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극(間 極)

기쁜 일과 고통스러운 일....

by 김중근

간 극(間 極)


- 김 중 근

우린 어떤 일 때문에 한쪽의 존재와 가치 따위가 무시되는 경우를 수없이 겪는다.


쌀쌀한 가랑비 사이로 노란 색 우산을 든 어느 여인이 지난다. 보도 블록 사이로 짙은 녹색의 이끼가 퍼즐같이 다이아몬드 형상으로 연이어져 있는 금강변 “웅포 야영장”의 보도 길을 그녀는 누군가 향한 그리움을 갖고 느슨히 지난다. 바람에 일렁거리는 회색빛 구름만 우산을 펼쳐 떠받고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녹색빛 이끼 사이로 앙증맞은 풀잎이 여인의 발 끝에 채여 소리없이 밟힌다. 한층 푸르름이 화사한 봄볕에 젖어 다이아몬드 희망으로 뻗어 나갈 참이었는데...애처로운 야생풀은 밟혀져 푸르름을 잃지만 그 위를 걷는 발 끝에서 무엇인가 모를 또 다른 강한 꿈의 날개가 우산을 타고 팔랑인다.


광택이 나고 멋진 고가의 가구를 느슨한 자세로 옮기기는 실수하기 쉽고, 감히 때묻은 손과 흐트러진 자세로는 함부로 잡을 수 없다. 손 자욱을 내지 않고는 우리가 원하는 장소로 가구를 옮길 수 없다. 명경(明鏡)보다 맑은 호수지만 혼탁한 물로 그 아름다움을 더럽히면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결국 물건이든 아름다운 풍광이든 그것을 대하는 자세가 문제다.


뻐꾸기는 알을 제 둥지에 낳지 않는다. 다른 둥지를 제집 삼아 의탁한다. 새끼 뻐꾸기는 살기 위해서 함께 한 둥지에서 동고동락했던 다른 새끼마저 처참하게 밀어 떨쳐버린다. 밤의 정오가 되면 제 어미를 찾아 울어대지만 비정하다. 다른 어미 새가 제 새끼인줄로 믿고 먹이를 주었건만 키원준 은공을 모르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뻐꾸기 새끼다. 천하의 패륜아다. 우리 정치권에서도 흔히 목격 할 수 있는 비정한 세계가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씁쓸한 단면이다.


내가 해야 할 일 때문에 상대방에게 괴로움을 주어야하고 때론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숲속의 한 마리 사슴이 목을 추기고 간 옹달샘은 맑은 단물로 청량한 그 맛을 뿜어내지만, 근대화를 거쳐 현대화 되는 과정에서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환경이 파괴되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는 우리의 감정을 더욱더 고갈시킨다, 그렇지만 춥고 더움의 온도 변화가 심하고 찬 서리에 붉게 탄 단풍이 더욱 아름답듯이 고통과 기쁨이 오래도록 교차되면서 고운 빛깔을 낼 수 있다는 신념은 만고의 진리다. 우리에게 살 희망을 주는 단서다.


아무도 가기 싫은 길이 있다. 흙탕물이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있고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먼지만 무성한 길이다. 그렇지만 깨끗한 비가 내린 뒤, 꽃다발로 묶인 가지 끝 부터 하늘 끝까지 투명한 계절 속에서 그 길에 무엇이 돋고 살아 숨을 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면서 밤새 산토끼가 내려와 뛰놀고 슬기로운 별빛이 반짝이던 길은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지만 어느날 진홍색 벌겋던 황토에 알 수 없는 생명의 신비함이 지금보다 더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된다.


아마도 사랑의 길이 자연의 이치와 만찬 가지로 고통이 심할수록 그 깊이는 더 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흔히들 사람은 사랑에 빠지면 홍역을 앓게되고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고들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주위에는 오직 사랑 밖에 보이질 않기 때문에 궂은 일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다고들 한다. 사랑하는 일은 나를 버리고 오직 상대방을 위해 모든 일을 초월하기 때문에 그럴테지....오직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일테지...사랑을 위해서라면 자기 희생을 감수한다. 그래서 연령, 인종, 국적, 빈부, 지위, 명예 등 모두를 초월한다. 사랑하는 일이라면 침묵이 고통스레 녹아 있는 두 눈에서 피 눈물이 흐른다. 그것이 고통의 가시밭 길이라도 사랑을 향해 달려간다. 흡사 불나방이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스스로를 만드는 모습 뿐만 아니라 서로가 만들어 가는 모습 때문에 솜털처럼 따스하게 서로 더욱 사랑하게 되는 모양이다.


이와같이 기쁜 일과 고통스러운 일과의 간극은 모두 다 내 마음에서 만들어낸다. 내가 해야 할 일 때문에 상대방에게 괴로움을 주어서는 안된다. 항상 내 자신의 성품 때문에 슬픔과 기쁨이 교차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모든 일을 내 탓이라 여기고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감싸줄 때 모두에게 살 희망을 주게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의 고운 빛깔을 지금보다 더 많게 느끼면서 살자!

- 2025년 3월 5일 잔뜩 흐린 날 웅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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