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써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마음 비우기
- 김 중 근
올 가을은 유난히 마음이 시려올텐데 벌써 부터 마음 한구석에 북극의 강풍보다 더한 놈이 뱀처럼 꽈리를 틀고 앉아있다. 이런 날 푸른 섬, 푸른 파도가 눈부시게 빤짝이는 해변이라도 있어 내 마음을 씻어내고 싶지만 마음 비우기가 그리 쉽지 않다. 마음 비운 곳에 햇빛 내리는 소리, 바람소리, 구름 흘러가는 소리, 파도 일렁이는 소리같이 기쁨을 노래하는 소리로 채우고 싶지만 흙탕물만 가득하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을 상할 때가 있다. '마음을 비우라!....'는 이야기를 쉽게들 이야기하지만 당사지인 내가 곤욕에 처해져있을 때 마음을 비우기가 그리 쉽지만 않다. 학생들이 오늘 마감되는 공모전에 출품한다고 서둘러 마감을 하고 있는 시간이다. 대책없고 끝나야할 시간이 다가옴에도 느긋한 태도가 나를 답답하게 한다. 평소 느긋했던 학생들도 오늘 만큼은 큰 일이라도 내는 양 생색내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며칠째 새우 잠을 청하며 잠들을 제대로 못잔 탓인지 얼굴들은 모두다 띄우다만 누런 메주 덩어리같다. 평상시 계획대로 진행했다면 이렇게 졸속으로 마감 일에 쫒기는 일은 없었을텐데, 역시 우리네 학생 때와 다를 바 없다. 제각기 큰 대상이라도 받을 것 같이 수선들을 떤다. 모두의 기대감들은 크지만 막상 주어진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 우리네 인생사가 아니든가...그러기에 더더욱 마음 비우기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물을 닮는 일이라 생각한다. 마치 물이 제 그릇을 찾는 일과도 같다. 물은 그릇의 모양대로 담겨진다. 물은 자기를 고집하거나 절대적으로 모양새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때로는 바위에 부딪혀 흩어지기도 하지만, 금세 다시 모여 흐름을 이룬다. 그것이 물의 본성이요, 비움의 길이다. 주어진 그릇 그 모습 대로 담겨짐으로써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대로 마춘다. 무거운 생각과 오래된 상처를 품은 채 고여 있으면, 그 물은 탁해지고 썩는다. 그러나 그 자리를 비워내면, 싱그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햇살이 수면을 어루만지면서 새물로 채워진다. 비워야 샘이 솟듯, 새 생명이 고요히 스며든다. 그때 마음은 다시 투명해진다. 비움은 없어진 버림이 아니다. 다시 채움의 여백이다. 어제의 슬픔을 흘려보내고, 오늘의 기쁨을 맞이하는 일과 같다.
이와 같이 물의 성질은 유연하지만 그러나 물은 한번 성이 나면, 온 세상을 물 바다로 만든다. 모든 세상을 다 태워 없애 버릴듯한 불도 물 한 바가지면 사그러지게 할 위대한 힘을 갖고 있지만, 평상시는 너무 조용한 것이 물이다. 또한 물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와 휴식을 준다. 바쁜 일과 속에서도 물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또한 생명의 근원이다. 물 없으면 하룬들 살 수 없으며 천지창조의 어떤 신화도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것이 물이다.
사각형이든 원형이든 어떤 형태이든 주어진 모습대로 흐르는 물과 같이 우리는 유연하게 살 필요가 있음을 잘 알면서도, 막상 마음은 항상 어긋난다. 생명의 모체인 양수에서 우리는 아늑한 평안함을 갖고 살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세상 밖에 나와 무엇인가 알면서 부터 괴로워하고 시름에 젖기도 한다. 무엇을 할 때, 우리는 지나친 결과에 집착한다. 학생들의 공모전 출품도 그렇다. 욕심 때문에 자신을 원망하고 심사자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실망스러운 일을 스스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비록 하고자 하는 일들이 뜻대로 안될지라도 물같이 마음을 비우고, 설령 결과가 미흡하더라도 시름을 잊고 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도 마음 비우기의 일환이다.
오늘 혹 일상 중에 밀려오는 잡념들과 피곤함이 밀려온다면 부딪히는 파도에 실어 햇빛, 바람, 파도 소릴 들으며 물같이 마음을 비워보자!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흐르는 물처럼 두려 한다. 물의 본성대로, 비움으로써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대로 맞추며 살련다.
2015년 9월 마지막 주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