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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un Jul 01. 2022

독특한 사랑스러움,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리지1

애니메이션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리지에 대한 줄거리 소개1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리지라는,

아주 독특하게 사랑스러운 질감의 애니메이션을 만났습니다. 


조잘대는 풀냄새 간들간들 스며드는 

시큼한 몽글몽글 덤덤한 담담한 분홍빛 

살랑이는 피식 요란한 달콤한 간질간질한

일렁이는 물냄새 깊은  


이 작품을 보고 머릿속에 동동 떠오른 말들입니다. 그럼,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리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작품의 줄거리, 간단한 작품 정보와 특정 장면들에 관한 소개글 몇 편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아라카와 언더 더 브리지는 제목 그대로 아라카와라는 하천 부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요, 이 사람들(정확히는 사람들과 동물들과 별 하나와 요괴 한 마리,, 입니다)이 조금 이상합니다. 하천 부지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일단 의아하고 저 가로 속의 별이나 요괴는 더더군다나 뭔가 싶은데, 이들이 보여주는 일상은 갸우뚱해진 고개가 더욱 기울어지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매주 일요일마다 총을 든 시스터(수녀랍니다)의 카리스마 넘치는 구령에 맞추어 미사를(본인들이 미사라 주장합니다) 보고, 매해 실시하는 방재 훈련을 위해 우선 방화를(불이 번지지 않게 주변의 풀은 베어 둔답니다)하고, 촌장이라 불리는 갓파 요괴에 의해 새로운 이름을 받아야 주민으로 인정받는 등 알 수 없는 행동과 규칙들이 넘쳐납니다만, 모두 화목하고 평안합니다. 당황스러워 눈동자가 흔들리는 건 이것 들을 보고 있는 우리뿐입니다. 아, 한 명이 더 있습니다. 이 이상한 주민들의 터전에 어느 날 갑자기 휘말려 들어간 남자, 이치노미야 코우입니다. 


코우는 말 그대로 현대 사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뭔가 되게 반질반질한 그 외모에서 풍기는 자신감과 오만함을 통해 유추 가능하듯) 재벌이고요, 똑똑하고요, 잘 생겼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인생 철칙이 한 가지 있는데, 그건 바로 


"타인에게 빚을 지지 말 것"


그의 인생 철칙이기도 하고 이치노미야 가의 가훈이기도 하며 세계적인 기업 이치노미야 컴퍼니의 수장인 코우 아버지의 입버릇이기도 하지요. 

이게 이치노미야 가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가문의 장남이 가보로 매는 넥타이에 저 


"타인에게 빚을 지지 말 것"


이라는 가훈이 새겨져 있습니다.(작은 글씨로 깨알같이 새겨져 있어요, 넥타이 전체를 가득 메울 정도로) 

어릴 적부터 코우는 이 말을 머리에 새긴 채 정말이지 다른 이에게는 눈곱만큼도 빚지지 않는 삶을 살아왔습니다.(이 어릴 적이라는 것이 정말 어릴 적부터 인지라, 이미 코우의 나이 3살 무렵에 아버지에게 1살 때 진 빚을 다 갚았답니다. 도대체 어떻게 갚았는지는, 애니메이션의 1화에 나옵니다만,, 참고로 아버지가 턱받이 하고 젖병 들고 등장합니다. 또 아버지 트림을 시키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합니다) 

아무튼 어린 시절부터 실천해 온 이러한 인생 철칙을 바탕으로 성인이 된 코우는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인생의 길을 걸어왔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자랑스럽다"


스스로에 대한 코우의 멘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엘리트 씨가 어쩌다가 하천 부지 같은 곳과 엮이게 되었을까요,  

문제는 저  


“자랑스럽다" 


는 멘트를 친 장소가, 아라카와 다리 위라는 점입니다.  


제아무리 재벌에 똑똑하고 잘 생긴 모 대학 현역 합격 엘리트 씨라도 재수 없는 일을 요리조리 피해 가기 위한 미래시 같은 스펙은 가지고 있지 않죠. 그래요, 코우는 몰랐을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도심 한복판의 다리 위에 나타난 개구쟁이 아이들이 자신의 바지를 마치 닌자와 같은 스피드로 벗기고(일종의 아이스케키죠) 그렇게 빼앗은 바지를 거대한 다리의 기둥 저 위에(아주 높아요) 걸어 놓고 사라질 것이라고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의 희롱 대상에 귀천은 없었다는 것을, 엘리트 씨는 전혀 몰랐을 겁니다.  

사건 직후, 마치 패전국이 흔드는 백기 마냥 힘없이 바람에 나부끼는 자신의 바지 밑에서 코우는 그럼에도 여전히 당당하고 힘차게 고개를 흔듭니다. 


“이런! 화가 나지는 않아! 오히려 녀석들은 화내지 않은 나에게 빚을 진 격이 되니까.” 


화내는 것을 “안 한 것” 이 아니라 “못 한 것” 이 맞는 것 같지만 뭐, 이게 핵심은 아니니까요. 아무튼 코우는 엘리트답게 자신의 상황을 침착하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또 철부지 아이들을 향해 엘리트다운 관용마저 보여주면서 한쪽 다리를 난간에 올렸습니다. 다행히 이 시간에는 근방에 오가는 사람이 적고 따라서 팬티 차림으로 기둥을 타고 바지를 사수하는 행위쯤, 이치노미야 컴퍼니의 차기 회장인 자신이 한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으리라 판단하면서요. 


바로 그 순간,   


“어이"


... 


“그거, 엉덩이 안 시려?” 


나긋이 들려오는 목소리. 금빛 머리를 살랑 넘기며 젖힌 고개 너머, 코우를 향하는 맑고 깊은 눈동자. 


