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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ug 11. 2024

거실에서 노래방을 만났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94

기분을 업시키는 데는 노래만 한 게 없다. 유튜브를 즐겨보는 딸이 거실을 노래방으로 만들었다.

노래방 기능이 있다는 걸 딸 덕분에 가족 모두 처음 알게 되었다. 방음 장치가 되어 있는 노래방처럼 마이크를 잡고 목청껏 소리를 지를 수는 없지만 반주가 흐르고 화면에서 가사가 흐르니 익숙한 노래방 화면이다. 소심하게 흥얼거리고 분위기 잡기에는 딱이다.


유튜브 검색창 


거기다 윤도현의 사랑했나 봐를 첫 노래로 틀면서 딸도 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다. 언제 이 노래를 들어봤는지 궁금한 것도 잠시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노래방에 자주 다녔다. 내성적인 나와 영 안 어울리는 그곳에서 주말마다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노래연습을 했다. 장기자랑 시간에 노래를 불러야 해서 연습 삼아 다녔다. 노래를 참... 못했다. 가족 앞에서 불러도 삑 소리 나고 음정이 안 맞으니 쉽게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것도 한두 번... 매주 가서 부르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하고 싶은 노래를 부르며 점점 익숙해져 갔다. 시간제 노래방에서 마지막 10여분쯤 남아 시간 추가를 살짝 고민할 때쯤 사장님이 20-30분을 서비스로 넣어주셨다. 사그라져가던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듯, 우리들은 열심 모드로 노래를 불렀고, 1분이 남으면 미리 찾아놓은 곡 번호를 재빨리 입력해 정해진 시간을 아낌없이 다 썼다. 삼 남매가 돌아가며 불러대니 엄마는 마이크 잡을 차례가 오지 않아 매번 자식에게 양보했다. 아니면 나보다 더 부끄러움을 타서 나서지 않으셨는지, 아직도 모른다. 엄마가 딸노래까지 신경을 쓸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니 남다르긴 하셨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래방은 1991년 부산 동아대 앞 오락실에서 곡당 300원으로 시작되었다. 1990년대는 노래방의 전성기라고 할 정도로 1993년에 청소년 출입제한이 풀리면서 매년 수천 개씩 늘었다. 2000년에 2만 개를 돌파하며 2017년까지 3만 5천 개 이상을 유지했다. 2013년 이후에는 코인노래방이 급속히 증가했다. 자료를 보니 노래방 문화가 한창일 때 대학생활을 했다. 신촌이대홍대를 넘나들며 친구들과 넷이서 다섯이서 뭉쳐 다녔다.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어 노래방에 자주 갔다. 여전히 노래는 친구들 중 제일 딸렸지만 모두가 한 목소리로 훈훈하게 열창하면서 진한 우정을 나누곤 했다. 하노래방에서 럭셔리노래방이 홍대 쪽에 생기면서 업그레이된 노래방 문화를 즐겼다. 지하에서 벗어나 2층에 여대생들을 홀릴만한 인테리어로 치장한 노래방에서 신발 벗고 바닥에 앉아 편한 자세로 인형까지 부둥켜안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까지 부를 수 있는 우리만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라 일반 노래방에 비해 두 배정도는 비쌌지만 인기가 좋았다. 가창력이 좋았던 친구들은 긴 생머리를 풀고 소찬휘,  김경호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며 락커분위기를 잡았다. 차분한 발라드를 저음으로 부르는 친구도 있었고 팝송만 부르는 친구도 있었다. 락발라드, 발라드, 팝송, 댄스곡 등등 각자 취향이 분명했던 우리들은 그렇게 지금도 자신만의 취향대로 살고 있을 것 같다. 비록 지금껏 연락하는 친구는 하나만 남았지만.


직장생활에서 회식의 마무리로 찾는 노래방은 피하고 싶은 곳이었다. 취하기라도 하면 좋았을 텐데 맨 정신에 음치가 노래하기는 진짜 벌 받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보통은 안 부르고 분위기를 맞춰주면서 꼭 지켜야 하는 자리는 지켰다. 술이 들어가면 사무실에서 본 사람들이 맞나 싶게 변신하는 동료들을 지켜봤고, 당시만 해도 여자직원들과 손을 잡고 술기운에 분위기를 잡고 싶어 하는 상사도 매번 봤다. 불쾌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분위기를 눈치껏 알아서 잘 맞춰주는 선배 여자 직원들을 바라보며 생존을 위해 그간 쌓아온 그들의 고민과 고통을 소리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노래방 갈 일이 없다. 코로나 19 전, 친구와 둘이 코인노래방에 간 게 마지막이었다. 추억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가끔 놀러 오자고 했지만 다시 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딸 덕에 우연히 만난 집구석 노래방 체험은 노래가 부르고 싶을 때 언제든 편히 찾을 수 있는 오락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기분이 좋아도 슬퍼도 외로워도 잠시 흥얼거리고 나면 풀리니 쉽게 할 만하다. 가족행사에도 반주만 흐르게 해도 좋고 장난스레 같이 불러도 좋을 분위기메이커가 있을 같다. 앞으로 자주 이용하기로 했다. 최신 곡도 듣고 추억의 곡도 들으면서 음악의 힘을 믿는다. 옆에서 아들은 장난스레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검색해서 부르고, 남편도 "오래된 노래"를 검색해 들려준다. 






2019년에 작성된 기사를 봐도 노래방 수는 줄고 있었고, 2022년 9월 기준으로 2만 7천 개가 있다.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1903272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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