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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께살기연구소 Nov 23. 2023

전기의 공공성과 에너지 복지

에너지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재화이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전기란 밥을 먹고, 추위와 더위로부터 몸을 피하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재화로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필연적으로 필요하다는 공유된 이해관계가 있다. 따라서 모두가 참여해서 생산과 소비, 관리가 이루어져야 하는 재화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도 전기는 한전이라는 공기업을 중심으로 공공성에 입각해 관리 및 공급해왔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가 넘는 우리나라에서 전기를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간 공공에서 전기를 공급해 왔기 때문이다. 한전 적자의 상당부분은 이러한 이유로 발생한 ‘착한 적자’이다. 한전의 정상적인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정도로만 전기료를 책정해 왔기 때문인 것이다.
 

최근 급격하게 불어난 한전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 이후 전세계적 수요의 급증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이다. 이같은 외부적 충격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대비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즉각적인 해법은 전기요금 인상이다. 전기의 공공성과 외부적 충격을 고려해서 적정 가격으로 인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표가 안될까봐 증세를 두려워하는 정치권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계속 억제하면서 적자가 크게 불어나 버렸다. 이에 더하여 공적 영역을 비효율의 시각으로 보고 있는 보수정권의 특성으로 인해 당장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는 전 기요금의 인상보다 공기업 때리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부적 충격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처하기 보다는 이를 계기로 에너지를 시장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다분히 의도적이다.   


에너지 복지의 차원에서의 에너지 정책은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에너지를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둘째, 취약계층에 대한 에너지 비용 지원, 셋째, 에너지 효율의 극대화를 위한 냉난방 설비 강화, 넷째, 공공에서 자체적인 에너지 생산 능력 확보로 외부적 충격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먼저 전기요금 자체를 적절한 가격에 묶어두는 것은 필요하다. 저렴한 전기세 자체가 에너지 복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전기 요금은 OECD 평균이 100이라면 가정용은 54%, 산업용은 66% 수준으로 가장 저렴한 편이다. 따라서 모든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우리나라 상황과 저렴한 전기료를 감안해 보면,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은 가격 상승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복지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즉 저렴한 전기가격이 에너지 복지의 일환이고, 공공성에 부합한다는 원칙은 고수되면서 기업과 가계가 함께 부담을 나누어져야 함. 우리나라의 전기 판매량을 보면, 산업량이 54%, 소상공인 등 업체용 23%, 주택용 15%로, 기업들의 전력 사용량이 절반을 넘어가는 상황이다. 따라서 기업과 가정용 전기 인상 비율을 다르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간 기업주도성장 기조 속에서 값싼 에너지로 많은 성장 효과를 누려온 데 대해 책임의식을 갖고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

      

