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휴일 아침
비 오는 휴일 아침, 아껴두었던 식빵을 냉동실에서 꺼내 한 조각 남아있던 마지막 버터와 함께 데워 먹는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굳이 쓰고 싶은 건 내 마음이 쓸쓸했던 탓일까. 한 때 새 버터를 싸고 있었던 빳빳하고 반듯했던 종이는 해지고 너절한 모습으로 구겨짐을 감내한 듯 한 조각 버터와 함께 뭉쳐있었다. 식빵은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모처럼 사 온 것인데, 코로나로 자주 갈 수가 없다 보니 아껴두려고 냉동실에 얼려두었었다. 신혼 때 살았던 동네 빵집이었는데, 직장 다니며 아이 키우느라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근처에 볼일이 있을 때면 꼭 들러서 빵을 사 오곤 했었다.
아침을 먹으며 가볍게 넘겨보던 뉴스였는데, 문득 눈길이 멈추었던 기사가 있었다. 마흔 나이에 처음 미술을 시작하셨고, 이제 여든 나이가 넘으신 여성 화가의 최근 전시 소식이었다. 이 분의 작품을 전시장에서 보았던 이십 년쯤 전의 일이 생각나서 잠시 세월감을 느꼈던 것 같다. 모교의 미술관에서 그분의 작품을 보았던 대학생이, 이제 마흔 나이가 되어 그분의 소식을 이 아침에 다시 듣는다는 것. 지금의 내 나이에 처음 미술을 시작하신 작가님은 사십 년이 넘는 인생을 화가로 살았다고 한다. 나도 지금 시작한다면 여든 나이에는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문득 이십 년 전 모교 미술관에서 보았던 기억 속의 작품이 궁금해져 찾아보았다. 여성의 삶을 주제로 풀어나가는 작업을 지금도 하고 계신 작가님을 문득 미술의 길로 이끌었던 마흔 살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윤석남 작가님의 2002년 작품을 보고 있던 이십 년 전의 대학생은 세월이 흘러 15년 차의 직장인이 되었다.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아이 키우느라 애썼던 휴직 경력도 경력이라면 말이다. 처음 육아휴직을 했을 땐 아이가 크면 해결되는 문제인 줄 알았는데,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던 나는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한동안 자포자기한 마음을 경험하기도 했다. 끝나지 않은 팬데믹 속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봄은 여전히 두렵지만, 우리가 그 속에서 어떻게 아팠고 무엇을 꿈꾸었는지 잊혀선 안될 소중한 것들을 기록해나가는 오늘이 되길, 소망처럼 적어보는 비 오는 휴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