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붕자원방래(有朋自溒方來)

문질(文質)이 빈빈연후(彬彬然後)

by 김중근

유붕자원방래(有朋自溒方來)


= 김 중 근

공자의 말씀 중에 “유붕자원방래(有朋自溒方來)면 불역락호(不亦樂乎)”라 했다. 즉 벗이 있어 멀리서 나를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라는 의미(意味)다.


5월, 6월 계속된 황금연휴(黃金連休) 기간 중에 뜻밖에 많은 손님들이 우리 집에 다녀가셨다. 방문객(訪問客)중의 한 부부는 학교 선배로서 비록 삶이 우리에게 주는 거친 파도들로 경제적으로 여유있게 살아가진 못할지라도 낙천적인 분들이다. 여행을 즐기며 타인과의 관계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편인데, 정신적으로 여유있는 삶을 살고있다. 선배는 나와 3살 연상의 고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신 분이다. 두주불사(斗酒不辭)형의 애주가(愛酒家)이기도 하다. 그리 넉넉지 않지만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자유롭게 자기 소신과 확신에 찬 생활로 가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이 살다보면 삶의 회오리에 휘말려 곤경에 처하는 일, 화가 나는 일, 부끄러운 일들이 많지만 타인과의 사이에 얽혀있는 모든 매듭을 잘 풀고 그 모든 어려움들을 줏대있게 잘 다스린다. 인간의 행운, 불운은 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같이 생각한다. 늘 바람 따라 휴일이면 각 처로 어디론가 떠다니면서 그 세상만파(世上萬波) 어려움들을 헤쳐나간다. 무소유(無所有)의 결단(決斷)을 자연(自然) 속에 던져봄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과 가정을 사랑한다. 무소유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다.


또 한 부부(夫婦)는 H성당(聖堂)의 전 사목회장(司牧會長)님 부부다. 전 오산C.C. 한원 골프장, 에딘버러C.C. 사장 등을 역임하고 웅포 “베어즈 리버 C.C.” 골프장을 만들어 유치하고, 우리가 웅포에 집을 짓고 살 수 있도록 집 터를 내어주신 분이기도 하다. 하루도 천년처럼 풍요로울 수 있는 부부로서 우리 부부에게 신앙적인 지도자이며 마음씨 넉넉한 장형(長兄)님과 형수님 같으신 분들이다. 주위에 그림자 하나 남지않고 아무도 돌아보지않을 때 신선한 바람 한 줄기 같은 분들이다. 누구도 생각하지못할 주변의 크고 작은 사랑까지 깨닫게 하시는 분들이다. 세상은 냉정하다. 우리가 사는 동안 대체로 세상은 각자의 처해진 일과 아픔으로 쉽게 절망하고 돌아서곤 한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기다림과 다시 비워두는 마음으로 서로 채워줄 수 없는 빈 자리까지 헤아려 우리 집의 애경사(哀慶事)를 챙기고 또 챙겨주신다. 언제 부터인가 우리 부부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더니 지금은 전부를 차지하게 만들어버린 그런 분들이다. 마치 산 너머 지는 저 노을같이 은근히 그리운 사람들이다. 술 한 잔 거나하게 취기가 돌면 그동안 객지를 유랑하다 무더기로 자라온 외로움과 서러움을 “돌아오라~ 소렌타~”의 가곡으로 눈물 대신 목청 돋구어 감정을 쏟아내시곤 한다. 문질(文質)이 빈빈연후(彬彬然後)에 군자(君子)이듯 본바탕과 수양이 혼연일체(渾然一體)로 조화를 이루신 분들이다.