이와 더불어 주택용 전기도 어느 정도 인상을 하여 부담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문제는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이다. 특히 지금처럼 기후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에너지의 문제가 삶의 질을 떠나 곧 생존의 문제일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할 경우, 저소득층의 삶은 더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할 수 있는 정책으로는 두번째와 세번째, 즉 에너지 소비 비용을 지원 혹은 할인해주거나 애초에 비용이 많이 들지 않도록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거주 및 활동공간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번 정부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에너지 바우처 예산을 1,900억에서 6,8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액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에너지 바우처 역시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고질적인 문제, 즉 신청주의를 벗어나지 못해, 당사자가 몰라서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년 4~5만 가구에 이르고 있다. 또한 바우처를 받기 위해서는 소득 기준과 세대원 특성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해서, 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없는 저소득가구는 대상조차 되지 않고 있다. 또한 냉난방을 포함하여 1인당 연평균 37만원 정도 되는 지원금이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에너지 바우처와 같은 비용 지원 정책은 지금 당장 급한 불을 끄는 임시방편적 해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이 낮은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계속 거주하는 한, 전기료 지원만으로는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에너지 효율을 개선해서 애초에 사용량을 절감하는 저소득층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이 있다. 이 정책은 예산이 일부 증액되었으나 바우처 예산의 1/6에 불과하다. 게다가 한 가구당 지원금액이 330만원 한도에 불과하여, 낡은 주택을 효율화하는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지원대상도 매년 4-5만명에 그치는 수준이다. 이같은 건물에너지효율개선사업은 주택개조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소비량의 상당부분을차지하는 사무용 건물에 대한 리모델링도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예컨대, 건물을 저탄소 및 에너지고효율로 건축할 수 있는 기술개발 예산은 100% 삭감했다. 그린리모델링 사업 같은 경우에도 예산의 30% 이상이 삭감되버렸다.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 바우처는 산자부에서, 저소득층에너지효율개선사업은 기재부(기후대응기금)로 이원화되어 있어 통합적인 에너지 복지정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너지 복지법이 2010년부터 발의되고 있으나, 매번 좌초되고 있다. 이로 인해, 복지부의 소득정보나 수급자 정보 등이 공유되지 않고,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개별 신청에 의존해서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의 에너지 복지는 낮은 가격 외에는 지금도 매우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이미 믾은 나라에서는 에너지 복지에 대한 법적 기반을 바탕으로 에너지 빈곤층을 위한 체계적인 복지시스템이 시행 중이다. 예컨대, 영국은 ‘따뜻한 가정 및 에너지 보전법’을 기반으로 에너지빈곤전략을 세워 비용지원과 더불어 모든 주택이 적절한 난방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도 '그르넬 환경법' 안에 에너지 빈곤을 '주거환경 및 자원의 결핍'으로 명문화하여 국립에너지빈곤관측소(ONPE) 중심으로 에너지빈곤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에너지경제, "프랑스, 취약계층 현물 지원서 '주거 개선' 복지로 확대", 2023/08/02).


마지막으로 에너지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공공기관에서의 자체 생산량이 많을수록 유리하다. 그래야 가격 조정이 자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과 같은 외부 요인으로부터 영향이 적기 때문이다. 특히 연료를 수입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결국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재생에너지는 현재로서는 초기생산비용이 많이 들지만,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수록, 생산비용이 절감된다. <2021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주요 20개국에 신설된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3분의 2가 석탄보다 생산 비용이 낮게 나타났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단가는 비싼 편인데, 예컨대, 태양광의 경우, 우리나라는 96.6달러, 미국은 44달러라고 한다. 또한 미국, 유럽, 중국 등의 재생에너지 균등화비용은 석탄, 가스 등 화력발전이나 원전보다 저렴하다(한국일보, "한국 재생에너지 단가 비싸...태양광·해상풍력 미국의 두배 넘어 [갈 길 먼 RE100③]", 2023/10/21).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관련 R&D를 대폭 삭감하는 등 재생에너지를 위한 투자를 오히려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에너지 전환이 필요한 지금, 에너지에 대한 지원과 투자는 앞으로 점점 더 강화되어야 한다. 이는 당장의 수익을 보기 어려운 장기적인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공공의 역할이 절실한 상황이다. 여기에 중요한 에너지 공기업인 한전의 공공성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는 배격되어야 한다. 특히, 자회사의 지분이 뭐가 대수냐 할 수 있겠지만, 지난 철도의 경로를 보았을 때, 흑자노선을 자회사에게 떼어준 코레일의 적자가 심화되어 가장 수익이 안되는 산간벽지노선을 축소해버렸다. 이를 보았을 때, 자회사의 지분 매각이 당장 적자의 일부를 메울 순 있겠지만, 흑자기업인 자회사에 대한 영향력 축소는 장기적으로 한전에게 손실이 되고, 그 피해는 “저렴한 에너지 가격”이라는 에너지 복지의 토대 약화로 돌아올 것이다. 특히, 이미 이런 식의 알짜배기 자회사 지분 매각이 공기업의 공적인 기능 약화로 돌아온 사례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공기업을 쪼개기보다는 여러 발전사로 분할된 한전을 통합하고 공공성을 강화하여, 한전을 중심으로 에너지의 공적인 공급과 더불어 에너지 복지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지금은 에너지 공기업으로서 한전이 자회사 지분 매각에 몰두하기보다는 에너지 전환에 초점 맞춰서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펴 나가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 재생에너지의 생산기반 구축이 장기적으로 에너지 복지의 주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 약자복지를 위한다면, 취약계층이 더 취약해질 수 있는 민영화로 가는길은 선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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