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71
왼손은 여전히 손목보호대를 차고 오른손으로만 집안일을 한지 일주일이 넘었다. 불편한 손놀림에 평소 그려려니 지나쳤을 일에도 서운함과 불만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살얼음처럼 생겨났다.
말 안 해도 알아서 해주는 사람은?
정답은 "엄마"다.
나도 내 엄마가 생각날 정도로 엄마와 자식은 다르다. 자식이었던 시절만 붙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자식에게 '내 맘은 이래'라고 눈빛으로 이야기를 해 봤자 돌아오는 건 실망뿐이다. 눈치를 보다 참다못해 입을 떼도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지 않는다. 차라리 대여섯 살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를 도와주고 싶다고 하면 실상 도움은 못 돼도 고운 마음에 울림이라도 느낄 텐데. 사춘기 아이들은 안 그랬다. 특히 집안일을 대하는 태도는 변함없었다. 처음에는 시키는 대로 몇 번 움직이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콕 집어 시켜도 미적거리거나 서로에게 넘겼다.
손을 다치기 전 김밥재료를 사두었다. 다른 재료는 그렇다 쳐도 흙 묻은 우엉대를 사서 고이 모셔두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나, 편리하게 진공포장된 우엉채 대신 하필 왜 이런 우엉을 샀을까? 오며 가며 자꾸 눈에 걸렸다. 언제 손질할까?
전날 김밥 이야기가 나왔길래 이 때다 싶었다.
김밥을 쌀 건데, 보조가 필요해. 누가 할까?
예상대로 남편이 당첨되어 부엌에 나란히 섰다. 우엉과 당근을 넣을까, 말까, 손질하기 귀찮다고 하지 않을까? 우엉과 당근은 빼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그날따라 김밥에 대한 그림이 있었다.
시금치와 당근이 기본으로 들어가는 거 아냐?
재료 준비에 손이 많이 가는데 손이 부족하니 애들이 좋아하는 햄, 계란, 치즈만 넣어 김밥을 쌀 까 하다 남편을 위해 시금치라도 넣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마음을 바꿨다.
그래, 시금치, 당근, 그리고 우엉을 넣자!
시금치는 어찌어찌 다듬어 데쳐서 무쳐 놓았다. 당근을 씻어 채칼로 먹기 좋게 손질했다. 남편이 작업해 둔 당근을 올리브유에 살짝 볶았다. 마지막은 우엉 차례였다.
이건, 어떻게 하지? 나무토막 같은데.
김밥 속 재료가 아니면 반찬으로 먹을 리 없는 우엉의 본모습에 그가 낯설어하는 건 당연했다. 어설픈 주부인 내가 알려주는 대로 긴 우엉대를 반으로 잘라 씻고 채칼로 껍질을 벗겼다. 단단한 우엉을 말없이 잘라주고, 나는 받아서 간장에 조렸다.
남편과 내 위치가 바뀐 날이었다. 남편이 자리를 잡고 앉아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김에 밥알을 골고루 펴고 그 위에 계란, 햄, 단무지, 시금치, 당근, 우엉을 차례로 넣었다. 건강을 위해서인지 당근과 우엉, 시금치는 듬뿍듬뿍 집었다. 레거시 김밥이라며 스스로 만족한 듯, 두 손으로 힘주어 돌돌 말고 또 말았다. 옆구리 터질듯한 큼지막한 김밥을 크게 썰어 접시에 담았다. 진지하게 김밥 마는 아저씨를 앞에서 감상하는 기분도, 그 귀한 김밥을 내 입에 척 넣는 기분도 최고였다.
다친 손 덕분에 남편이 말아준 김밥을 처음 먹어봤다. 이 시간이 지나면 요리에 무관심한 사람으로 돌아가겠지만, 하루살이도 아닌 한 끼 살이처럼 웃었던 내 입가에는 흔적이 남았다.
요리에 워낙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 짓고 살았나 싶게 지난날이 떠올랐다. 요리를 잘하는 다정하고 부지런한 남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딴 세상 이야기인 것 같아 부러워하기만 했다. 이제부터는 부탁이라는 손짓을 해야겠다. 웬만하면 내 손으로 다 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연습을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함께 하고 싶고, 함께 해야 할 것 같다. 남편도 조금씩 움직이며 부엌에서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