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배려는 없다

나를 선택한 나, 마음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by 지니의 쉼표

나에게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친한 친구가 있다.

그 당시 친구와는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서로의 집에서 놀았다.

양쪽 부모님은 직장 다니셔서 배가 고프면 있던 반찬으로 밥을 같이 챙겨 먹으며 더 친해졌다.

하루는 그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와, 대접이라는 것을 하고 싶었는지

곤로(난로) 위에 프라이팬을 올려서 '천하장사 소시지'를 예쁘게 썰고, 계란물을 입혀 대접을 했었다.


그 친구는 오십이 넘어서도 "그때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라고 얘기한다.

천하장사 소시지를 볼 때마다 자기를 대접하려던 11살 내 모습이 생각이 난다 했다.

자기에게 대접한다고 요리를 했던 친구 숙진이를 너무 좋아했단다.

그렇게 엄청 친하게 지냈다.



여름방학을 끝나고 개학식 첫날,

그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에게 "선생님 김소연(가명) 친구 아직 안 왔는데요?" 물으니

"전학을 갔다"란다.

함께 지냈던 방학 동안 전혀 듣지 못했던 나는

놀라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하루 종일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6학년 때 그 친구가 우리 학교로 다시 전학을 왔는데

내가 그 친구를 못 본 상태에서 친구들이 몰려가서

"야! 소연아, 숙진이가 엄청 울었다"

"얘기라도 하고 전학을 가지"라고 했단다.

그 친구가 나중에 이야기를 해줬다.


커서 들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자기도 얼떨결에 이사를 간 거라 얘기를 못하고 갔다며,

돌아왔을 때 내가 울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했다" "고맙기까지 했다"라고 하며

다시 친해졌다.


중학교가 같은 학교로 배정이 되었고,

3학년 때 드디어 같은 반이 되었다.


그와 짝꿍이 되려고 조금 큰 나는 줄을 설 때 살짝 무릎을 구부려

그 친구의 키에 맞춰 46번, 47번으로 번호를 받고는 그때부터 완전 물 만난 고기처럼 친하게 지냈다.

주변의 친구들이 다 우리와 놀고 싶어 할 정도였다.

그 뒤로 네 명의 친구가 똘똘 뭉쳐 지냈다.

담임 선생님이 방학 때 불러서 채점도 시키고,

학기, 방학 상관하지 않으시고 여러 잔잔한 일들을 우리 네 명에게 시키면서

4인방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사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담임선생님과 죽이 맞아 추억을 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부터 문제가 생겼는지

내가 그 친구의 비위를 건드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친구는 4명의 친구들 속에서 나를 왕따를 시켰고,

‘세명 친구 VS 나’ 이렇게 거리를 두게 했다.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라 간직할 이유가 없어서 인지

머릿속에는 충격적인 사건 하나만 남아 있다.

그 친구가 하교하는 나를 따라와 '날아 차기'까지 하며 나를 괴롭혔다.

그 모습을 본 우리 반 날라리 친구가 달려와서 나를 보호해 주고 뭐 그런 상황들이 있었다.

그 날라리 친구들 때문였는지, 나는 별로 위축되진 않았던 거 같다.

친구가 없어서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그런 모습이 어쩌면 소연이 친구를 더 기분이 나쁘게 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때 나를 보호해 주던 친구들이 일명 날라리 친구들 몇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나름 교실을 평정을 하던 친구 들였다.

나는 그 친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홀로인 나를 잘 대해 주었다.

그때 난 '날라리 친구들이 나쁜 애들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뭐 그런 생각도 했던 거 같다.


시간이 조금 지나 세 명중 한 친구, 지금은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는 성진이라는 아이가

소연이에게 "네가 말한 숙진이가 정말 나쁜 거 같지 않다. 난 숙진이랑 놀 거야!"라 하니

또 그 친구를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너만 착하냐"라고 구석에 몰아세우고 때렸다는

이야기도 다 커서 그 친구에게 들었다.


결국 어떤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서로 사과하고

네 명이 졸업 사진을 같이 찍은 것을 보면 다시 친해지며 졸업을 했던 거 같다.


앙금은 남은 채로...

마흔 살쯤 그 친구를 다시 만났는데 내가 "너무 보고 싶었다"라고

"나를 찾아다녔다"라고 해서 만난 뒤로 나를 엄청 잘 챙기고 '숙진바라기'라고 할 정도로

나를 좋아해 주던 친구로 얼마 전까지 친하게 지냈다.

그러면서 아팠던 상처들을 치료하였다.




남아 있던 찌꺼기였을까

더 깊이 다가가는 게 안되었던 건지

너무 소중하고, 볼 때면 이보다 편한 친구들이 없었으매도

나는 배려한다고 하는데 사소한 오해들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던 건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그는 내 글로 소개했던 '45년 지기 친구'를 내가 더 배려한다고 서운해하고


45년 지기 https://brunch.co.kr/@c483a37722fa415/12

나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하며, 사이는 또 그렇게 멀어졌다.


예전의 나라면 미안하다고 달랬겠지만

이제는 나의 마음 챙김을 생각하기 시작했던 거 같다.


다정하지만 나를 계속 오해하는 그에게 다가가 관계를 회복하고 싶지 않아 졌다.

그와의 기억이 소중했지만, 소중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마음이 있다 해도

난 그가 떠나지 않으면, 힘들었어도 유지는 했을 거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인데...

떠나면 나는 이성적인 사람으로 바뀌는 거 같다.

그 뒤로 돌아보지 않는다.

내 마음을 챙기는 모드로 바뀌는 거 같다.


내 마음이 바뀐 건지... 아님... 식은 건지는 모르겠다.

더 배려하지 않기로 한 나

오해든, 나의 가장 힘든 시기에 본인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오해로

나를 놓은 그에게

나는 더 이상 마음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