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 살면서 바다 하면, 2-3시간 걸려 도착하는 동해바다만 머릿속에 있었다. 7번 국도의 시작 부분인 속초, 양양, 강릉, 동해까지만. 포항, 울산, 부산은 느낌상 남쪽이라 얼른 생각나지 않았었다. 울산에 살기 전까지는. 울산에 살게 되어 경험의 폭이 넓어지자 생각의 폭도 확장되었다. 지도만 검색해 봐도 알 수 있는 단순한 사실인데 몸으로 직접 가서 보고 경험을 한 후에야 내 머릿속 동해안 지리가 확실해졌다. 이제야 울진, 영덕, 포항을 지나 경주, 울산, 부산까지 이어지는 동해안 7번 국도가 완성되었다. 집에서 1시간 정도면 이웃한 경주와 부산에 갈 수 있다는 게 처음엔 신기했다.
바다가 보이는 울산 동구와 북구는 차로 30-40분 걸렸다. 가끔 간절곶에 놀러 갔을 뿐 오션뷰 카페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오션뷰를 자랑하는 대형 카페에 몇 번 가봤는지 횟수를 세어보았다.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검색창에 나오는 수십 곳에 다 가보지는 못하고, 10여 곳 정도 다녀온 것 같다. 그중 2번 이상 간 곳은 3곳 정도다. 경주 어린 왕자카페, 부산 기장 웨이브온, 울산 간절곶 AOP. 2021년 6월, 경주 양남에 있는 어린 왕자카페를 시작으로 오션뷰 카페 관광을 즐겼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바로 옆에 관성해수욕장이 있는 이 카페는 그야말로 해변가에 펼쳐놓은 파라솔처럼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카페 어린 왕자 (경주시 양남면)
바다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오션뷰 카페가 아닌 직접 발을 담그고 바다를 느낄 수 있는, 오감을 전부 깨우는 카페였다. 90년대 인기발라드곡이 흘러나오는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수수하고 수줍음이 많은 주인이 내려주는 커피맛은 특별하진 않았지만, 바다와 나를 가로막는 창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다른 손님들은 주로 실내에 자리를 잡았기에 빈백과 테이블이 있는 야외 자리는 항상 우리 차지였다. 첫 방문 이후 우리는 알았다. 푹 퍼져 있기 좋아 자주 오고 싶을 거 같다고. 화려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 대신 그저 바다와 어우러진, 그래서 눈에 띄게 치장할 필요가 없는 카페였다. 음료를 마시다가 신발양말 다 벗고 모래와 몽돌이 어우러진 해변을 따라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 이 카페의 존재 가치는 높았다. 여름철 나와 딸은 걷어올린 치마를 움켜쥐고 밀려오는 파도에 소리치고, 뛰고, 달리고, 사진 찍으며 그저 행복해했다. 남편과 아들은 빈백에 파묻혀 음료를 마시면서 핸드폰을 봤다.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카페를 맘껏 즐겼다. 오전 내내 시간을 보내고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항상 아쉬웠다. 실내가 아닌 바깥이고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에 코로나 팬데믹에도 별장처럼 가끔 가서 쉴 수 있었다.
웨이브온 커피 (부산 기장)
2022년 4월, 나와 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야 우리 가족은 그동안 코로나에 감염될까 봐 미뤄두었던 나들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울산을 떠나기 전 남은 시간을 마음껏 즐기자는 목표로 다른 오션뷰 카페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또는 남편과 단둘이 데이트라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5월 부산 기장 웨이브온 카페가 그 시작이었다. 인터넷 검색에서 단연 눈에 띄는 곳이었기에, 부산 여행 중에 들렀다. 리조트 같은 분위기였는데 대형카페라는 게 놀라웠다. 콘크리트 건물에 독특한 디자인. 실내도 야외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빈백에서 편안하게 바다를 감상하는 사람들과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예쁘게 꾸민 언니들로 분주했다. 대형 오션뷰카페를 처음 방문한 촌스러운 40대 아줌마인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남편에게 '좋다, 진짜 넓다, 아름답다, 다음에 또 오고 싶다'며 연신 재잘거렸다. 어린 왕자카페가 조용한 휴식을 위한 별장이었다면, 이곳은 가족, 연인, 친구들로 북적이는 SNS에 등장하는 핫플레이스 자체였다.
카페 AOP (울산 울주군)
나머지 한 곳은 울산 간절곶에 위치한 AOP라는 카페였다. 앞의 두 카페보다는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고급스러운 미술관을 보는 듯한 곡선형 외관의 초대형 카페였다. 넓은 부지에 층별로 테마를 달리해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만큼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 게 눈에 보였다. 여기저기 카페 곳곳이 포토존이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을 모아 줄 세우면 몇 백 명은 족히 될 정도로 울산의 핫플레이스였다. 입구에서 1인 1 주문이 이루어졌고, 생크림과 과일로 장식된 베이커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루프탑에서 마시는 커피에 반해 2번 방문했다.
오션뷰 카페들을 탐방한 후 알게 되었다. 각자 오션뷰 프리미엄을 내세우지만, 바다와의 거리와 규모가 중요하다는 것,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주로 콘크리트 건물로 거대하게 짓는다는 것, SNS에 광고가 되니 눈에 띄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옆 카페보다 조금이라도 더 크게, 크게 오픈한다는 것, 경치값이 포함되어 일반카페보다 음료가 비싸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으면 질리듯 오션뷰 카페를 연달아 다녀보니,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감탄이 점점 줄어들어 나중엔 무미 건조하게 카페를 평가하는 나를 발견했다. 저번 것보다 못하네. 역시 거기가 좋네 등. 그러니 자꾸 더 크고 멋진 카페를 선보이려고 애쓰고 돈을 투자하겠지, 주말이 아닌 평일에는 찾는 사람이 적을 텐데 유지가 될까 등 쓸데없는 걱정까지 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바다를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힐링하고 가면 될 것을. 왜 나는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
얼마 전 짝퉁 웨이브온 카페의 철거 판결이라는 기사를 봤다. 남편이 울산에 이런 곳이 있었다면서 같이 영상을 봤는데 지점도 아닌 별개의 카페임에도 외관과 내부 모두 똑같아 보였다. 짝퉁 카페라고 불릴 만했다. 웨이브온 카페는 다양한 건축상을 받았을 정도로 유명한데 건축물도 표절했다는 것이 놀랍고 또 안타까웠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웨이브온카페와 울산에 위치한 카페 간의 소송이어서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안타까웠다. 카페마저도 짝퉁을 시도하다니... 크고 멋있게 만들고 싶었으면 노력을 했어야지. 욕심만 있고 노력 없이 거저먹으려고 한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했다. 어느 분야든 창작물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며 짝퉁이 허용되어서 안된다고 생각한다.
울산에 산 특권을 충분히 누렸다. 바다도 맘껏 보고 대형오션뷰 카페에도 가봤다. 조용한 카페에서도,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도 커피를 마셔봤다. 바다 옆에 있어서 특별해 보이는 카페. 바다가 보고 싶을 때 한 번쯤 쉬고 올 만한 곳이다. 가끔씩 여행은 가고 싶은데 멀리 못 가는 상황이라면, 오션뷰 카페에 가서 여행자의 감성을 느끼며 일상을 벗어날 수 있어서 좋다. 무엇이든 마음이 동하는 게 오래간다. 단, 자기만의 색으로 존재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든, 사람이든. 모든 것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