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38살에 위암에 걸렸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가끔 속이 쓰리고, 음식을 먹으면 더부룩하고, 체를 하곤 했는데 그걸 본 외삼촌이 병원에 가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가벼운 증상이라 그냥 넘어갈 뻔했지만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니 위암 1기이며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위암 1기였지만 위 상부에 암이 위치해 있어서 위 전체를 절제하고 식도와 소장을 연결하는 '위전절제술'을 받았다. 위암 1기라 항암은 따로 하지 않았다. 위암 수술 후 엄마는 몇 년 동안 덤핑증후군으로 고통받았다. 위전절제술로 인한 합병증인데, 음식을 먹으면 위가 없으니 정상적인 소화 과정을 겪지 못하고, 소장으로 바로 이동하면서 오심, 구토, 현기증 등 증상을 겪게 되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엄마의 증상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니...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수술을 하고 완치가 된 지 20년이 훌쩍 지난 요즘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가끔 체해서 까스활명수 찾곤 한다.
위를 절제했는데도 일을 하면서 급하게 끼니를 때우는 습관 때문에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도 엄마는 음식을 잘 씹지 않고 제일 빨리 먹는다. 조금만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으면 될 텐데 생각하면서 엄마에게 "엄마 음식 좀 천천히 먹어~"라고 잔소리하면 엄마는 짜증을 낸다. 결국 엄마는 체하고, 헛트림을 하면서 힘들어한다.
퉁명스럽게 "그러게 천천히 먹으랬잖아 엄마!" 엄마의 등을 탁탁 쳐주다가 냉장고에서 미리 사둔 까스활명수를 엄마에게 가져다준다. 이런 일이 일상에서 계속 반복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체한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무심하게 대했다. 엄마는 '긴병에 효자 없다더니, 네가 딱 그 꼴이네!' 하면서 한탄스러워한다. 그제야 나는 짜증 낸 게 미안해지고 또 미안해진다. 왜 그랬니?
엄마가 위암 선고를 받았을 때 어린 나이라 그때의 기억이 명확하지가 않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위암 선고를 받고 우리 걱정이 먼저였다고 한다. 죽을 것을 염두에 두고 그 당시 없는 형편에 우리 삼 남매를 위한 옷을 준비해주고 돈이 없어해주지 못한 머리를 언니에게 해주었다. 정말 다행인 건 엄마가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지인을 통해 암보험을 들어 놓아서 돈 걱정 없이 암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치료를 하고 남은 암 보험금은 우리 삼 남매를 키우고 입히고 먹이는 데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 엄마에게 그깟 체 한 번 했다고 짜증을 냈다니 정말 불효녀가 따로 없다. 내가 체했을 때 엄마 자신이 다 아픈 것처럼 난리였는데 나는...
긴병에 효자가 없다는 엄마의 말이 무색하게 따지고 보면 짧은 병에도 나는 불효를 해버렸다. 어쩌면 나의 현재의 일상엔 엄마가 없었을 수도 있었는데 지금 내가 이렇게 퇴근을 해서 노트북을 켜서 엄마의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엄마가 아팠던 그 시절에서 이야기가 멈췄을 수도 있었는데...
엄마가 지금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산다. 긴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은 앞으로 겪어봐야 알겠지만, 그 이전에 짧은 병에 효자가 없다는 소리부터 듣지 않도록 일상 속에서 엄마에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해보자.
내일 주말 가족 외식이 있는데 엄마가 밥을 꼭꼭 씹어서 먹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엄마가 마실 까스활명수 사는 것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