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주

by 지니의 쉼표

나는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공부 잘하는 언니와 비교되며 자란 탓에

언니보다 눈에 띄게 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손으로 하는 것들은 언니보다 월등히 나았다.

아빠의 손재주는 나에게 몰빵인 듯 우리 집에선 제일 손재주가 좋다.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학교에서도 눈에 띄었다.

미술이나 가사 과목등에서 작품을 만들어 가면 상도 받고, 학교 복도에 나의 작품이 걸리기도 했다.


손을 내밀거나 하는 게 아님 내 손은 어디에 내놓아도 일을 뚝딱 잘하는 손재주를 가졌다.


그런 내가 가난한 형편에 인문계를 지원한 것도 나는 산업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였다.

엄마의 힘듦을 알지만 고집부려 인문계를 갔다.

고1 겨울방학되기 전, 문과, 이과를 결정해야 할 때 담임인 국어 선생님과 수학 총각선생님이

내 적성 검사지를 보고는 이과 점수와 문과 점수가 거의 50 vs 50 이거나 수학 쪽이 조금 높거나 했는지 두 분이 고민을 했다.


그때 총각 수학선생님이 "지니는 이과 와야지" 해서 결정된 마무리였지만, 산업디자인을 하려면 이과를 가야 한다고 알고 있었기에 나도 동의했다.

그러나 그땐 내가 총각 수학선생님이 좋아해서 그렇게 결정하게 된 것처럼 감정은 그랬다.


고2 때 학교 내 중창단을 하면서, 발표회 팜플랫도 만들고, 포스터도 만들고, 교회 주보 등

그때 당시 내가 디자인을 한 작품들로 포스터가 디자인이 되어 나왔다.

요즘처럼 컴퓨터로 뚝딱 만들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다 보니 손으로 만든 디자인이 전부였기에 내 손은 빛이 났다.


그 무렵,

미술 전공으로 대학을 가려면

전문 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미술을 하고 싶던 친구 혜선이랑 둘이 걸어 하굣길에

미래 꿈 얘기를 하며 부모님을 설득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엄마에게 얘기를 했더니, "고등학교 보내기도 힘들다. 미술은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니 보내줄 수 없다"라고 했다.


웬만해서 나의 의견을 거절하는 엄마가 아니라

난... 방에 들어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밤이 될 때까지 불도 안 켠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언니가 나에게

"인생이 끝났냐? 하고 싶으면 나중에라도 네가 돈을 벌어서 해"라는 말에...

그래... 안 되는 걸 어쩌겠어하며 포기하고 잠을 잤다.

내 인생였지만 나름 포기는 빨랐다.

엄마 혼자 키우는 게 버겁다는 걸 알았던 건지...

더 이상 조르진 않았다.


다음날 친구를 만나 "나는 허락을 못 받았어"했는데 혜선인 허락을 받았단다.

그 뒤로 난 그 아이를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학원을 다니며 친구의 그림은 날로 실력이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니야!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상대를 잘 인정하지 않아, 그런데 인정을 한다면 진짜 자기보다 낫기에 인정을 한다."

"넌 나보다 훨씬 잘하는 부분이 창의력이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부분은 너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라고 혜선이라는 친구가 말로 나를 세워줬다.


말이 내 머릿속에 지금까지 기억되는 거 보면,

나는 너무 미술 하고 싶었던 거 같다.


공부의 이유를 찾지 못한 듯 공부가 재미 없어졌다.

인문계를 고집부려 온 사유가 산업디자인을 하고 싶었기에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핑계를 삼고,

그냥 그렇게 고등학교를 친구들과 재밌게만 다녔다.


세월이 흘러 흘러,

이제는 내가 하고 싶던 미술을 내가 버는 돈으로 다닐 수 있는 시기가 온 듯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이제 나도 미술을 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다니며 다닐 수 있는 미술이어야 했고,

전문적인 미술은 역시 미술학원을 다녀야 할 듯하여 미술치료학과를 선택해서 졸업했다.


얼마 전 미술하는 혜선이와 약속을 하고 만났는데,

현재 같은 대학 나의 후배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미술을 전공하고 디자인 관련 직장도 다녔고,

집안이 온통 미술실인 그 친구도

미술이 좋아 미술로 아픈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시작을 했단다.


친구가 내게 그림이 어려운 게 아니라고 용기를 준다.

매번 "내가 하고 싶은 미술, 네가 하는 거 너무 부러웠다"라는

얘기를 만날 때마다 해서 인지 "이젠 지겹단다... 하하하하하"


난 진짜 부러운데, 그 친구는 귀에 딱지가 생겼나 보다.


늦깎이 미술생이 되고, 또 내 친구의 선배가 되고 보니 또 생각나는 미술 그게 뭐라고 이리 하고 싶은지...


지금은 잘하는 사람들이 더더 많아졌고 AI가 그 자리를 메우는 시대가 되었을 텐데...

시대와 맞지 않은 센스 없는 뒷방 늙은이일 텐데...

뭐가 그리 아쉽다고 이러고 있는지.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커져 있어 그런가 보다.


그 친구가 나에게 소소한 일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즐기라고, 그림은 쉬운 거라고 하며 일상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보라는 숙제를 남겨주고 헤어졌다.


나는 그 애와 함께한 시간을 그림으로 그려봤다.

그림은 어렵다. 배우지 않아서 기본기가 없단 생각에 창의력도 떨어진다.


나의 손재주는 그렇게 갈 길을 잃은 듯...

소소하게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