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이다. 정부는 지난 5월 코로나 엔데믹을 선언했다. 코로나 첫 확진자 발생 3년 4개월 만에 심각경보가 해지되면서 격리와 마스크 착용 의무 둘 다 사라졌다. 지금은 주변에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눈에 띌 정도로 일상회복이 이루어진 듯하다. 여전히 어디선가 누군가는 코로나확진자가 되지만.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지난 8월 여름휴가 이후, 코로나가 다시 찾아왔다. 가족 중 나에게만 왔다. 당황스러웠다. 가장 조심하고 가장 약한 나를 두 번이나 찾아오다니. 코로나는 몸에 들어왔다는 신호를 첫 번째처럼 분명하게 알려줬다. 두 번째라 처음 당하는 거 보단 약간의 여유가 생겼을까? 그랬다. 나만 안방에 편히(?) 격리되었다. 2번째 감염으로 더 아프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아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덜 아프지만, 더 많이 쉰, 강제로 휴가 끝에 주어진 홀로 휴가를 정말 잘 보냈다. 심심하지 않았냐고 묻는 딸에게, 자고, 먹고, 읽고, 쓰고, 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잘 쉬었다고 웃어 보였다. 방 안에서 쉬는 동안 2020년 코로나로 어수선했던 시절로 돌아가 나를 만났다.
울산으로 이사한 지 딱 1년 만에 이곳에도 하나둘씩 코로나 확진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년을 암 치료로 내 몸만 쳐다보며 살았다. 어느 정도 급한 불 껐다 싶어 슬슬 바깥활동을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큰 장애물이 앞에 나타났다. 새로 시작할 마음의 준비는 다 됐는데 외부에서 갑자기 중단시켜 계획된 작업이 유예된 듯해 복잡 미묘했다. 분노와 안타까움. 뒤이은 묘한 공동체의식까지 내 안의 반응은 다채로웠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 팬데믹을 선포하며 우리 모두의 평범한 일상이 멈춰 섰다. 학교 가고, 쇼핑하고, 친구와 수다 떨기 같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일상이 불가능했다.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며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2020년 2월 딸의 유치원 졸업식은 없었다. 학부모가 참관하지 않는 유튜브 생중계로 졸업식을 봤다. 본격적으로 학생의 길로 들어서는 초등학교 입학식도 없이 몇 번의 연기 끝에 5월에야 겨우 등교했다. 마스크 쓰고 등교하는 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드디어 학교에 입학했구나, 잊지 못할 코로나 키즈의 입학 순간이구나, 안타까운 마음에 줄지어 교실로 들어가는 딸이 눈앞에 안 보일 때까지 서 있었다.
매일 신규확진자 수가 업데이트 되고, 확진자의 동선이 전 국민에게 공개되는 신기한 풍경이 일상이 되었다. 비대면, 비대면하면서, 배달음식과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감염됐다더라,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더라, 등등 집 밖은 공포의 대상이 되어 꼭 필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집에 머물렀다. 바깥은 겨울이 지나 목련이 만발한 계절로 바뀌었어도 창밖으로만 봄을 바라봤다. 코로나가 심각했던 2년 동안 아이들과 집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다. 신생아 때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아이들과 온종일 붙어 지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셋이서 나름대로 루틴과 규칙을 정해 하루하루 생활했다.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무척 단조로운 집콕 일상도 흘러가는 시간일 뿐이었다. 큰 애가 유일하게 다니던 영어학원을 끊고, 집에서 아이들과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첫 해는 큰 문제없이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줘서 나도 '엄마표 영어'라는 것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은 은근한 자신감도 생겼다. 그러나 2년째부터는 재미가 없어 지루하다며 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학원에 가도 크게 다를 바 없이 교재로 읽고 쓰고 듣는 것인데도,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로 삼엄했던 분위기도 조금씩 풀리고 학원들도 대면수업을 개시하자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 줬다. 사실 2년 동안 데리고 있으면서 힘겨루기에 지친 나는 엄마가 가르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이만하면 됐다고 나를 위로하며 내려놨다.
