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의 죽음

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 시작.....

by 김중근

그 분의 죽음



김 중 근


12 대자(代子)들을 중심으로한 S.대자회 부부모임 중, 60 초반을 갓 넘기신 형제님을 평소에 형님으로 호칭하신 분이다. 한 달여전 천안 모임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를 길을 오시고 싶다며 아내 몸에 의지한 채, 가누지도 못한 몸을 곧추 세운다. 둘러앉은 우리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세세히 둘러보신 그였다.


당일 모든 분들의 희망적인 메시지와 염원을 담아 한 분 한 분 기도를 했으나, 생의 절망스런 표정은 침퉁했고 기도는 침묵 속에 슬픔이 가득했다. 말들은 느릿했고 침묵은 길었으나 그 침묵 속에 모두 그의 마음을 보았다. “오늘은 마음에 앉아계신 모든 분을 봐서 참 좋다.” 그의 목소리가 샛별처럼 맑았다. 그 순간, 그 말이 결국 작별 인사로, 그 날이 생의 마지막 길이 될 줄을 누구도 예상하질 못했다.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그 환한 미소만을 두고 새벽이 오자 그 먼길을 떠나셨다. 눈물은 흘러도 그의 마지막 밤은 따뜻했다.


유난히 호탕하고 성량이 풍부해서 성악가 못지않은 실력을 뽐내던 그다. 성당의 대소사, 행사나 축일(祝日)에 독창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던 그였으므로 어느 누구보다 오래 장수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 분의 죽음은, 그의 아내 및 가족은 물론 주위 많은 분들에게 충격이었다. 언젠가 추석 후 성가대 연습이었다. 평소 참석율이 저조했던 단원들에게 앞뜰의 햇감이 많이 열렸다며 가지고 오셨는데, 모든 단원들이 충분히 먹고도 남았다. 먹고 난후 여남은 꾸러미의 감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게했던 큰 손의 그다. 그가 그날 우리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다. 지금도 자애로운 얼굴이 눈에 선하기만 하다. 깊은 가을을 재촉하는 갈 바람에 무심코 나뒹굴어진 낙엽을 본다. 또 가슴에 울컥 슬픔이 밀려온다. 그는 떠났지만 아직 남아있는 앙상한 감나무 빈 가지에, 저 푸르름과 풍요로움은 온데 간데없이 찬 바람만 가득하다. 붉은 살이 삐쳐 서리 맞은 까치밥 몇 개가 떨어질 듯 매달려있다. 죽음 끝에는 언제나 침묵이 남듯이 망자는 아무말 없을 뿐이다....


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지난 나이임에도 죽음이 나와 관계된 가까운 분들에게 까지 이르리라고 짐작조차하기 싫었다. 그런데 싱싱하고 아름다운 꽃같이 싱싱하고 화려했던 시절들이 모질었던 그다. 주마등같은 세월을 뒤로하고, 아내의 손길로 자리잡은 한 줌의 흙 속에 채워질 그의 역경(逆境)이 울컼 설움을 채촉한다. 뜬 구름같이 왔다 바람같이 사라질 삶인데 왜 이다지 그의 생은 고통의 소리로 힘들기만 했던 것인지...그의 삶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게된다. 그 놀라움과 충격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가슴 아픈 이별을 접하고 한 알의 낱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길거리에서 노랗게 피어난 야생화로 다시 피어남을 본다. 밟히고 찢기어 아름답게 피었다 지면서, 우리 삶도 자연의 이치에 따라 죽고 사는 것임을, 눈에 보이는 자연과 다름없슴을 알게된다. 우리는 평소 잊고 살지만, 죽음은 말없는 이별을 통해 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알게된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위에 드러나 기쁨의 꽃을 피우고 또 다른 생명의 시작임을 알린다. 죽음은 다른 의미의 새 생명을 준비하면서 한 알의 밀알이 되기 때문이다. 고통의 삶을 접고 영원한 자유 속으로 떠난 그의 텅 빈 시간은 우리들 가슴을 메운다,


앞뜰 햇볕에 싱그럽게 자라던 텃밭의 푸성귀들이 새 옷처럼 푸르른 몸짓이 한참이다. 한 알의 밀알이 저처럼 푸르러서 가족들의 밑 반찬이 되고 또한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그의 손끝에서 부터 시작된 파종(播種)이었는데... 텃밭에 일렁이는 바람과 햇빛과 비는 알고 있겠지....앞뜰 그 곳에서 그가 떠난 텃밭을 멀거니 처다본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 그가 내려다볼 것만 같은 그 곳은 예전과 다름없다. 그 곳에서 김장철의 배추가 꼼지락거리며 움터오는 숨소리로 부터 그 분의 숨결과 영혼을 느끼게 된다. 그가 가버린 텅~ 빈 세상이지만, 지난 그가 남긴 손끝의 텃밭을 고르는 일로 부터 또 다른 생명이 시작된다. 삶은 이렇게 끝내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떠나는 것. 오늘 우리는 그가 남긴 빈 자리에 앉아 예전의 웃음을 다시 떠올린다. 뭉쿨해진다.


비록 그는 돌아오지 못할 이승의 저 먼 곳으로 떠나셨지만, 그의 손길과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앞뜨락 텃밭은 그 분의 싱그럽고 모질었던 청춘을 소중히 간직한 채, 앞으로도 해마다 새 생명이 꿈틀 것이다.



2001년 10월 그 분이 이 세상 떠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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