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조금씩
보라작가님의 "안녕? 선택적 함구증"
글을 읽고
한 아이가 생각났다.
학년 말 때쯤 전학 온 아이.
같은 학년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교실에 들어온 첫날 자기소개도 하지 않았다.
인사를 나눠볼까? 하니 우두커니 그냥 서 있을 뿐.
"말하기 싫으니?" 물으니
그제야 고개로만 조심스럽게 대답할뿐였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참 낯설고 어려운 친구를 만났구나.'
쉬는 시간,
다른 아이들은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다녀오는데
그 친구만은 조용히 앉아서 활동을 하다가
참다 참다 한번 와서 내 앞에 그냥 서 있기만 했다
"혹시 화장실 가고 싶은 거니?"
그렇게 묻는 말에 다시
고개만 끄덕이던 아이.
그 아이도, 나도
그날 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상담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집에선 엄청 수다쟁이예요"
"그런데 왜 교실에서는 이야기를 안 할까요?"
"본인도 모르겠다네요"
나는 "좀 지켜보겠다"하고는 상담을 마쳤다.
말을 못 하는 아이가 아니라 것만 확인한 채.
그 후 나는,
난 그 아이와 가까워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보드게임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색칠하고,
나는 그 아이 앞에서 수다쟁이가 되었다.
그 아이는 여전히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지만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함께 시간을 쌓아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아파서 며칠 등교하지 못하던 날이 있었다.
예쁘게 꾸민 고무줄 팔찌와 편지를 수줍은 얼굴로 내게 건넸다.
아주 아주 작은 목소리로"선생님 주려고 만들었어요"
그 소중한 마음이 내게 전달되는 순간였다.
그 뒤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 아이의 목소리는
소수의 아이들과 나에게만
조용히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것도 하루에 몇 번 정도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난 건 처음이다.
나는 내향형에 가까운 성격이라 조금은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선택적으로 나와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만 나오는 미소가 있는 것을 보면
그와 비슷한 건가? 100% 이해는 되지 않지만
처음 접하게 된 그 아이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배웠다.
그 아이는 천천히, 아주 느리게 다가오는 친구였다.
나는 기다림으로 답하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아이는 복도에서
나를 보면 고개로 따뜻한 인사를 해준다.
나는 오늘도,
그 아이가 자기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챙길 수 있기를......
자기의 아픔을 스스로 표현할 어떠한 방법이라도 찾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이 편지를 건넸다.
"괜찮아, 생각보다 네 편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