하루가 한 달같이 시간이 더디 흘러가는 그런 날, 사람의 마음이 아침, 저녁으로 바뀐다고들 하지만 우리가 지난 그 시간 만큼이나 그리운 또 한 부부가 오셨다. 한신대 출신으로 익산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부부다. 우리는 이곳에 학연, 지연, 혈연도 없이 외로움에 익숙했던 터였다. 처음엔 단지 아이들의 학부형(學父兄)으로서 학교에서 조우하는 정도로 여겨졌던 그런 부부였지만 해와 그림자가 따로 놀아 그늘을 만드는 것이 아니듯 이젠 하루도 보지않고는 살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다. 순수한 마음들을 가지고 있어 우리 부부의 마음이 힘들 때, 맥없는 소리에 귀를 기우려주며 힘 없는 소리에 용기를 불어 넣어주곤 했다. 그야말로 목숨 다하여 위로해 주곤한다. 우리네 마음이 찢겨져 울고만 싶어질 때 그 시간, 이 순간에도 보고파서 그리운 사람들이다. 사랑의 시선은 언제나 낮은 곳에 둔다고 한다면 아마 이분들의 기류(氣流)는 언제나 낮은 곳에서 부드럽고 향기롭다. 그들을 만나게 되면서 부터 기쁨이란 큰 행복을 느끼며 작은 것에 감사하는 생활을 배우게 된다. 항상 우리를 향한 관심에 우리도 무엇인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이젠 그들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이듯 서로는 서로의 일상사에 주고 받음을 산술적(算術的)으로 계산하면서 살지 않는다. 그야말로 사람의 삶은 정직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인지생야직(人之生也直)함을 몸소 실천하시는 분들이다.


방문객중(訪問客中) 또 다른 부부(夫婦)는 처(妻)의 친구 내외(內外)로서 우리 삶이 힘겹고 고독할 때 우리 부부를 지극히 아껴주는 친형제와 같다. 언제든지 찾아와 용기를 주고 부담없이 대화하며 조건없이 오라하면 편히 와서 쉬어 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역시 긍정적인 삶을 살며, 자신이 가진 물통의 물을 기꺼이 꺼내 목 마른 사람을 살릴수 있는 박애자(博愛者)이기도 하다. 졸부(猝富)가 아무리 많은 금덩이를 금고에 쌓아 논들 사람의 가치답게 쓰질 못한다면,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근면근검(勤勉勤儉)의 땀을 소중히 알고 절로 굴러진 복을 바라지 않는 성실한 사람들이다. 이들 부부는 가끔 술을 즐기는데, 술을 권커니 주거니하는 모습이 그렇게 정다울 수 없다. 그 모습은 보름 달빛처럼 은은히 다가와 우리 마음을 촉촉히 적신다. 이 세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 따듯한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다. 부군(夫君)은 프로 골퍼로서 여의도에서 일한다. 이,삼 년전 백혈병에 걸린 작은 딸이 죽음의 골짜기에서 절망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때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살려냈다. 경제적인 손실은 이루 말 할 것도 없다. 불행, 불운이 무엇이었든 바람같이 스쳐가는 것 일 뿐이라고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위로하곤 했다. 굳건히 역경을 딛고 작은 딸을 살려낸 강인한 정신력의 진정한 프로다. 한편 그는 예기치 않은 사정으로 25여년 동안의 직장에서 삶의 터전을 잃어야만 했다. 불행(不幸)에도 그다지 심한 충격을 받지 않고 서울 생활을 과감히 청산하리라 마음 먹었던 그였다. 부산에서 새로운 삶의 둥지를 찾기 위해 두 부부의 이별 여행을 계획하고 이곳에 몇 일 머물려던 참이었다. 광풍이 몰아치고 비를 내린 먹구름이 지난 후, 해와 달이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듯 두 부부의 모습은 평온했다. 절벽같은 절망과 사는 것이 괴로웠을텐데 전혀 내색이 없다. 즐겁지 않았던 삶의 터널을 빠져나온 담담(淡淡)함이 불필요(不必要)한 것을 포기함으로써 비로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다.