혼자 집밥 먹는 것에는 익숙한 나인데도 아이들 밥 해주는 건 참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다. 삼시 세끼를 해 먹인다는 부담. 다양하게 먹지 않아 식단 짜기도 어려워 몇 가지를 정해 반복해서 밥상을 차렸다. 학교급식의 효용에 대해 새삼 깨달으며 급식 없던 시절의 엄마의 노고도 떠올랐다. 아침은 시리얼이나 토스트로 간단히, 점심과 저녁은 볶음밥, 고기, 라면, 떡국, 샤부샤부 칼국수, 비빔밥, 제육볶음, 낚지 볶음, 갈비탕, 김치찌개. 과일과 과자 같은 간식으로 하루하루 밥 챙기며 살다 보니 그 또한 지나간 시간이 되었다. 맛없던 음식도 여러 번 하나 보니 조금씩 맛이 나아졌고, 가끔 맛있다고 칭찬을 받으면 설거지하는 마음이 한결 가볍기도 했다. 집밥이 지겨워 피자나 치킨을 시켜주기도 했지만, 정말 외식이 그리웠다. 나 조차도. 내가 차리는 밥 말고 남이 해주는 밥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혹시나 코로나에 걸릴까 봐 참고 또 참았다. 암 경험자라 몸이 약하니 조심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에 바깥 음식은 한동안 포기하면서 살았다.
작년 4월 아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집안으로 몰고 와 딸과 나에게 전염시킨 후 달라졌다. KF94 마스크만을 철저하게 쓰고 다니던 아들은 반에서 마지막으로 코로나에 걸린 두명중 한 명이었다. 코로나에 걸리고 크게 아프지 않자 아들은 코로나 걱정에서 해방된 듯했다. 안 걸린 남편을 방에 격리시킨 채, 3일 동안 앓아누웠다. 목을 칼로 이는 듯한 고통에서부터 삭신의 고통까지. 정신없이 밤낮으로 누워 지내다 겨우 정신이 들자 마스크 쓰고 밥 해서 식구들을 먹였다. 다시는 걸리고 싶지 않을 만큼 아팠다. 3차 백신을 맞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만나는 사람 없이 동네 산책정도만 하는 나였는데 가까운 가족한테 전염되니 코로나가 전염병이 맞는구나 싶었다. 한동안 나만 코로나 후유증으로 체력회복이 늦어 비실거리며 지냈다. 무시무시한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 우리는 외식을 덜 두려워하게 되었다. 주말에 좋아하는 크림 파스타, 바삭한 탕수육, 갈비를 먹으며 그동안 그리웠던 집 밖의 음식을 다시 탐하기 시작했다. 외식도 하고, 나들이도 가면서 슬슬 코로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전, 난 이미 1년 동안 '자발적'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암 치료를 받는 동안 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마스크를 썼고, 지역에 살게 되어 좋든 싫든 유지되던 인간관계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점점 익숙해지고 있던 차였다. 갑자기 누군가를 작정하고 사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운이 좋게 내 성향과 여러모로 비슷해 말이 통하는 딸의 친구 엄마와 가끔 수다 떠는 사이가 된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마음대로 나가서 먹고, 놀고, 활동할 수 없다는 게 견디기 힘들기도 했지만, 대신 나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Q. 코로나가 없었다면 울산 생활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 문화센터나 평생교육원 같은 곳에서 배우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어울렸을 것 같다.
- 아이들 학교 친구엄마들과 모임을 했을 것 같다.
- 아르바이트로 통역자원봉사를 했을 것 같다.
- 외식과 여행을 더 자주 했을 것 같다.
A. 아마 바깥 활동에 참여하며 남들과 어울리려고 애쓰며 살았을 것 같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쌓아가면서 울산에서 생활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외부활동보다는 내 일상의 루틴을 만들어 지키는 삶을 살게 되었다. 산책하고, 독서하고, 일기 쓰면서 내 삶이 다져졌다. 타인과 보내는 시간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월등히 많아지고 나름 편안해졌다. 나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집콕을 경험한 사람들 대부분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힘을 체득한 것 같다. 대나무의 죽순이 땅속에서 수년을 자란 뒤 단단하게 곧게 하늘로 뻗어나가듯이 나의 코로나 시기도 그런 시기였다. 흔들리지 않는 나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이제는 젊을 때처럼 단조로운 일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주길 무작정 바라지 않는다. 수동적으로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시간은 걸리더라도 내가 감나무를 조금씩 흔들어 감을 딸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 인생의 주인임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려고 한다. 단조롭고 반복적이라 때론 지루하고 평범할지라도 일상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암투병과 코로나시기를 겪으며 호되게 경험했으니까. 오늘 하루도 무사히, 아프지 않고, 잘 살았다는 건 참 감사하다. 이렇게 나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쓸 수 있어서 이 또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