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환경을 생각합니다

미세먼지 공휴일

by 릴리에

미세먼지로 가득한 도심을 보며 마음이 갑갑한 것은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럴 땐 잠시 쉬어가라는 의미에서 미세먼지 공휴일이라도 지정했으면 좋겠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 때 세상이 멈추었을 때 인간이 파괴했던 자연이 회복되는 놀라운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깊은 고민 없이 일상적으로 해왔던 많은 일들이 생각보다 환경에 부정적인 것들이 많았다는 것도 잠시 멈추었을 때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달려갈 때에는 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실은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것도 인생이 영원히 멈추기 전에 발견해야 할 보물 같은 지혜가 아닐까 싶다.


미세먼지로 창문조차 열기 힘든 이런 날은 집안일도 요리도 자제하는 편이어서 청정 일거리를 찾곤 한다. 먼지도 공해도 일으키지 않는 글쓰기 같은 청정 일거리 말이다. 글을 쓰려고 휴직을 한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휴직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도 글쓰기였다.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지만 인생이 원래 장난 같은 것.


아이를 낳고 나서 여러 번의 휴직과 복직을 반복해왔다. 퇴직 같은 휴직을 꿈꾸었던 적도 많았지만, 용기가 없었던 나는 늘 제자리로 돌아가듯 다시 복직을 하곤 했다. 휴직 경력도 경력인 건지 직장을 굉장히 오~래 다닌 것 같은 착시현상에 속아 복직을 하게 되지만, 일터로 복귀하는 순간 가장 두려웠던 것은 기억의 복직이었다. 어떻게 잊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기억들의 복직도 시작되었다. 왜 떠났었는지에 대한 기억들의 증언. 익숙한 듯 낯선 일상이 환기하는 기시감 deja vu.


그렇게 도망치듯 다시 휴직자가 되었다. 휴직일 뿐 휴업은 아니기를 바라는 소심한 변명처럼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는 요즘엔 과거(라고 하기엔 불과 보름 전)의 직장생활을 돌아볼 때가 있다. 돈을 벌기는 했지만, 텔레비전을 만들거나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일도 아니었던 나의 노동이 생산했던 가치들은 무엇이었는지 가끔 회의적인 물음이 떠오르기도 한다. 노동자의 생산성에 대한 휴직자의 비생산적 감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미세먼지 공휴일이 지정되는 일은 아마도 오지 않겠지만. 오늘 하루 아이에게 미세먼지 휴업일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만으로도 엄마는 휴직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글쓰기란 돈을 벌어 오거나 물건을 만들어내는 일은 내겐 아니지만, 오늘 같은 미세먼지 휴업일엔 외출이나 운동보다 글쓰기가 어쩌면 건강에 유익할지도 모르겠다. 기후변화와 팬데믹의 시대에 글쓰기는 얼마나 청정 산업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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