방문객(訪問客)중 또 한 부부(夫婦)는 덕(德)을 심는 근본(根本)은 선심(善心)쓰기를 즐기는 데 있음을 몸소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순수한 마음씨를 갖고 있다. 이웃들과 함께 서로 사귐에 있어 신의(信義)를 다하여 최선을 다하므로 늘 주위에 사람들이 모인다. 특히 인간이란 모두 결혼을 하여 적합한 가정을 갖게 마련인데 늦은 나이까지 독신녀를 고집 하던 부인이었다. 결혼해서 아이 놓고 이혼하는 부부들의 고통스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결혼을 포기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터에 양가 집안을 잘 알고 있는 분이 중신을 서서 결혼에 이르렀는데, 이제 지난날의 외로움으로 채워진 고독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끊어버리길 잘 했다는 그녀다. 그녀의 눈을 들여다 보면 살아가는 이유와 살아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눈빛만 보고도 알 수 있는 남자를 만나서 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고독을 곁에 두고 외로워했던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이젠 완전한 부부의 모습으로 행복해 보인다. 무사히 잘 지내라는 동정의 말들도 건강하라는 염려의 말들도 행복하라는 걱정의 말들도 이젠 주위에 머물 필요가 없어졌다. 서울 근교에서 사업하고 있는 부군은 그녀가 반려자(伴侶者)라는 사실을 행운아(幸運兒)라 생각한다. 순수하게 놀라는 모습이 성공한 사업가로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순수하고 미덥다. 부모에게 효도(孝道)하고 어른을 깍듯이 예를 다하여 공경하는 모습에 절로 고개 숙여진다. 어울러 이웃에게 신망(信望)이 두텁다. 가난한 이웃이나 빈곤(貧困)한 친족(親族)들을 위하여 제 물건을 남에게 주어도 좋을 정도로 남을 위한 배려 또한 그러하다. 범애중(汎愛衆)이 비로서 자기 자신과 가정을 사랑함으로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다.

방문객중(訪問客中) 마지막 한 부부(夫婦)가 있다. 평생을 중등부 교직에서 정년한 교장 선생님 부부이다. 이 분들 또한 법이 없어도 살 사람들이다. 평소 우리는 의기투합(意氣投合)을 잘 해서 멀리 나들이를 잘 했다. 늘 어딜 가나 부부들끼리 어울려 9인승 카니발 한 차에 동승하곤 어디론가 훌쩍 떠나길 즐겨했다. 사람은 떠나봐야 그 빈 자리를 안다고 했다. 그 중 어느 누가 사정(事情)이 생겨 참석(參席)하지 못할 경우가 생기면, 서로는 밀려오는 허전함을 느껴야할 정도로 정(情)들이 돈독(敦篤)했다. 어느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그 한사람의 빈 자리가 크기 때문에 스며오는 허전함과 그리움들로 하여 때론 사모(思慕)함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있던 가구를 치울 때면 오히려 허전함 보다 그 자리가 새롭게 변화된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이 분들의 경우는 다르다. 있어서 편하고 오래 같이 할수록 친근함을 잃지않는 한결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마치 오래된 장맛 같은 분들이다. 내 허물과 흉을 마다하지 않고 서로 덮어줄 뿐 만 아니라 가난해도 즐거워하며 부유(富有)해도 교만하지 않을 예(禮)를 갖춘 분들이다. 서로의 일을 자기 일같이 헌신적으로 신명(神命)나게 일할 사람들로서 자기 한 몸의 배부름과 안일한 생활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좋은 일을 하되 말을 앞 세우지 않는 분들이다. 바로 식무구포(食無求飽)함으로 비로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다.


무소유(無所有)의 결단(決斷)과 문질(文質)이 빈빈연후(彬彬然後)함으로 군자를 얻었고 인지생야직(人之生也直)함과 담담(淡淡)함과 범애중(汎愛衆)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식무구포(食無求飽)함을 갖춘 벗들이 함께해 이곳 저곳에서 찾아들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할 필요가 없으니 이 또한 무엇보다도 이 세상 살면서 정말로 감사하고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연휴가 끝나고 석양이 내리는 이 시간 그들과 함께한 여운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텅 빈 가슴에 잔잔하게 지난다....


2014년 6월 어느 날

웅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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