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버터 한 조각

비 오는 휴일 아침

by 릴리에

비 오는 휴일 아침, 아껴두었던 식빵을 냉동실에서 꺼내 한 조각 남아있던 마지막 버터와 함께 데워 먹는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굳이 쓰고 싶은 건 내 마음이 쓸쓸했던 탓일까. 한 때 새 버터를 싸고 있었던 빳빳하고 반듯했던 종이는 해지고 너절한 모습으로 구겨짐을 감내한 듯 한 조각 버터와 함께 뭉쳐있었다. 식빵은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모처럼 사 온 것인데, 코로나로 자주 갈 수가 없다 보니 아껴두려고 냉동실에 얼려두었었다. 신혼 때 살았던 동네 빵집이었는데, 직장 다니며 아이 키우느라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근처에 볼일이 있을 때면 꼭 들러서 빵을 사 오곤 했었다.


아침을 먹으며 가볍게 넘겨보던 뉴스였는데, 문득 눈길이 멈추었던 기사가 있었다. 마흔 나이에 처음 미술을 시작하셨고, 이제 여든 나이가 넘으신 여성 화가의 최근 전시 소식이었다. 이 분의 작품을 전시장에서 보았던 이십 년쯤 전의 일이 생각나서 잠시 세월감을 느꼈던 것 같다. 모교의 미술관에서 그분의 작품을 보았던 대학생이, 이제 마흔 나이가 되어 그분의 소식을 이 아침에 다시 듣는다는 것. 지금의 내 나이에 처음 미술을 시작하신 작가님은 사십 년이 넘는 인생을 화가로 살았다고 한다. 나도 지금 시작한다면 여든 나이에는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문득 이십 년 전 모교 미술관에서 보았던 기억 속의 작품이 궁금해져 찾아보았다. 여성의 삶을 주제로 풀어나가는 작업을 지금도 하고 계신 작가님을 문득 미술의 길로 이끌었던 마흔 살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윤석남, [의자], 1994. @이미지출처: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윤석남 작가님의 2002년 작품을 보고 있던 이십 년 전의 대학생은 세월이 흘러 15년 차의 직장인이 되었다.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아이 키우느라 애썼던 휴직 경력도 경력이라면 말이다. 처음 육아휴직을 했을 땐 아이가 크면 해결되는 문제인 줄 알았는데,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던 나는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한동안 자포자기한 마음을 경험하기도 했다. 끝나지 않은 팬데믹 속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봄은 여전히 두렵지만, 우리가 그 속에서 어떻게 아팠고 무엇을 꿈꾸었는지 잊혀선 안될 소중한 것들을 기록해나가는 오늘이 되길, 소망처럼 적어보는 비 오는 휴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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