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여행이 내게 남긴 것
여행을 떠날 때는 혼자였고, 돌아올 때도 혼자였지만,
그 사이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긴 여행의 시간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영국, 스위스, 사우스아프리카, 벨기에, 이스라엘, 홍콩,
그리고 여행으로는 가기 힘든 부탄과 팔레스타인까지.
그 스펙트럼은 이미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있었다.
내가 꼭 보고 싶었던 모아이의 나라에서 온 여행자도 있었다.
해변에 누워 대화를 나누고,
펍이나 클럽에서 맥주 한 병을 마시며,
그들은 내 곁을 스쳐 지나가거나, 하루 이틀 머물거나, 몇 주일을 나와 함께 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시디플레이어와 시디를 열 몇 장 가지고 다녔다.
그중 영화 빌리 엘리엇의 사운드트랙은 친구를 사귀기 좋은 매개였다.
내가 묵는 방갈로의 해먹에 누워 그 음악을 틀어놓으면,
지나가는 여행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우리는 영화 이야기, 음악 이야기로 하나가 되어 같이 일몰의 바닷가로 나갔다.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에게 미용실의 헤어컷 가격이나 커피 한 잔의 값,
그들 나라의 집과 학교, 일상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곳에 직접 가지 않아도,
마치 그 나라를 여행하는 듯한, 또 다른 여행을 시작했다.
그 여행은 그곳의 어느 멋진 풍광이나 건축물보다도,
더 내밀하고 세밀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결국 나의 여행은 물리적 장소를 옮긴 발자국의 시간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전 세계를 여행하며 나 자신을 확장해 간,
개화(開花)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