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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Oct 27. 2024

아들이 만든 탑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34


공든 탑이 무너질까?

노오란 귤껍질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아들의 탑을 볼 때마다 웃지 않을 수 없다. 하루 전에 산 2.5킬로짜리 귤 한 박스가 곧 바닥을 드러낼 기세다.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한 박스에 보통 25-40여 개 정도 들어있다. 식구들이 오며 가며 먹으라고 씻어서 쟁반에 둔 귤은 아들이 왔다 가면 끝이다. 새콤달콤한 유혹에 빠진 아들은 스스로 씻어가면서까지 혼자만의 귤 맛에 빠진다. 흡족해하며 "저 이만큼이나 먹었어요! 잘했죠! "라고 말하고 싶은 듯, 보란 듯이 껍질만 식탁에 두고 유유히 방으로 사라진다. 먹는 것 가지고 타박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인스턴트식품도 아닌 자연식품을 먹으며 자발적으로 비타민을 섭취하기에 그냥 둔다. 모든 게 과유불급이라는 말만 가끔 할 뿐 웬만하면 모른척하고 지나간다.


개나 까먹었는지 없는 수북한 껍질을 보며 구릉인지, 산인지, 탑인지 이것저것 떠올려봤다. 


"이거 봐. 오빠가 또 귤껍질 산을 만들었어!"

"껍질 탑인 거 같은데요!"


산이라고 표현했던 나와 달리 딸은 탑이라고 불렀다. 그런가? 산보다는 왠지 그럴싸해 보였다. 자연의 힘이 아닌 인간의 창의성과 노동력으로 완성된 "탑"이 마음에 들었다. 


언덕, 구릉 : 땅이 비탈지고 조금 높은 곳

산 :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땅의 부분

탑 : 여러 층으로 또는 높고 뾰족하게 세운 건축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나름 무너지지 않게 머리를 써서 쌓은 흔적이 보였다. 그냥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있는데, 왜 쌓은 걸까? 레고 블록을 쌓던 아이 때로 돌아간 것일까? 익숙한 속담인 "공든 탑이 무너지랴"가 떠올랐다. 끈기와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 말, 정성 들여 한 일은 결과가 헛되지 않는다는 그 가르침을 여전히 믿는다. 


자극적이고 순간적인 즐거움과 만족으로 가득한 일상에서 끈기와 노력을 내세우는 일이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 외부의 자극에 휘둘리는 아이들이 걱정스럽다. 보이지 않는 노력보다는 갑자기 눈에 보이는 결과만 보고 감탄하고 질투하는 어른들의 모습도 안타깝다. 사소해 보이는 하루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또 그 한 달이 반년, 그렇게 일 년이 된다. 누구나 알지만 잊고 무시해 버리기 쉬운 습관의 힘,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힘을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살고 싶다.  


귤 탑의 향이 집안에 은은하게 퍼지도록 그대로 둔다. 돌탑을 쌓는 마음으로 소중한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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