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비

삶은 여전히 봄처럼 피어날 수 있다고..

by 김중근

흙 비



-김 중 근


그동안 미세먼지가 짙게 내려앉은 봄날에 하늘조차 숨통을 틀어막고 질식 할 듯했다. 창문을 열면 들어와야 할 것은 맑은 바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우울함, 폐 속까지 스며드는 불쾌함이다. 그래서 가믐 끝에 비 소식이 들려와도 마음이 선뜻 밝아지지 않았다. 간 밤에 내린 봄비는 어제까지 누렇고 희뿌옇던 공기를 밀어내고 오늘은 한결 가벼워 투명해졌다. 미세먼지에 가려 있던 빛이 비에 씻겨 내려가고, 나뭇가지 끝마다 숨겨져 있던 색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번 비는 어딘가 다르다. 그저 단순히 맑음을 더하는 비가 아니라, 오래 빛이 바래 눌러앉아 있던 헌 것들을 조용히 꺼풀을 벗겨낸다. 세상을 다시 열어 새로운 빛을 내려주니 곳곳 마다 연녹색이 살아 움직인다.


이파리는 아직 연약하지만, 그 색만큼은 무엇보다도 단단하게 살아 있다. 창밖을 바라보면, 파란 양철 지붕 뒤에 봉긋이 올라온 목련이 하얗게 피어 소담스럽다. 목련은 지난 밤비를 머금은 채 기품있게 서 있고, 노란 개나리는 폭죽처럼 환하게 흐드러져 웃는다. 아직 완전히 피지 않은 벚꽃의 봉우리들은 붉은 피멍울로 맺혀, 곧 터질 시간을 기다린다. 그 모습의 터짐은, 붉은 샴페인이 터지는 것 같이 4월의 요란한 향연을 준비한다. 붉은 벚꽃 봉우리는 아직 완전히 그 속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이미 봄이 가득 차 있다. 터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연녹색은 더 짙어지고, 꽃들은 더 선명해진다. 마음 또한 다시 한번 피어날 준비를 한다. 종심의 봄도 그러하다. 사람들은 흔히 어르신이라 부르며 저무는 시간이라 말하지만, 정작 그 안에 서 있는 사람의 마음은 단순히 저무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깊어지고, 더 단단해진다. 때로는 벚꽃의 붉은 선홍빛 같이, 이제야 비로소 피어나는 감정들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젊은 날의 열정이 불꽃처럼 타올랐다면, 지금의 열정은 빗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은은히 남아 있다. 황혼의 나이 또한 그러하다.


한편 이번 비는 반가움보다 조심스러운 기대와 체념이 섞인 느낌이었다. 봄비가 내리는 순간에 무언가를 씻어낼 것처럼 기대하지만, 하지만 그 비 속에서도 공기는 완전히 맑아지지 않고, 어딘가 흐릿한 잔상이 끝내 남는다. 비가 내린 후 거리 위에 남아 있는 작은 빛들과 새생명들, 흐릿한 공기 사이로도 끝내 드러나는 사물의 윤곽처럼, 지난 삶의 편린과 기억들 또한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종심의 나이 또한 그러하다. 삶의 많은 날들이 지난, 우리들이다. 사람들은 일흔 정도의 나이가 지나면 흔히 편안할 것으로 말하지만, 정작 그 안에 서성이는 마음은 아직 흙먼지에 갇혀있기 마련이다. 잊힌 줄 알았던 기억들, 정리되었다고 믿었던 감정들, 그리고 여전히 완전히 내려 놓지 못한 마음과 고집들. 그래서 황혼의 시간은 맑음이라기보다 옅은 탁함에 가깝다.


그러나 그 흐림 속에서도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탁함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제 밤의 흙비는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이었기에 조용히 내렸다. 씻어내지 못한 것들과 지워지지 않는 것들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황혼의 시간처럼 비가 내렸다. 비에 젖은 목련과 모든 생명체들이 더 또렷해 보이듯, 삶의 많은 날들을 지나온 황혼의 마음도 이 번 비로 더러움 속에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무엇이 소중한지,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그리고 아직 무엇을 피워낼 수 있는지. 문득 깨닫는다. 황혼이라는 말은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피어남의 방식임을 알게된다.


그래서 오늘의 봄은, 비에 씻긴 맑은 공기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황혼의 열정도 꽃이 될 수 있다고. 그리고 황혼의 시간에도, 삶은 여전히 봄처럼 피어날 수 있다고... 황혼이여, 종심이여 힘내자 !



2026년 3월 31일, 흙비가 내린 다음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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