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그 새벽의 해안을 걷는다

바다는 기억보다 오래 남기에...

by 치세

epilogue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어젯밤에 창문을 온통 열어 젖기고 블라인드도 걷어 둔 채

잠이 들었나 보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서늘한 빛에 잠시 다시 눈을 감는다.

이 느낌, 이 느낌, 아 언제였더라.


여행을 하면서 바닷가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때도 가끔은 의도하지 않은 채로 새벽에 눈이 떠지곤 했다.

지금이야 다시 잠을 청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며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그때는 새벽녘의 바닷가로 나갔다.

하긴 그때는 그것이 일상이었다.


새벽의 바다에는 서늘한 빛이 있었다.

혼자서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마냥,

주위는 온통 흰색이었다.

무채색의 흰색으로 가득 찬 해안가를 홀로 걷는다.


나는 왜 알 수 없는 이곳에서

내 평생 다시 못 올지도 모르는 이곳을

혼자 걷고 있는 것일까.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고, 나 또한 아무도 모른다.

내가 아는 땅은 없고 나를 아는 땅도 없다.

모래밭에 새겨지는 내 발자국을 오직 외로움만이 뒤따른다.


이 외로움이 내게 남긴 것을 떠올린다.

그때의 여행이 남겨준 내밀한 나만의 이야기와

결국은 서로 닮아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들.

시간을 건너온 그 기억의 파편들을 모두 안고,

나는 오늘도 여전히, 그 새벽의 해안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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