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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걱정하지 말아요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45

by 태화강고래

요새 엄마는 엄마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나를 힘들게 한다. 두 사람이 내게 특별히 부탁한 것도 강요한 것도 아닌데도 그저 노모와 어린 자식의 돌봄자로 '잘하고 싶다,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내 몸이 아플 땐 혼자 아프고 마는데 내 손길에 영향을 받는 가족이 아프면 감정부터 널뛰듯 흔들린다.


아들의 여드름은 심각했다. 4대째 내려오는 여드름인지 시어머니 말씀처럼 그 유전자의 힘이 엄청났다. 좋은 것만 받아도 시원찮은데... 피하고 싶은 것을 온몸으로 받은 듯했다. 시할아버지, 시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까지... 얼굴, 등, 그리고 두피에까지 퍼져 동네 피부과를 자주 찾았다. 약도 먹고 관리를 해도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한 달 전부터 갑작스레 정수리 부근이 도드라지게 붉어지며 심각해 보였다. 혹시 모르니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흘리는 피부과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그날로 바로 예약했다. 원형탈모의 확산을 막기 위해 염려하며 열심히 피부과에 돈을 썼는데, 결론은 차도가 없었다. 오히려 더 나빠진 듯했다.


엄마는 몇 년 만에 진짜? 환자가 된 듯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지내신다. 70세가 훌쩍 넘고, 편마비 상태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재활운동을 하던 엄마였지만 지난주부터는 낯선 사람처럼 변했다. 병실에서 만나는 엄마는 영락없이 다른 할머니들처럼 아프고 힘없는 노인이었다. 욕창은 아니지만 깊이 뿌리내린 종기를 제거한 시술로 일주일 넘게 항생제를 맞아가며 버티는 중이시다. 요양병원 자체판단으로 시술을 했다는데 상처부위가 크고 너무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보자,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병원을 믿고 회복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지 그저 답답하고 염려스러웠다. 이럴 때 주변에 의사인 지인이 있다면 얼마나 도움이 될까를 절실히 느끼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인터넷 검색과 요양병원 관계자와의 대화뿐이었다. 머릿속은 시끄럽고 육체는 지치고 피곤한 상태로 며칠을 지내다 마침내 예약한 날이 다가와 아들을 데리고 대학병원 피부과에 갔다.


오후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갔다. 예상대로 의사는 절개를 해서 염증인지 고름인지를 제거해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보통 의사들이 그렇듯, 걱정할 필요 없다며 다음 주로 수술 날짜를 바로 예약해 줬다. 시간을 길게 끌지 않고 바로 조치를 취한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진료 후 안내를 기다리며 아들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제 머리 문제인데, 왜 엄마가 더 신경 쓰고 걱정해요?

이미 벌어져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내려놓아야 편해요.

엄마니까 걱정하는 거지. 근데, 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놀랐는데!

게임을 하면서 깨달았어요. 안 되는 건 마음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요. 계속 신경 쓰면 답답하기만 해요.

아! 대단하다! 엄마는 아직도 잘 안되는데, 넌 그렇게 마음조절이 돼?


사춘기라 머리에 신경이 많이 갈 텐데 아들은 덤덤하게 지내고 있다. 학교와 학원에서 친구들이, 선생님들이 궁금해하고 한 마디씩 한다는데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에 대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속으로는 어떨지 알 수 없지만 겉으로 쿨하게 지내는 모습이 오히려 짠했다. 중학생 아들의 말이 어떤 책에서 본 구절이나 어른의 조언보다 생생하고 신선했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넘겨보는 마음 챙김의 글을 한두 번 읽은 게 아닌데... 글로 읽을 때뿐 실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들보다 인생을 곱절도 더 산 나는 여전히 안절부절 자책과 후회, 염려로 스스로를 괴롭힌다. 암에 걸리고 나서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 해도 하루아침에 다른 성격으로 변할 리 없었다. 속시원히 해결될 때까지 머릿속에 맴돌며 집중력을 흩트려 놓는 게 다반사다. 그나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고통스럽고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예전보다는 하루 이틀이라도 빨리 사라진다는 데 있다.


키만 큰 게 아니라 마음도 크고 있었다. 생각보다 잘 크고 있는 듯했다. 자식한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울컥 솟았다. 앞으로 계속 난 아들에게서 이렇게 배워나갈 거 같다. 내가 살아온 방식과 다른 이의 살아가는 방식,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아들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를 기대하며 마음 내려놓기를 건강한 방식으로 실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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