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우(暴 雨)

희망과 복원의 시작

by 김중근

폭 우(暴 雨)

- 김 중 근


그동안 불볕 더위에 시달린 하늘이 예사롭지 않더니 전국적으로 많은 장맛비가 계속적으로 밀려온다는 일기 예보다.

회색 빛과 함께하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슬픔을 토해내는 하늘의 통곡이 무섭게 둘린다. 수 억년의 잿빛 어둠을 뚫고 내린 비는 한 여름의 설움을 콸콸콸 멍울진 소리로 토해놓는다. 청명(淸明)의 음율을 타고 씻어 내리면서 자유롭게 떨어지더니 결국 망나니가 칼 춤을 추듯이 인정사정(人情事情)없이 마구잡이로 떨어진다. 그 피투성이 물결에 가라앉은 고통과 아픔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뒤흔들며 울린다. 장맛비의 소리가 천천히 서막을 열었다. 검은 바람 소용돌이 한 가운데로 파고든 검은 비는 무겁게 떨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강렬해져 하나 둘 산 사태가 나고, 둑이 터지고, 제방이 무너졌다. 순식간에 지하도와 거리를 삼켰다. 산전수전(山戰水戰) 휘돌아 온 물줄기는 도로 위를 덮치고 눈길 없이 흐르던 물은 저수지처럼 넘쳐흘렀다. 자연이 인간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경고음을 낸 것이다.


습기먹은 가구와 집기류들이 이리저리 뒤집히고 물 위에 낙엽처럼 둥둥 떠다니는 광경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옷 가지며 빨래감들이 강물 위에 휴지 조각같이 어지롭게 떠 다닌다. 수재민들은 망연자실 넋을 잃고 손을 공중에 휘 저어보지만 잡히는 것은 절망 뿐이다. 그러한 그들의 노력이 고달프고 힘들기만 하다. 이미 진흙 바닥에 떨어져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진 한여름의 편린(片鱗)들은 어떠한 슬픔도 이를 대신할 수 없다. 바다로 변한 마을 마다, 거리 마다, 내린 비는 주민의 눈물이 되어 흘러간다. 물의 힘은 끝이 없다. 홍수는 대지를 삼키고, 도시를 휩쓸며, 인간 삶의 터전을 파괴했다. 그 무서운 힘 앞에는 어떤 것도 견딜 수 없다. 인간의 세운 거대한 건물과 시설물들도, 그 안에 숨쉬고 사는 인간들도, 그들의 소중한 추억과 희망들도 모두 한 방에 휩쓸어버렸다. 홍수는 자연의 눈물이다. 우리에게는 대재앙인 것이다.


엊그젠 금강 하구둑의 바로 상류 지역인 용안에서 강둑이 터졌다. 3일 전엔 논산 강둑이 터졌다. 모두 웅포에선 각 10분 거리, 20분 거리에 있는 바로 지근 거리다. 내가 늘 걷기하면서 즐겨 걷던 둘레 길이기도 하다. 생각만해도 소름이 돗는다. 만약 그 시간 대에 내가 걷기를 하고 있었다면 어찌됐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옆집에선 지하에 물이 스며 들어 연일 양동이로 물을 퍼대느라 난리다. 몇 일 전엔 웅포에서 하수구 막힘으로 쓰레기를 제거하고 살펴보느라 뛰어들어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매몰사 했던 사건이 있었다. 공교롭게 그 후배는 익산의 유수한 건축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는 대표 건축사로서 능력이 출중해 내가 근무하는 대학 학과에 강의를 줬던 후배다. 한때는 J당 국회 의원까지 출마했던 그였다. 7월 17일 오전 9시 발인 한다는 부고가 메시지를 통해 들어왔다. “HJO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매우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하늘이 만든 길은 하늘 만이 알수 있듯이 결국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 행복과 불행이 우리 뜻대로 되지앟음을 자연을 통해서 절실히 깨닫게 한다.

그러나 이런 대재앙은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인 것은 확실하다. 엘리뇨 등의 기후 변화와 도시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지구를 몸살나게 했다. 물의 분노를 자아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지만, 그 힘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렸다. 우리는 수도 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세수하고, 음식을 조리한다. 그래서 우리는 물이 얼마나 귀중하고 무서운지를 쉽게 잊어버린다. 폭우로 인한 재난 재해는 잊고 있었던 안전 불감증에 대한 감각을 일깨운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지나고 나면 늘 사후처방(事後處方)에만 그친다. 자연을 무시한 결과로 자연은 우리에게 한계를 알려주었다. 그 한계는 우리의 모든 일상을 멈추게 하고,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의 힘을 경계하며 사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자연과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해 우리는 기후 변화와 도시화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온실 가스 감축과 재생 에너지 개발은 전문가들과 머릴 맞대고 온 국민은 친환경 친화적인 생활을 하고 자연 앞에 겸허히 다가서는 노력을 해야한다. 도시 계획과 토지 이용은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여 자연을 수용하면서 모두가 함께하는 안전망이 구축돼야 한다. 물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물의 소중함을 깨닫고, 홍수로 부터 배운 교훈을 토대로 행동해야 한다. 이 계기가 소중한 것들을 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장기간에 거친 장맛비는 우리에게 주어진 경고이자, 변화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자연재해는 인간의 한계를 불현듯 상기시킨다.

아직도 비가 내린다. 똑똑똑 지금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설움의 편린(片鱗)들을 증폭시킨다. 한여름 폭서에 시름시름 메말라 소멸하던 목초들이 한 방울의 빗방울로 생기를 되찾듯 수재민들에게도 희망이 생기길 바란다. 깊이 쏟아져 내렸던 빗물은 우울했던 시절의 과거를 침묵으로 쏟아 내겠지만 버릴 것은 거를 것없이 흘려 보내야하는데 걱정이다. 썩은 낙엽만 가득한 그들의 생활에 지친 설움이 가시지 않을테니 이 물기많은 한 여름을 어이하면 좋을꼬?.... 비 내리는 날, 사람들은 서둘러 가는데 나는 조용히 멈춰서서 그 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모두를 위로해주고 잠시 동안 마음의 고통을 달래주는 것 같다. 비 내리는 날, 우리는 마음을 열어둔다. 그 속에 비 온 후 피어나는 꽃들이 피어나듯이. 비 내리는 날, 모두가 하나 되어서 우리의 가슴에 새로운 소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내릴 빗물은 가랑잎이 생기를 얻고 가지에 희망이 불끈 솟아날 것이다. 그 깊은 물 속에서 우리는 강인함을 찾아야 한다. 비 내리는 날, 이 세상이 다시 빛나게 될 때 우리는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희망을 찾아 보자! 그 순간이 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삶을 향해 출발하자!... 홍수로 부터 재난 재해를 겪은 곳은 뼈 아픈 기억들을 잘도 찾아 다시 일어날 것이다. 자 이제 부터 힘차게 걸어나가는 걸음은 새로운 희망과 복원의 시작이다.

- 2023년 7월 18일(화) 장맛비 내리는 날

오후 3시 웅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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