그렇게, 소년은 소녀를 만났다,,  

(순정 만화의 안내 표지판 같은 문장, 순정 만화라면 응당 거쳐야 할 흐름이죠. 참고로 이 작품의 장르는 엄연히 개그, 러브 코미디입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종종 아련하기도 하고 절절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여주인공 등장입니다. 조금 특이한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녀의 첫 대사에 등장한 단어가 엉덩이라는 점과 그녀가 손에 쥔 것이 책도 카세트테이프도 아닌 낚싯대라는 점과 그녀가 앉아있던 장소가 공원 벤치도 교내 비상구 계단도 아닌 아라카와 다리의 난간 끄트머리였다는 점 정도..일까요.  


누가 봐도 기함을 할 위험한 자세로 한가로이 앉아있는 이 여성의 등장에 코우는 한순간 멈칫하지만, 이내 다시 침착한 목소리로 답합니다.   


“아뇨, 저는 더위를 많이 타서요.” 


누가 들어도 황당한 답변이지만 이 정체 모를 여성은 상당히 쿨합니다. 


“그럼 됐어.” 


이 한 마디를 끝으로 다시 원래 하던 일(아마 낚시였겠죠)로 되돌아갔거든요. 


마음이 급해진 코우는 한시라도 빨리 바지를 되찾기 위해 기둥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서두르면 망치는 법이고, 또 불행이란 대체로 한 번에 몰려온다고 하죠. 코우의 팬티가 기둥 어딘가에 삐죽 튀어나와 있던 철근에 걸린 것입니다. 즉, 코우의 엉덩이가 3분의 1 조금 넘게 드러나 버린 것입니다.

  

“이봐, 혹시 말인데, 앞으로 3센티 정도면 공연 음란죄 아니야?”

  

수면에 비친(다리 밑은 강이니까요) 코우의 안쓰런 모습을 보고 있던 여성이 현실적인 걱정과 함께 자신의 낚싯대로 도움을 줄까 물어봅니다. 하지만 코우에게는 절대 그 호의를 받을 수 없는 사연이 있죠. 


“타인에게 빚을 지지 말 것” 


자신의 인생 철칙이자 이치노미야 가의 가훈은 공연 음란죄 보다도 무거웠던 겁니다. 코우는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엉덩이가 나오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손으로 바지를 되찾겠다는 신념과 엉덩이가 나오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손으로 바지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있었던 겁니다.  


“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그렇게 다리 기둥에 매달려 난생처음 만난 여주인공에게 자신의 인생관 설명과 함께 그러한 가치관이 설립된 어린 시절 추억담(1살 때 아버지에게 진 빚을 3살 무렵에 다 갚았다는 그 이야기)까지 조잘거리던 코우는 또다시, 몰랐던 겁니다. 다리를 지탱하는 여러 개의 기둥 중 하필이면 자신의 바지가 걸려 있던 바로 그 기둥이 ‘공사 중’ 팻말이 달린 기둥이었다는 사실을요. (역시 불행이라는 녀석들은 팀워크가 좋아요.) 


결국 바지의 무게는 견뎌도 성인 남성의 무게는 견디지 못한 그 ‘공사 중’ 기둥의 한쪽 면이 떨어져 나가고 그 쇳덩어리와 함께 코우도 꼼짝없이 강에 빠지게 됩니다.  


“힘내라" 


여주인공의 응원을 받으면서요.     


자신의 상황이 (당연히) 믿기지 않는 코우는 물속에서 몸부림 쳐보지만 쇠기둥이 몸을 눌러 점점 가라앉기만 합니다. 


“치워야 해! 혼자서!” 


이런 상황에서조차 계속해서 같은 말만 외치던 그는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순간에 가서야 겨우 생각합니다. 


“그런 건 무리.. 혼자서는 무리야” 


그리고 두려움에 손을 뻗으며 외치죠. 


“누구 없어요!” 


그 순간, 그를 향해 뻗어오는 손 하나. 아니 정확히는, 그의 (가보) 넥타이를 향해 뻗어오는 손 하나. 마치 동아줄처럼 내려온 그 손은 그의 목에 단정하게 묶인 채 거센 물살에 흔들리는 (가보) 넥타이를 단단히 움켜쥐고는, 


훅- 


끌어당깁니다. 물보라가 일었습니다.  


“이봐, 일어나" 


시간이 조금 흐른 것인지 그새 묘한 노을빛으로 물든 들판에 


살랑- 


흔들리는 갈대들. 그 틈으로 새어 들어올락 말락 하는 지는 해의 눈부신 빛. 그리고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눈을 뜬 코우의 입에서 


팔짝- 


물고기가 튀어 오릅니다. 


“비린내!!” 


“오, 살아있었네” 


“왜 생선이 입에?” 


붉은 노을빛 아래, 코우는 자신을 구해준 여주인공 니노의 무릎 위에 눕혀져 있습니다. 그런 코우를 내려다보며 니노가 말합니다.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특유의 무심한 듯 다정한 말투로. 


“미안해. 먼저 사과해 두겠는데 나한테 빚졌어" 


니노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우아하게 휘날리고, 코우의 새카만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립니다. 


“뭐,, 뭐라고!!!”


이렇게 해서, 이래 봬도 상당히 드라마틱하고 왠지 모르게 낭만적인 두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타인에게 빚을 질 수 없는 엘리트 청년과 묘한 매력의 여유로운 노숙자 아가씨. 애니메이션 1화는 이 둘의 만남이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하천 부지의 다른 주민들도 쏙쏙 등장하게 됩니다. 우선 곧바로 이어지는 스토리에서 갓파 촌장이 등장하고요, 총을 든 수녀도 곧 나옵니다. 이들은 다음 글에서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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