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춘(來 春)

삶의 푸르름

by 김중근

내 춘(來 春)

- 김 중 근

독감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듯하더니, 어제 전주 시내 외출후 콧뿔이 더욱 성해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것이 주룩주룩 흐른다. 이젠 재채기와 가래가 뚝 끊겨서 일상 생활이 정상화 되었으면 좋겠다. 낮이 가면 밤이 오고, 겨울이 오면 봄이 오고, 이렇게 해서 세월은 흐른다. 겨울이 가면 봄, 여름, 가을 사계절이 올 한해도 저물 것을 생각한다. 그러다 결국 시간에 밀려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물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모든 것이 덧 없슴을 깨닫게된다. 우리가 그동안 애를 쓰고 무엇인가를 위하여 열심히 내달려서 무엇을 얻으려했던가?...계절은 오고 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절 따라 자연이 주신 피조물들을 관조하고 행복과 즐거움을 주신 대로 보고 느끼는 일이 고작이다.

바깥 바람이 아직 차갑다. 가난이 질척거리는 슬픔이 가득한 X씨 집에서는 골방에 쳐박혀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등 돌리고 앉아있는 X씨 아내의 숨 소리가 종횡무진 전선 줄같이 빈 방을 뻗어나가 온 공간에 가득하다.... 대화 대신 때로는 헛기침과 침묵으로 무언의 소리만 무겁게 오고 갈 뿐이다. 그 냉기를 바꿔줄 누군가 찾아오기를 은근히 바란다. X씨는 엎드려서 간신히 신문을 읽다가 잠이 들거나, 그러지 않으면 TV.에 눈을 고정시킨다. 서로의 시선을 피한 채, 그동안 쌓여있던 간행물을 건성 뒤적이는 일이 요즘의 일과처럼 되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될수록 X씨는 어쩌면 벌써 봄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자연을 이길 수 있는 인간 또한 없듯이 신이 주신 봄을 따라 X씨는 아침마다 어김없이 들어오는 햇살 좋은 창가의 햇볕에 얼굴을 내민다. 따사히 들어오는 동녘 10시 햇살은 늑골진 몸에도 봄을 느낄 정도로 온화하다. 한 줌의 햇빛이 잊고 살았던 자연의 문맹을 퇴치한다. 움추렸던 기지개의 꿈은 높아가는데, 마음 한 편에 자리잡은 사람들이 창밖의 구름에서 서성댄다. 가끔씩 먼 산을 바라보면서 꽃 향기 가득한 봄의 풀밭을 눈앞에 그려보기도 한다. 희망과 푸르름에 온 대지와 산천초목이 꿈틀거린다. 생명의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듯 X씨는 봄을 예찬하는 빛을 따라 절대적인 빈곤에서 벗어 날 수 있는 희망을 찾아본다.


세월이란 정말 빠른 것인가 보다. 시간은 둑을 넘어서 흘러가는 강물과 같이 아주 짧은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어제의 나는 벌써 오늘의 내가 아니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일 수 없다.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흘러가는 시간 시간마다 우리의 모습이 변해간다. 한 겨울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같이 X씨를 지켜보는 모습과 같다. 겨울 동안 숨조차 제대로 고르지 못하고 꼼짝없이 온 종일을 골방에 쳐박혀 있다가, 어느 결에 다가온 햇살이 좋아 폴짝폴짝 밖으로 뛰어나온 모습이 흡사 개구리와 같기 때문이다. 봄은 공손히 우리에게 읍소하고 한 철 움추렸던 빈곤과 궁핍으로 부터 활기차게 하고, 동면이 계속되었던 나약한 그 가지에 새 싹과 꽃을 피워낸다. 환희와 신비의 오묘한 봄의 소리에 X씨는 묵었던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옷을 갈아입고 봄이 오는 길을 찾아 나선다. 오랫만, X씨는 볕이 들었던 뜨락에 햇살을 따라 봄이 질러온 한 복판에 선다. 어둠의 긴 터널 속에서 한 철 캄캄하게 보냈던 고통들이 저 언덕 멀리 사라지고 환한 모습이 다가온다. 그래도 빛이 강한 햇살은 X씨의 구멍난 삶에도 비집고 들어오니 신비하고 감격스러울 뿐이다.


보내고 싶지 않아도 세월은 가고, 싫어도 봄이 온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때문에 헛되이 흐르는 세월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우리는 봄을 기다린다. 봄이 와야, 겨울 동안 닫아 두었던 창을 열고, 먼 산과 먼 하늘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 때가 오면 봄을 바라는 모든 이의 마음에도, 헛기침으로 가득한 X씨에게도 삶의 푸르름이 돋아날 것이다.

- 2009년 3월 어느 날 연구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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