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온전함
나는 중2, 언니는 고1. 우리 집은 단칸방였다.
엄마 혼자 벌이로 가정을 꾸리니 가난함은 우리 집에 오래 머물렀다.
가정 형편상 두 살 많은 언니는 인문계를 선택하지 않고 상업고등학교를 갔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를 잘했다.
개인의 방과 공부가 많이 필요했던 언니는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계속 공부를 했었고,
개인 시간을 거기서 보냈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아서 비를 피하게 지붕을 만들어 주었다. 공부를 평상에서 하니, 비가 들이치는 방향에 나무 벽이 세워졌다. 결국 사방이 막히고 문이 달린 방 한 칸이 되기까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언니는 그 시기 잠도 많았기에 다 같이 함께 쓰는 방이 불편했을 수도 있고,
사춘기여서 혼자 조용한 언니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거 같다.
언니는 그곳에서 공부하다가 잠자곤 했다.
비가 오는 여름은 그래도 견딜만했을 거다.
추운 겨울이 되니, 그냥 바람만 피한 노상였었다.
언니는 그런 곳에서 1등, 2등을 놓치지 않았다. 난 신기했다.
엄마에게 힘을 드리고 싶었던 거 같다.
언니는 나보다 빨리 어른이 되었기에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추운 날 직장을 끝내고 돌아오신 엄마는
자기의 체온으로 이불 안을 데우고 누워 있던 딸에게
펄펄 끓는 물을 드럼통에 가득 넣어서 이불속
그곳의 온기를 채워줬다.
잠든 큰 딸을 따뜻하게 보듬었다.
착한 언니는 그 작은 온기로도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를 원망한다고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이해했던 거 같다.
평상에서 공부하는 언니를 나는 성적으로 이길 수는 없었다.
곰처럼 무던히 공부를 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언니가 멋지게만 보였다.
부러워했지만 이길 수는 없었다.
나는 초, 중, 고등학교 때 눈에 띄게 공부를 잘하지 않았다.
내가 성적이 올라 성적표를 갖고 가면, 언니는 전교 1등 성적표를 엄마에게 보여 드렸다.
그런 잘난 언니에게 나는 감춰져 있었다.
조용히 있는 것이 상책인 것을 그때부터 배운 거 같다.
엄마는 1등 성적표를 가슴에 품고 다니셨다.
성실하고 착한 딸이 공부도 잘해서 엄마는 든든했던 거 같다.
그렇게 우리 집에선 빛이 나던 언니다.
언니가 고2 되던 때 방 3칸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다.
형편이 펴서 간 것은 아니고, 아버지가 성실히 살지 않으시면서 술만 드신 탓에 일찍 알코올성 치매가 오셨고, 그런 아버지와 살 집을 엄마가 퇴직금과 여러 돈을 모아 단칸방에선 벗어났다.
고3이 되어 취직을 해야 하는때가 되었다.
학교에선 가난한 공부 잘하는 학생였을뿐였던거 같다.
그 시대는 선생님들이 촌지를 받을 때였다.
부모님이 뒤에서 밀어주는 집의 아이들은 공부를 못해도 취직을 모두 했지만,
1등 하던 언니는 계속 취직에 낙방을 했고, 또 회사에 지원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 모든 상황을 알게 된 1학년 담임선생님이 이리저리 알아봐 주셔서
국민은행에 시험 볼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취직이 되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
일도 잘하고,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 친절을 겸비한 예쁜 은행원으로
빛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환경에서 우리는 서로의 몫을 하면서
빛나던 시절이 오기 전에
나름의 방법으로 엄마를 위로했다.
우울했던 그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