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똥머리의 진실을 보고 와주세요. 내용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세상에. 내가 그런 똑같은 말을 내뱉는 날이 온 것이다.
내가 서른셋 되던 해였나? 서른둘 말 그즈음이었을 거다. 동생이 나를 따라 독일로 유럽여행을 나왔다. 언니 있을 때 유럽여행 가보지 언제 가겠냐며 같이 여행을 다니자고 했고 난 좋다고 했다. 그 시절의 난 그때 정말 내가 보기에 아스팔트 바닥에 붙어서 검정의 것이 되어버린 껌딱지 같은 그런 존재였다.
난 그 무렵 입시에 3년반째 실패한 채로 서른이 넘어가서 직장도 없고 정말 비참하기 그지 없던 때였다. 옷도 거의 사 입지 않고 귀국한다던 친구들이 주고 간 옷을 좋다고 주워 입었다. 몸이 나보다 동글동글하고 작았던 친구가 주고 간 셔츠, 나보다 덩치가 크고 볼륨감이 좋았던 친구가 주고 간 바지, 나랑 키가 비슷하지만 허리가 얄쌍했던 친구가 주고 간 니트, 코트들. 그것들을 한데 모아서 입고 다니니 참 볼만했었다.
3년 반 만에 한국에 갔을 때 공항에서 엄마와 동생을 보자마자 얼싸안고 엉엉 울었는데, 엄마랑 동생은 한참 울고 나서 근데 옷이 왜 그래? 독일에서 무슨 일 있었어?라고 했었다. 더 문제는 내가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고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던 거다.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좋고 깔끔하다고 생각한 옷들만 입고 한국에 간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런 상황 속에서 친동생과 유럽 여행을 하기로 했다. 나는 한국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공부를 끝마치기 위해 독일로 가야만 했다.
동생은 한국에서 이미 6,7년 차 직장인이었다. 계절마다 신상 옷을 사 입고 한국 에스테틱 시술과 관리도 주기적으로 받고 있었다. 그런 동생에 비해 나는 입시 내내 인터넷에서 검색한 가성비 화장품을 바르고 관리라고는 선크림만 발라도 된다고 했어라고 다독이며 여기저기서 얻은 옷을 입고 있었다. 한국에 방문했을 때 쇼핑을 조금 했지만 이제 입시생에서 벗어난 나는 옷을 그렇게 많이 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생과 내가 확연히 달랐던 건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기라고 해야 할까 하는 그것이었다.
동생은 대학 전공으로 좋은 곳에 취직하여 꾸준히 사회생활을 해온 직장인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독일 입시에 실패한(내가 원하던 학교에) 직업도 없는 나이 많은 언니일 뿐이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돌아보면 인생에서 3,4년이라는 시간이 뭐 그리 대단하겠냐만은 그 당시 나에게는 실패자라는 그림자가 뿌리 깊게 박혀서 나를 바닥에 붙은 검정껌딱지로 만들기 충분했다.
나의 그 검정껌딱지 상태로 나는 동생과 같이 유럽여행을 시작했다.
동생은 사진 찍기를 매우 좋아한다. 동생이 같이 사진 찍자며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확인해 보면 화려하고 건강하고 빛나는 20대 여자 옆에 옷을 이렇게 저렇게 기워입은, 나로 추정되는 각설이 아저씨가 어김없이 서있었다.
여행이 진행되고 사진을 반복해서 찍고 확인할수록 내 안에 검정 용암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 용암이 끓어 넘치지 않게 다잡으려고 용을 썼다.
하지만 나의 그때 검정껌딱지 상태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날 아무렇지 않은 계기로 그 검정 용암이 터지고야 말았다.
이탈리아에 한 호텔에서 마지막날 여행을 시작하려던 아침이었다.
동생은 한국에 있는 좋은 브랜드에서 산 재킷과 치마, 가방을 메고 머리랑 화장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러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과 동생이 한 프레임 안에 비춰졌다.
그 거울 속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이윽고 검정 용암이 쾅하고 터져버렸다.
그때 툭, 하고 입에서 뭐가 달음박질쳐 나갔다.
“어휴…
그렇게 입고 나갈 거야?”
“…. 응, 왜 이상해?”
