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 제일 인기 많은 머리스타일 1위에서부터, 사실은 머리 안 감은 날을 알려주는 반딧불의 엉덩이 같은 존재
똥머리는 위치가 상당히 중요하다. 내가 지금부터 말하는 똥머리는 소위 귀 제일 위쪽 선을 기준으로 그 위에 달려있는 머리 묶음 덩어리이다. 나는 10년째 똥머리를 해오고 있는 사람이기에 똥머리쯤은 아주 빠르게 묶어 올릴 수 있다. 쫄깃하지만 견고한 끈 두 개와 U핀 4개, 머리가 좀 짧다면 실핀 두 개 추가. 똥머리는 정수리와 가까워질수록 상큼도가 올라간다. 애매하게 내려갈수록 왠지 모르게 라테를 아주 잘 말아줄 것 같은 바리스타가 된다. 각도가 중요하다. 잔머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헤어라인, 귀 바로 앞, 그리고 똥 바로 앞에 펼쳐져있는 둥근 부분의 머리둔덕이 중요한 그것이다. 조심해야 한다. 이 잔머리와 봉긋한 둔덕이 없다면 바로 나도 모르는 새 목에 칼을 찬 채로 망나니 앞에 앉아있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어언 35이다 아니 사실은 34이지. 그 어떤 분(?) 덕분에 한국인들은 1년씩은 더 어려졌다고 보아도 무관하다. 아니 근데, 다 같이 1년이 줄어들었다면 똑같은 거 아닌가 싶다? 왜 타이틀은 똥머리에 관한 진실이라고 해놓고 나이 이야기를 늘어놓느냐 하며, 이전페이지로 손가락들을 들어 올리기 전에 얼른 똥머리 얘기로 넘어가야겠다.
나는 똥머리를 상당히 좋아하고 즐겨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똥머리를 즐겨했다. 간편하고 머리 손질 안 해도 마치 좀 뭔가 특별한 날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똥머리를 했을 때 남성은 물로 여성들도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대학원 다니던 시절 똥머리를 하고 초등학생 피아노 레슨을 하러 갔을 때였다. 소위 좀 사는, 경기도의 좋은 학군에 있는 집 아들내미 레슨이었다. 그날은 아침 준비가 늦어져서 오후에 레슨 가야 할 생각을 해보니 아 이거 오늘은 똥머리날인데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눈치 못 채겠지 내가 오늘은 많이 게으른 아침을 시작했다는 걸.
평소 같으면 머리를 풀어헤치고 갔겠다만 그날은 똥머리고 했으니 또 상큼한 옷을 입어야지 안 그럼 영락없이 게으른 사람이겠다- 싶어 상큼한 옷을 또 집어 입었다. 수업 마치고 부랴부랴 레슨을 하러 학생 집에 들어가서 ”안녕하세요-“ 하는 순간 학생 어머니 얼굴을 보니 눈빛에서 스캔 레이저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어휴…..
오셨어요 선생님. “
“네 어머님, 안녕하세… 요?”
반갑게 인사하다가 멈칫.
음? 어휴?
어휴는 뭐지? 하고 얼굴을 다시 쳐다봤는데 내 머리에 있는 커다란 머리뭉치에 시선이 꽂혀있는 학생 어머니였다.
뭐지?
이 모든 건 놀랍게도 정말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들이다. 인사하고 들어가고 학생 어머니의 시선, 스캐닝, 인사말, 제일 듣기 움찔했던 한숨 소리. 5초나 걸렸을까? 너무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사회 초년생이 그렇듯 이 쎄함은 내 착각일 거라 넘기려고 하고 있었다.
뭐지? 냄새가 나나? 촌스러운가? 아님 선생님이라기에 너무 날티가 나는 차림새인가?
이 모든 생각도 역시나 1초도 안되어서 내 머릿속에서 지나간 문장들이다. 모든 문장이 전부 다.
하지만 역시 인간의 쎄한 촉은 동물의 흔적이 꾸깃하게 남겨져있는 마지막 구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도 된다.
”선생님, 올해 몇 살이시더라…?”
“아, 27이에요.”
“아, 그러시구나.. 네, 오늘 수업도 잘 부탁드릴게요.”
“네…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근데 내가 왜 얼굴이 화끈거리는지도 몰랐다. 그 기분이 어떤 건지도.
지금이었으면 아주 앙콤하게 웃으며 나이는 왜 물어보세요- 라며 되받아쳤겠지만 그때는 그 큰 어른-심지어 나에겐 얄팍한 고용주-이 걸어오는 기싸움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발가락만 꼼지락 거릴 줄 아는 사회 초년생에 불과했다. 뭐, 그 나이에도 앙콤하고 야무진 청년들은 아주 많겠다만 나는 그랬다.
그 당시에는 내가 뭐 때문에 기분이 불편한지 알지 못했다. 레슨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이 쎄한 기분과 대화내용을 얘기하면서 알았다. ”그 사람이 너한테 눈치준거야.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고 “
똥머리 하나했을 뿐인데 그렇게까지 내가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었던 건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나도 어렸고 그 학생의 어머니도 어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며 학생과 들어가 피아노 레슨을 마쳤다. 마지막에는 어머님 안녕히계세요라며 평소보다 부러 더 씩씩하게 인사하고 나왔다.
그리고 그 집과의 인연은 내가 유학을 나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길이 끊어지게 되었다.
물론 그 학생엄마의 의도는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난 일이고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일 확률도 있다.
하지만 그때 내가 기억하는 공기의 촉감은 아마 작은 질투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냐하면 나도 비슷한 감정을 겪고 그와 같은 말을, 아니 더한 말을 내뱉는 날이 와서 얼굴이 화끈거렸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2화에 계속)
그런 질투심과 패배감 때문에 나 역시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최대한 사회가 정해놓은 어떠한 기준을 피해서 살고 싶어서 아둥바둥하고 있다.
그렇게 35살 지금, 나는 독일에 살고 있다.
독일 여름, 화창해진 날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시키고 있다가 마주했던 풍경이 있다. 염색하지 않은 희끗한 머리를 곧게 빗고 단정한 셔츠와 재킷에 빨간 구두를 신은 한 할머니, 빨간색 양말에 조그마한 불독이 그려진 반바지를 입은 할아버지. 손을 다정히 맞잡고 천천히 걸어가 꽃집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항상 나에게 묻고 싶은 건,
똥머리를 하기에 낯부끄러운 나이가 있는가?
물론, 나도 모르게 남에게 그런 것을 내뱉는 사람의 역할이 되어버린 날 발견하지도 못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 있지.
하지만 그럼에도,
나이가 나를 통제하는 것에 빨려 들어가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건 안 하고 싶다.
50살이지만 그래도 그냥 멜빵바지에 똥머리하고 민트초코 콘아이스크림을 빨아먹으면서 휘향 찬란한 에코백을 매도 아무도 안 쳐다보고, 나 역시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순진한 걸까 반항적인 걸까?
그 당시에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가면, 이런 경험으로 내 기억이 덮일 일들은 더 이상은 없을까? 하고 유럽으로 가자며 유학을 나왔다.
그렇게 작은 기대를 가지고 나온 독일 유학. 그 20대 끄트머리에 나온 유학 생활이 날 더 고달프게 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1화 똥머리의 진실
이다 IDA
독일에 사는 이야기
솔직한 생각들
음악얘기
털어놓고,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