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린 오전
이른 봄
- 김 중 근
눈을 떠서 하늘을 보니 잿빛색이 스잔하다. 이른 봄비는 노란 산수유, 흰 매화를 피우기 위해 생기없는 뿌리에 생수를 뿌려대고, 하늘은 왠지 쓸쓸하다. 빙토에서 생명을 솓게한 봄비가 쌀쌀한 바람에 실려 스산한 냉기를 뿌린 탓이다. 며칠 계속된 흐린 날이 물러나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라본 하늘이다. 기온은 영상인데도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맨살에서 빳빳한 소름이 돋는다. 파리하게 질린 사람들의 표정들이 까칠해 보인다. 봄은 봄이지만 어정쩡한 기운이 남아서, 홀가분한 옷 차림으로 다닌기엔 아직 춥다. 쌀쌀하고 움추려진 마음이 오늘 유난히 가증된 날이어서 그런 탓인가?....아마도 상큼함, 화사함과 따뜻함이 유난히 그리운 탓이 작용한 모양이다. 그만큼 봄이 오면 설레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섬진강의 매화길 따라 봄의 기운이 봄비에 실려 촉촉히 내린 춘심인데 아직 이곳은 봄이 멀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이 오길 이때 쯤이면 누구나 기대한다. 특히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면, 건드리면 톡 터질 것 같이 농염 그윽한 선홍색 동백꽃을 그리며 서로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리움 가득한 먼 산의 진달래 꽃망울 가슴에 품어 연심(戀心)을 사르며, 어떤 이는 봄길 따라 찾아오는 춘풍에 실어 사랑하는 이에게 따스한 마음 담긴 연서를 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생길 수 있다. 이 번 봄비로 밭두렁 오솔길 섶에 요염하게 늘어진 노란 개나리 꽃이 맵시 요란하게 산허리 돌아 가득할 것이다. 산골 사이로 피어난 하얀 산벚 꽃들이 일대장관을 연출할 춘림(春霖)의 정취 또한 그렇다. 새싹의 짜릿한 경이로움에 불씨 피우듯 엎드려 신비의 생명을 숨죽여 가슴 뛰며 바라볼 것이다. 서늘한 비 내리는 봄 길에는 고운 향기 곱게 덮고 따사로운 햇살이 온 천지를 간지롭게 동산에 덮어 우리에게 희망과 설레임을 주겠지...
봄은 마음 밭에 아름다운 화단을 만든다. 생동과 율동이 눈부신 천지에 살아 움직이는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그런 순간들이다. 싱그러운 봄 바람은 영혼을 내어 시샘하는 꽃 추위를 꿈 길로 보낸다. 봄은 나물 캐는 봄 처녀의 발치에서 맴돌며 심금 울릴 채비를 서둔다. 옷 맵시가 멋진 여인들은 발랄한 모습을 과시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특히 봄이 오면 미풍에 너울지는 나비같이 섹시한 여인은 온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어 뭇 사내들의 마음을 뺏곤 한다. 그들 앞을 지날 때면, 봄 바람에 비교 안될 정도로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빨강 핸드백에 까맣고 한쪽 헐렁하게 끼워진 까만 팔찌 아래로 드러난 하얀 살, 여린 팔에 걸치고 활보하는 모습은 한참 물이 오른 봄날의 화사함과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광경이기도 하다. 봄은 여성의 계절이라 했지만 볼륨있는 가슴이 살랑거리는 춘풍 앞에 선남은 피가 끓기 마련이다. 이성적인 감흥이 별로 없는 사람일지라도 한번쯤 이성을 기대해 봄직한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봄은 충동과 자극이 만들어낸 생동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은 젊음의 계절이요, 봄은 사춘기라고도 한다. 봄은 우리에게 생동감과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잔인하기 때문이다. 사춘기는 맥없이 내리는 빗물에도 의미를 만들어 내고 감성에 젖어 눈물이 되어 흐르기도 한다. 때론 정처없이 떠도는 흰 구름 위를 타고 세상의 행불행을 임의로 선택해서 그 전도된 눈으로 인해 혼돈 속에 헤어나질 못하기도 한다. 아롱지는 봄의 속삭임에 때론 맥없이 쓴 웃음을 짓기도 한다. 꽃이 피는 언덕에서 누군가 그립고 또 그리워하지 않고선 한 순간을 견디지 못할 만큼 사춘기는 봄 날씨같이 변화무쌍하다.
봄이 무릇 곁에 있다. 봄비가 냉랭한 잿빛 하늘에 외로움과 고독을 마구 뿌려댔다. 봄이 다가온 내 차가운 심장에,,, 살랑살랑 불어대는 봄의 향기가 예쁜 카나리아의 청아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쪽빛 담은 구름이 놀다 갈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어디메선가 불어오는 봄의 바람을 한 겨울 시달린 깊은 폐부 속까지 깊이 받아들여 설레임으로 채우자!.. 그래 희망을 갖자!
2024년 3월 26일(화)
봄비가 내린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