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도 갈 수 있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67

by 태화강고래

갑자기 나 여기 있어, 잊지 마!라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죽음.

갑자기 툭, 고요한 일상에 던져진 것 같은 부고장은 잠시라도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한꺼번에 불러들이는 힘을 갖고 있다.


TV속 인물들의 부고는 세상의 관심을 끌며 사라진다. 현실에서는 1년에 한두 번 친인척에게서 부고를 듣고 돌아가신 아빠와 병원에 계신 엄마를 대신해 꼭 가야 한다고 마음이 앞서는 곳만 주로 다닌다. 울산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항암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니 가능하면 그분들과의 인연을 마무리 짓는 심정으로 인사를 간다.


새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탄천물이 얼 정도로 바깥바람은 매섭지만 산책하고 돌아와 가볍게 따뜻한 차 한잔 마시는 중이었다. 메시지가 왔다.


이분이?

놀랐다.

아직 젊으실 텐데. 향년 56세. 남편처럼 아직 50대인데 그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뵌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기억 속 그분은 체격 좋고 넉살 좋게 웃고 계셨다. 다면 먼 이종사촌언니의 남편이 그날 아침에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었다. 번개라도 맞은 것 같은 갑작스러운 죽음에 그동안 어떤 일상을 보내셨는지 궁금했고 병으로 돌아가셨을 거라 지레짐작만 하고 조문을 가기로 했다. 동생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못 가고 우리 집 대표로 참석한다는 말을 엄마에게 전했다.


혼자 조문 가는 건 처음이었다. 결혼식도 아닌데 혼자 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혼자서도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자 주저하는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함께 자란 사촌은 아니지만, 아빠의 사업실패 후 티끌 같은 빚을 지고 산 마음이 있었기에 인사드리고 싶었다. 해뜨기 전 집을 나와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그나마 서울이라 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9시 전에 도착한 장례식장은 텅 비어 있었다. 예전에 보던 상주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행히 고인의 형님이 계셔서 인사를 드리고 조문을 했다. 고인이 3년간 루게릭으로 투병하셨는데 한 달 사이 급격히 악화되어 떠나셨다는 간략한 이야기를 들었다. 운동 세포가 손상되어 근육이 위축되는 희귀 질환이라는데 얼마나 힘드셨을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상주인 사촌 언니는 전날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몸이 안 좋아 집에서 쉬다 오는 중이라는 말씀에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숨소리도 안 들리게 고요한 공기 속에, 눈에 들어오는 건 테이블을 덮은 흰 종이뿐이었다. 이른 아침인 탓도 있겠지만 3인 가족, 그것도 가장의 장례식장은 더없이 조용했다. 떠난 자와 남은 자가 공존하는 이곳. 점점 이런 풍경이 익숙하게 될 것 같다.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는 우리의 장례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20여분 뒤 언니와 조카가 도착했다. 모자를 눌러쓴 나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내 등장이 놀라웠던 것 같았다. 이름을 밝히고 나서야 언니는 나를 보고 꼭 안았다. 결혼 후 각자 살기 바쁘다고 왕래를 안 했으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상 중에 만난 건 유감이었지만 이렇게라도 만나서 얼굴을 마주했다. 어느새 성인이 되어버린 언니의 외아들에게도 힘내라는 말을 건넸다. 엄마의 소식을 전하고 외숙모의 안부도 물었다.


언니에게 손을 흔들고 나오는 길,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누구보다 나를 위해 조문하고 가는 길인 셈이었다. 짧은 인생, 마지막은 편하게 눈 감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안 되는 게 인생이라 새삼스레 안타까웠다. 밤에 눈감고, 아침에 눈뜨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인생길 위에서, 오늘도 나는 걸어간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짧은 만큼 몸은 쇠약해져도 정신만은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다 알지만 잊고 지내다 다시 꺼내든 명언처럼, 오늘을 살자고 다짐하며 집으로 갔다. 새해 첫 달부터 나에게 마음껏 살라는 응원의 손짓이 이런 식으로 전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딸과 교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