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99
내 지갑에서 나간 돈이 다시 내 지갑으로 들어온다. 멀리 가지도 못하고 들락날락하는 오만 원짜리 한 장.
잠시 떡 사러 간 사이, 엄마는 설 이후 만난 손녀딸 손에 기어이 돈을 쥐어 주셨다. 오래간만에 할머니를 보러 왔으니 주고 싶다고. 그 마음 어련하실까. 알지. 자식들에게 받는 넉넉하지 않은 용돈으로 생활하지만 그마저도 아끼고 아껴 주고 싶은 마음만은 어쩔 수 없으신가 보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 같은 엄마는 손자손녀를 볼 때마다 원하는 만큼 주지 못해 한스러워하신다.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라는 표정을 한 딸아이는 돈을 꼭 쥐고 나를 쳐다보았다.
"안 줘도 되는데, 엄마 쓸 돈도 없는데."
"용돈 받은 거야. 더 주고 싶은데 못줘서 미안하다."
아휴. 한두 번이 아니니 그려려니 넘어간다. 빈만큼 채워서 용돈을 드리면 되니 이렇게라도 잠시 흡족해하시면 됐지. 애들 생일이나 명절 때도 용돈을 모아 주시거나 아니면 따로 봉투에 넣어 챙겨드리면 손자손녀들에게 주신다. 다 알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웃으며 받아 든다.
차를 타자마자 딸아이는 그 무거운 돈을 건네며 말했다.
"엄마. 할머니 다시 드리세요. 제 용돈에서라도 드리고 싶은데 이 돈은 안 받을래요."
"그래? 고마워. 고마워. 다시 할머니 드릴게."
할머니가 주신 돈이니 그냥 네가 쓰라는 말이 나왔으면 좋으련만. 그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덥석 돈을 받아 지갑에 넣었다. 엄마의 기분을 살려주고 딸의 기특한 마음도 동시에 살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병원생활하는 할머니를 어느 손자손녀보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딸아이는 이럴 때 보면 철이 든 것 같다. 집에서 투덜대고 어리광 부리는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돈을 건네지 않으면, 오랜만에 얼굴 보고 잠깐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은 걸까? 가끔 보는 손녀에게 용돈을 안 주면 할머니로서 자격이 없다고 느껴지는 걸까?
엄마도 아빠처럼 아이들을 보면 돈을 주고 싶어 하신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는 가족에게만 주지만, 자수성가한 아빠는 만 원짜리 지폐를 가득 담고 다니면서 조카나 손자들에게 주셨다. 부자 삼촌이며 부자 할아버지였다. 어느 친척도 아빠처럼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 없이 살던 시절의 설움을 씻어낼 작정이라도 하신 듯, 아빠는 돈을 뿌리셨다. 그 눈먼 돈을 아껴서 엄마에게 고스란히 남겨주고 가시지 않았다고 남은 우리들은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부자 할머니가 아니라서 엄마는 언제나 변함없이 미안해하신다. 그 마음은 이미 자식을 넘어섰다. 이제는 아이들이 웬만큼 커서 엄마 사정을 아는데도, 그렇기에 더욱 주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런 엄마를 보는 내 마음은 착잡하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싶다가도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걸 어쩌겠나 싶다. 인생에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나이 들수록 든든한 지갑이 자존심을 지켜준다는 말이 또다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