 한편 고향에서 장연고보 교사로 재직중이셨던 남편은 이곳에 내려와서 40중반에 고혈압 중풍으로 쓰러졌으나 지금은 건강을 회복해서 비교적 건강한 생활을 함에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녀들이 살아있다면 슬하에 모두들 성장해서 건장한 자손들을 두고 있을텐데 너무들 보고싶다고 하던 터였다. 그녀들이 당신 곁에 돌아올 수 만 있다면. 밤새워 지났던 모든 일 목 놓아 풀어놓고 미안했던 마음들 깨끗이 씻어버리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들 사진....그 놀때 그 귀여웠던 모습, 잠을 잘 때 그 행복한 모습, 학예회 때 그 깜찍하고 고운 모습들… 고히 간직한 사진첩들을 고향에 간직하고 있다면, 만나서 그것들을 펼쳐놓고 밤을 세워 55년의 한을 통곡하며 실컷 울어보겠고 한다.... 원통해서 그토록 목메어 불러보고 그리움에 지쳐 한시라도 잊을 수 없었던 내 어머니다. 그녀들의 숨결이 아직 저 하늘 아래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머니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이제야 남북의 문이 열릴 것 같이 호들갑을 떤다. 분단이라는 단단한 벽 틈 사이로, 한 줌의 빛이 비춰 그 빛 속에서, 혹시라도 그 아이가, 내 언니.., 내 조카…그 누구라도 살아서 걸어 나와 "언니 나 여기 있어"라고 나타나주길 기대 해보지만 마음 뿐이다. 한 걸음에 내 달릴 수 있는 거리지만, 당신의 혈육들을 수 십년 동안 보지 못하고 “남북 이산 가족 영상 편지” 를 그녀들한테 보내게 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기대가 크다. 세월이 당신을 믾이 변하게 했지만, 만약 그녀들이 살아만 있다면 한 줄의 단서를 보고도 그녀들은 당신을 알아 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는다...... 이젠 성사가 돼서 그녀들을 볼 수 있다면, 헤어짐이 벌써부터 두렵다고도 한다......고향 집에 두고 온 당신의 자매들을 너무 보고 싶어 통곡으로 보낸 시간과 세월을...이것으로 끝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반나절 동안 안절부절했던 이 시간까지 부시럭거리며 빛바랜 사진들을 꺼내보는 어머니, 오늘은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한다. 내일 모래 남북 이산 가족 영상 편지를 통하여 상봉될 수 있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리는 당신이다. 오로지 그녀들의 행복을 이 시간까지 기도한다. 절대 그 날까지 죽지 않고 살아서 기다리겠노라고 다짐하는 어머니다. 기다림은 언제나 조용하다. 이루어질 가능성은 종이보다 가볍지만, 이 날을 위해 어머니는 오늘도 북쪽 하늘을 향해 밥을 지었다. 그리움이 쌓이고 쌓여 이젠 그 무게에 등, 허리가 굽으셨다.


내가 중학교 입학할 때 꼬깃꼬깃했던 쌈짓 돈을 내놓으시며 영어 노트 사라고 두손을 꼬옥 잡아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은 이젠 보기에도 민망스러울 정도로 파란 정맥의 핏줄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다. 그때는 그리 고우시더니 이제는 마디마디 마다 거칠어진 손마디로 눈물을 딲고 계신다. 가족들을 위해 이불 호청을 뜯어서 빨래하다, 비가 오면 후다닥 뛰어 나가셔서 걷어들이곤 했던 어머니다. 짧은 햇살에 말리던 내 어머니다. 빳빳하게 풀 먹여서 토닥토닥 다듬이질 소리가 난다.마치 당신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로 들린다. 구김을 펴느라 인두질하던 문칸방에서 울음이 새어나온다. 울음을 간신히 삼키고 계신 내 어머니의 한이 이번 기회로 풀어지려는지 또 기다려 본다....


눈물로 견디어 오신 우리 어머니 55년 동안의 세월을 삼팔선은 알고 있을까?.....


- 2005년 10월 어느날,

남북 이산 가족을 위한 영상편지를 촬영하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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