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98
집밥이 먹고 싶어요.
집밥?
김밥으로요.
집밥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어느새 네가 집밥을 알고 찾는 나이가 되었니? 엄마 손으로 해 주는 집밥의 맛을 안다고? 엄마가 해 주는 집밥이 그리운 나는 가끔 시어머니밥에서 집밥의 온정을 느낀다. 중2 아들은 3월부터 일주일에 딱 2번 혼밥을 하고 학원에 다니고 있다. 인생 첫 혼밥시작이다. 하교 후 집에 들러 밥을 먹고 가기에는 거리상 1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설레어했다. 배달 음식을 거의 시켜주지 않는 엄마에게 사달라고 하는 대신 당당하게 마음껏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부풀었다.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대충 때우지 말고 잘 먹고 가라며 학원 주변 식당을 알려주었다.
수많은 식당 가운데 아들은 예상대로 패스트푸드점에서 치킨버거를 먹었다. 혼자 먹기에 편할뿐더러 워낙 좋아하는 치킨이 들어간 버거니 그러려니 했다. 며칠 전까지도 같은 곳을 찾아갔다. 그러던 아들은 저녁식탁에 모두가 둘러앉았을 때 진지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집에서 먹는 밥이 맛있는 거 같아요. 밥맛이 좋으면 돼요. 혼자 먹는 것도 쓸쓸하고."
요리에 탁월한 재주가 없어 밋밋하게 먹고 산다. 주말은 보통 손쉬운 샤브샤브를 해 먹느라 이미 냉장고에 식재료를 사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입에서 김밥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그 자리에서 메뉴를 바꿨다. 김밥으로. 샤브샤브를 가장 좋아하는 남편은 옆에서 상관없다는 말과 함께 시금치와 당근이 들어간 기본 김밥을 싸라는 식으로 말을 흘렸다. 남편보다 아들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일단 김밥을 쌌다.
꼼짝 않고 두어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밥하고, 재료를 준비해 부치고, 삶고, 말고, 칼로 썰어 접시에 올려놓고는 식구들을 불렀다.
"당근 넣었어요? 당근은 진짜 아닌데."
"햄이 적어요!"
"아빠가 시금치와 당근 넣으라고 해서 이렇게 만들었어요?"
김밥에 대한 평가는 안 좋았다. 말없이 먹는 건 남편뿐이었다. 집에서 싼 김밥이라고 했으니 안 먹는 당근을 빼고 김밥을 말았어야 하는데, 눈치 없는 엄마는 먹여보겠다고 선을 넘었다. 그냥 애들 좋아하는 햄과 계란을 듬뿍 넣고 실같이 가느다래 눈에 잘 안 띄게 우엉채와 시금치 한 줄, 단무지를 넣었어야 했다. 딸아이보다 더 컸으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던 아들은 처음에는 완전체 김밥 한 줄을 먹더니 이내 당근을 빼기 시작했다. 모른척하고 보다가 그만 먹으라고 해버렸다.
"제가 원하는 김밥이 아니었어요. 저는 맛있는 밥과 고기면 돼요."
네가 말하는 집밥은 그런 뜻이었구나. 어느 순간 아들이 성인이 되었다고 느낀다. 그러다가 곧바로 아직 아이구나 싶은 때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다. 아이와 성인의 모호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듯하다. 아직 10대인데, 엄마는 왜 이리 흔들릴까. 그냥 성장하는 과정일 뿐인데 아들이 하는 말이 마음에 너무 쉽게 머문다. 첫아이라 모든 게 신기하고 경이로웠던 그 시절처럼 지금의 작은 순간들이 나를 움직이고, 생각하고, 글을 쓰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