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장보기에는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울산에는 5일장이 열린다.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시골 5일장이 열리는 게 신기했다. 어릴 적 엄마 따라 재래시장에 가면 이것저것 볼 것이 참 많았다. 고등어, 병어, 갈치, 조기가 비린내를 풍기며 자판에 펼쳐져 있었다. 사과, 배, 포도 같은 다양한 과일도, 시금치, 대파, 배추를 비롯한 각종 채소도 진열되어 지나가는 손님의 눈길을 받았다. 시장 갈 때마다 떡볶이와 순대, 튀김으로 배를 기분 좋게 채운 후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에 걸어오거나, 과하다 싶게 장을 보면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나에게 재래시장 방문은 반나절은 걸리는 특별활동 같은 것이었다.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으로 그곳도 예전 같지 않다고 엄마에게 듣기만 했을 뿐 언제 마지막으로 갔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곳곳에 쾌적한 쇼핑환경과 편리함을 무기로 언제든 신용카드만 있으면 환영받는 대형마트 장보기가 일상인 시대가 되었다. 주말마다 마트를 찾는 것이 어느새 일과가 되었고, 카트와 카트가 얽히고설키는 혼잡한 광경도 자주 발생했다. 한 층 더 나아가, 코로나 팬더믹 시대를 살면서 비대면 온라인 장보기가 급속히 대세가 되어, 스마트폰에서 마트 앱을 열고 장을 보는 디지털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내가 살던 중구 태화종합시장에서 매월 5, 10, 15, 20, 25, 30일이 되면 장이 열린다. 주민들이 하나둘씩 약속이나 한 듯 장바구니 캐리어를 끌고 시장으로 간다. 인근 주민들도 버스를 타고 장 보러 올 정도로 중구에서는 꽤 큰 전통시장이다. 울산 생활 첫 해는 장날이 있다는 것만 알았고, 2020년부터 장날이 되면 구경도 하고 산책도 할 겸 나갔다. 한두 번 가게 되니 신기하게 장날이 되면, 다른 아줌마들처럼 자연스럽게 아이들 등교시키고 시장으로 갔다. 심지어 장날을 기다리기까지 했다. 혼자 속으로 웃기도 했다. 울산사람이 다 된 거 아니냐고. 대신 캐리어는 끌지 않았다. 집에서 20분 정도 걸어야 하고, 팔도 아프고 체력이 좋지 않아 들고 올 수 있을 정도만 샀다. 보는 족족 다 사고 싶을 정도고 싱싱하고 저렴한 먹거리가 눈에 어른거렸지만, 다 들고 올 수 없어 매번 나만의 장날 쇼핑리스트를 생각해 갔다.
태화시장에서 길을 잃을 정도였다. 장이 서지 않는 평상시에는 재래시장인데, 장날에는 노점이 빼곡하게 들어서 상인과 쇼핑객들로 북적거렸다. 혼잡한 시장통에서 대부분 쇼핑 캐리어를 끌고 오니 빈 몸으로 걸어가려 해도 앞질러 가는 것도 한 곳에 구경하며 서 있는 것도 눈총을 받을 정도였다.
오고 가는 사람들로 좁은 인도가 더 좁게 느껴지는 인도 옆 작은 주차장 입구 쪽에 앉아 도라지와 더덕을 파는 엄마 같은 아줌마가 있었다. 노점 장사꾼이라면 자연스레 풍길법한 피로한 노련함 대신 그저 엄마 같은 푸근함만 느껴지는 분이셨다. 더덕과 도라지를 좋아하는 나는 그곳에 자주 갔다.
"지난번 장날에 안 오셨는데 바쁘셨나 봐요."
"우리 아저씨가 허리를 다쳐 챙기느라 못 왔지."
"다음에도 안 오실지 모르니 도라지 좀 더 주세요."
"젊은 사람이 장에 오니 내가 좀 더 주고 싶네. 직접 까서 먹으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어. 까는 법도 쉬워. 양파망에 넣고 비비서 까면 잘 까지는데."
"저희 엄마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생각보다 잘 안되고, 제가 팔이 아파서요. 저희 식구 중에 저만 먹으니 조금만 필요해요."
"그럼 이것만 먹고 다음 장에 또 와요. 내가 또 까놓을 테니."
그냥 평범한, 의미 없이 지나가는 대화일 뿐이지만, 엄마가 보고 싶을 때는 이 분과 몇 마디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엄마의 손길로 다듬어진 더덕과 도라지가 빨간 고춧가루옷을 입고, 식탁에 올려졌던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장날에 다녀오면, 다음날 엄마와의 전화통화에서 그 아줌마 이야기를 했다.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울산 장날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엄마도 어느새 장날을 챙기게 되었다. 도라지 사 왔냐고 물으시면서.
장날은 교통정체로 주변이 혼잡하다. 주차장이 부족해 길게 늘어선 차들은 차례를 기다리고 눈치싸움을 하면서 차를 댄다. 신용카드는 안되고 현금거래만 된다. 몇 가지라도 사면 계산이 빨리 안될 때도 있고, 거스름돈을 세느라 몇 분이 소요되기도 한다. 배달도 안된다. 쓰다 보니 이런저런 불편함이 많아 보인다. 관찰자적 입장에서 보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장날은 여전히 혼잡하고,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세상에 익숙한 중장년층에게 장날은 사람 냄새와 농수축산물 냄새가 섞이는 살아있는 곳이다. 스마트폰 화면 속의 무미건조한 상품을 보고 버튼을 누르면 쇼핑시간은 단축되고 편리하다. 그러나 클릭만으로 세상의 거의 모든 물건을 살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 살면서 편리함 대신 불편함을 선택하여 다른 인간을 찾아 작은 교류를 하고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상이 공존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양쪽을 오갈 수 있어 더욱 감사하다. 장날에 사람 냄새가 그리울 때 그리고 사람의 활동과 흔적을 느끼며 내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을 때 방문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모르는 장날의 맛이 곧 사라질 것도 같아 내심 걱정스럽고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언제까지 울산 5일장이 지속될까? 마음속으로 계속 번성하길 응원해 본다. 어제도 열렸을 텐데. 어릴 적 철 모르고 엄마 손 잡고 따라간 재래시장보다 철들어 사람냄새를 맡게 해 준 5일장의 존재가 내 가슴을 더욱 따뜻하게 대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