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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옥수수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42

by 태화강고래

샛노란 아니 연 노란 옥수수는 김이 피어오를 정도로 따끈했다.

서울 시댁에서 한 시간가량 걸려 집에 오는 동안에도 옥수수는 갓 쪄낸 온기를 그대로 품고 있었다. 남편이 건네자마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저녁준비가 거의 다 되었지만 밥보다 옥수수를 먼저 입에 갖다 댔다.


난 옥수수 먹야지. 수수 먹을 사람?

난 이미 먹고 왔지만 하나 더 먹는다.


거실에 있던 아이들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먹을래? 참, 너희들은 안 좋아하지." 알면서도 그냥 한번 물어보고 우리는 옥수수 하모니카를 각자의 속도로 불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름 하면 옥수수 하모니카가 자동으로 연상되어 머릿속에서나 입속에서나 흥얼거려진다.


"우리 아기 불고 노는 하모니카는 옥수수를 가지고서 만들었어요. 옥수수알 길게 두줄 남겨가지고 우리 아기 하모니카 불고 있어요." 초등학교 때 배운 동요는 추억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가끔 맛보는 옥수수는 달콤하다. 여전히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고, 영상매체를 통해 언제든지 듣지만 요새 아이들은 우리만큼 느끼는 것 같지 않다. 그만큼 단짠단짠 자극적인 먹거리와 들을 거리가 풍부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난 옥수수 중에서도 특히 보랏빛이 돌며 쫀득한 흑찰 옥수수를 좋아했다. 마다 동네 노점에서 파는 흑찰 옥수수 서너 개 들이 한 봉지를 주로 샀다. 집에서 찌면 맛이 없어 여름의 맛을 가볍게 사서 거뜬히 먹었다. 그런 나였지만 아프고 나선 옥수수를 내 손으로 사지 않았다. 누구는 옥수수가 건강에 좋다 하고, 누구는 암환자의 금지 음식이라고 하니 처음에는 무조건 피했다. GMO 먹거리의 대표주자인 듯한 옥수수를 선뜻 사 마음껏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댁에는 여름마다 옥수수 한 상자가 배달된다. 시누이 친구 부모님이 옥수수 농사를 하시는데, 매년 옥수수를 선물한다고 한다. 강원도 옥수수를 받으면 어머니는 삶아서 우리 집과 시누이집에 맛보기로 몇 개씩 보내셨다. 한동안 남편만 옥수수를 먹었다. 난 지켜보기만 했다. 순식간에 옥수수 두 개를 게 눈 감추듯 해치우는 남편은 음미하지 않았다. 그냥 좋아한다며 쓱 입에 털어 넣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작년부턴가 나도 슬그머니 옥수수 냄새와 식감을 즐기고 싶어 손을 뻗기 시작했다. 시중에서 파는 뉴슈가로 코팅한 달달한 옥수수보다는 덜 달았지만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무덤덤한 사람처럼 어머니의 옥수수는 딱 그런 맛이었다. 싱겁다, 단 맛이 살짝 부족해라고 느낄 수도 있는 그 맛이 1년에 한 번 먹다 보니 기다려지는 맛이 되었다. 수박, 포도, 복숭아 같은 여름철 과일의 넘치는 당도에 빠져있다 보면 가끔 심심한 옥수수 하모니카가 불고 싶어진다. 어머니가 주시는 건 무조건 좋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더운 여름을 보내시느라 기력 없으시다길래 오랜만에 한우 국거리를 좀 사서 보내 드렸더니 옥수수와 깨를 보내셨다. 자식에게 받는 것보단 주고 싶은, 죽을 때까지 부모로 사는 마음이란...


옥수수 알갱이를 쏙쏙 빼서 먹고 나니 볼품없는 대만 남았다. 배는 찼는데 추레한 쓰레기가 된 옥수숫대가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지나친 감상주의는 금물인데... 자꾸 이런 것만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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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스런 옥수수 대신 먹고 남은 흔적을 남기는 사람도 드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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