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피는 꽃

아직 피지 않은 이들에게

by 지니의 쉼표

어려서부터 동네 동생들을 데리고 다니며 재밌게 놀던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고 돕는 일을 좋아한다.

그 시절 '공부는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면서 가르침을 받아 본 적은 없다.

교회선생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 정도 무료로 가르쳐 준 그때 말고는

공부를 하라고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공부법을 알려주는 학원을 보내 줄 수 있는 집도 아니었다.

혼자 터득하는 방법뿐였다.


초등학교 때 일이지만 나는 골목대장였다. 동생들은 나를 잘 따랐다.

"방학이니 새벽에 일어나 동네 빗자루를 들고 모이자" 하면

이른 아침 눈을 비비고 나와서 작은 손에 빗자루 하나씩 들고 나와 동네를 쓸고 닦았다.

초등학생 때이니 훌륭하게 깨끗하진 않았지만 동네 어른들이 '예뻐라' 해 주셨다.


"밤에 별 보자"하면 동네 마당에 돗자리를 펴 쏟아지는 별을 보고 누워 밤새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때 함께 했던 아이 중에 정임이라는 친구는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잊지 못한다고 얘기를 들었다.

나는 리더십과 영향력이 있었던 거 같다.


언니의 전교 1등 성적표 뒤에 조용히 숨어 지내던 아이, 평상 방에서 곰처럼 공부하던 언니를 부러워만 하던 그 아이가 조금 늦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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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평상 방
by 지니의 쉼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언니는 은행원으로 성실하게 능력을 발휘하고 있을 때 나는 우겨서 대학에 들어갔다. 어려운 환경이어서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대학은 꿈도 못 꾸는 그런 집였기에 첫 장학금은 놓쳐, 첫 학기 등록금만 지원받고, 대학에 들어갔다.


전체 수석으로 들어온 동기 언니, 공부 잘하는 동기들과 친해져 공부하는 법을 배웠고, 나는 2학기부터 졸업할 때까지 1등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느리게 피는 꽃

그때부터 나에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놀기도 잘하면서 공부도 잘하는 성격 좋은 아이.

그게 나였다. 느리게 피었지만 예쁘게 피어서 그런지 나를 좋은 사람으로 이끌었었던 것 같다.





나는 나와 같이 느리게 피는 꽃이 있다 생각한다.

'어떤 아이도 지금이 전부인 것처럼 대하면 안 되는구나'하며 나의 태도까지 바꾸었다.


어린 시절 공부를 가르쳐주셨던 교회 선생님처럼 어려운 아이들에게 좋은 인연이 되고 싶다.


나는 답이 있는 수학을 좋아했었기에 수학 강사를 자청하여

수학이 어려워 포기한 아이들의 마음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이해가 안 된 부분, 놓친 부분부터 그 아이의 입장에서 쉽게 가르치려 했고,

전공하지 않았지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성적이 올랐다.

10~20점 받던 아이들, 모르고 멈춘 그 자리부터 가르치니 95점 이상을 받아오면서

'교수법이 맞았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겨서, 초등학교 성적 부진아 학생들 수학 성적을 올리게 되어

담임 선생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다.




매일 야단맞고 풀이 죽은 아이에게

"유재석아저씨처럼 될 건가 보다"

"유재석아저씨가 그렇게 쉴 새 없이 말을 했다더라"

"대신 장난은 칠 수 있지만 친구를 괴롭히는 장난은 장난이 아니야,

그것만 아니면 너의 유머는 아주 매력적이다"라고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좋은 인연으로 편견 없이 대하려고 노력한다


환경이 어려워, 꿈을 잃어버린 두 살 많은 언니,

공부하는 법을 몰라 비교당하며 특출 나지 않아 주눅이 든 아이.

매일 야단맞고, 모두 고개를 젓는 어른들을 만나는 아이.


그들이 나인 것처럼


아직 피지 않아

슬픔을 머금고 있는 아이들.


오늘 나는 그들을 포근하게 안는다.





*사진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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