“그 옷, 너가 입기에 너무 어리지 않아? 스무 살이 아냐 나이 좀 생각해-”
와-
그 말을 내뱉고 나서 내가 너무 싫어졌다.
그게 그렇게 싫었던 거 아니었어?
동생은 화악 열이 올라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으면 되지 나이가 왜 나와, 라며 오늘은 따로 다니자고 팩 하고 뒤돌아 나가버렸다. 평소 동생이었으면 저렇게 뒤돌아 나가버리지 않았을 거다. 아마 동생도 내가 거슬리게 했던 것들이 만만찮게 속에 쌓여있다 터진 거겠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그때 정말 꼴 보기 싫은 존재였다. 실패자라며 자기 연민에 몰아넣고 그 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고 남을 손가락질 해댔다. 반짝거리는 사람이 순수하게 나에게 도움을 주려해도 질투심과 부러움이 뒤섞여서 그 순수함의 의도를 짓뭉개버리곤 했다.
하지만 동생은 팩 나갔지만 나가지 않았다. 고마웠다. 하지만 입 밖으로 절대 툭- 하고 나가지 않는다.
참, 아까는 그렇게 무슨 택배라도 온 것처럼 툭-하고 뛰쳐나가더니 지금은 무슨 일이람?
그렇게 콜로세움을 보러 간 나랑 동생은 여느 자매가 그렇듯 어색하게 뚝딱거리며 같이 다니다가 슬그머니 그 상황을 넘겨버렸다.
하지만 이제 갓 코로나에서 빠져나왔던 그 시기에 콜로세움은 예약 없이는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유럽에 몇 년 더 살거라 다시 올 수 있겠지만 내 동생은 이 여행에 천만 원을 가까이 썼으니 그 상황이 얼마나 화가 났던지. 기분이 아주 상해서 그날 하루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분명 내가 아침에 툭 내뱉어버린 말도 그 이유의 큰 비중을 차지했겠지.
그날이 같이 다니는 마지막 여행날이었기 때문에 나는 죄책감이 더 심했다. 나는 다음날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야 했고 동생은 밤 비행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무뚝뚝한 장녀였다.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려고 가소로운 노력에 노력을 더했다.
그러고는 동생 몰래 내 초라한 잔고를 쥐어짜 내어 콜로세움 투어를 예약해 뒀다.(투어 가이드와 함께하면 입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핸드폰으로 예약화면을 틱 보냈다.
“이거, 투어 가이드랑 같이 들어가면 볼 수 있대”
“언니는?”
“난 또 볼 수 있잖아. 비행기 타기 전에 보고 가.”
버스를 타러 나를 배웅하는 와중에 둘 다 눈이 망울망울하더니 결국 헤어지고 나서 답지 않게 서로 안 보이는데서 엉엉 울었다. 언니 미안해- 동생 미안해- 하며.
참.. 언니 미안해- 할 건 없었는데도 나를 받아준 내 동생은 성인군자임에 틀림없다.
무뚝뚝해서 하고 싶지만 서로에게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카톡으로는 잔뜩 쏟아붓고는 그렇게 애틋하게 헤어졌다.
1화에 언급했던 그때의 경험을 비추어보자면,
내 똥머리를 보고 한숨을 푹푹 쉬었던 그때의 그 사람이 되어보니 기분이 썩 달갑진 않았다.
아, 물론 이건 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지레짐작들이다. 그때 내가 입고 있던 옷들, 화장, 냄새 뭐 어느 것이 그 학생 엄마에게 정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겠다.
아니면 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개인적인 이유로 한숨을 푹 쉬었을 수도.
아니면 긍정적인 의미의 선생님 몇 살이시죠- 였을 수도 있다.
또는 나의 어린 다듬어지지 않았던 쎄함의 뿔이 잘 작동했던 것이었다면.
그래도 나는 어째, 그 젊은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갈지도 모르겠다.
질투, 나이 들어감, 패배감.
이란건 내가 늘 품고 있어야만 하는,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손님처럼 찾아온다.
참..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라고 베를린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그리고 내 안에 그 거멍한 껌딱지를 떼어내기 위해 애쓰고 부단히 노력하자는 다짐을 했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장담할 수 없지만.
# 2화 내 안의 검정껌딱지 마침.
이다 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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