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그리운 것은 꿈에 본다고

by 릴리에

식물의 형태, 고유의 색상, 해부학적 미세 구조 등 식물의 특징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묘사한 그림을 식물 세밀화라고 한다(국립국어원 우리말샘, Daum 어학사전 dic.daum.net).

이우만 글 그림, <새들의 밥상>, 보리, 2019.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관찰도감의 그림들.

식물 세밀화를 그리는 과학자, 식물 세밀화가에 대한 인터뷰를 인상 깊게 보았던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세밀화를 그리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며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사진으로도 충분히 식물의 세밀한 도판이 가능할 텐데 굳이 그림으로 그리는 이유에 대해서.

식물 세밀화는 “지식으로 다시 그리는 그림”이라고 했다(EBS 예술교육다큐-아티스트 <식물, 그림을 만나다. 식물 세밀화가 신혜우>).

식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구조와 이치를 생각하며 섬세하게 묘사하여 그려낸 세밀화는 사진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직관과 통찰,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일 것이다.

글쓰기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지 않아도 인생을 살아낼 수는 있지만, 글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이해하고 알아가게 되기도 한다. 인생에 대한 세밀화를 그리듯,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끈기 있게 관찰하여 얻어낼 수 있는 노력의 산물이며, 그 자체로 배움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알아가게 되고, 알게 된 것들을 구현해낸 결과물이 한 편의 글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새벽에 잠에서 깨 내다본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적막하고 어두운 도심의 가로등을 한동안 바라보다 짧게 스친 생각을 메모해 두고 다시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비 내리는 밤의 가로등을 본 적이 있다면, 캄캄한 밤의 한가운데 등불에 비친 빗줄기의 소리 없는 풍경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밤에 비가 내렸다는 것을 기억하지만, 가로등에 대해서 깊이 묵상한 적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등불이 없었다면 어둠 속에 내리는 비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내리는 비의 존재를 비춰주는 것은 불빛이다.

글쓰기는 세상을 비춰주는 누군가의 등불일지도 모른다. 등불이 있었기에 인생의 어둠 속에서도 단비처럼 내리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어제는 이른 아침부터 대기정보를 틈틈이 확인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기록적인 황사가 될 수도 있다는 엄청난 먼지구름이 올 것이라 했다. 일주일째 이어졌던 미세먼지는 새벽에 잠시 내린 비로 소강상태를 보이기도 했지만, 곧 닥쳐올 황사를 또다시 대비해야 한다니 마음을 쉽게 놓아줄 수 없는 고달픈 날들이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멀리 북한산을 바라본다. 북한산이 보이면 마음이 밝아지고 보이지 않는 날은 왠지 어두운 마음이 된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산이건만, 먼지에 가려 잠시 산이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인데도, 그곳에 정말 산이 있었나 아득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북한산 자락이 끝나는 한적한 동네에 우리 집이 있었다. 어른이 된 이후로 20년을 넘게 서울에서 살아왔고 태어난 고향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온 도시이지만, 마음이 가는 동네를 찾기는 오래도록 쉽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처음으로 정착하고 싶은 동네를 발견했을 때 오래된 작은 집을 마련해 둥지를 틀게 되었다. 터무니없이 비싼 서울 땅에 살 집을 구입하고 정착하는 일은 노동을 팔고 영혼을 팔고 인생을 다 팔아버린 것처럼 고단한 일이었다. 가진 것이 없어 피를 팔아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난한 허삼관의 매혈 인생은 우리 주위에 어디에나 있다(소설 <허삼관 매혈기>, 위화, 1996).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고 지금도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 가족에겐 처음으로 정착했던 정든 집을 떠나와야 했던 일이 팬데믹이 남긴 가장 큰 상처였다. 떠나오던 날 이삿짐이 모두 나가고 텅 빈 집에게 “잘 있어, 얘들아” 인사를 했었다.


힘들게 버텨오던 많은 일하는 엄마들이 결국엔 직장을 그만둔다는 그 시기가 나에게도 왔을 땐 팬데믹도 함께 찾아왔다. 복직을 앞두고 있었던 나는 초조해졌다. 내가 정착하고 싶었던 동네는 나의 일터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상과 현실만큼이나 멀었다. 요즘 말로 현타가 온다고 하는, 현실 자각 타임. 복직과 아이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내 직장 근처로 이사를 결정했다. 엄마 직장 가까운 곳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기관이 있어야 나도 아이도 고생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고, 더 좋은 대안은 늘 없었다.


대안이라는 것이 삶에서 결정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선택한 결과를 대안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궁극의 대안일 것이다. 전업맘을 꿈꾸는 생계형 직장인인 나는 아이를 잘 키워낸 적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뤄낸 적도 없다. 잘 해낸 적도 이뤄낸 것도 없는, 실패와 낙망과 상심으로 가득했던 시절이었지만, 아이 키우며 일하며 날마다 고군분투했던 그때를 인생의 화양연화라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공익광고처럼 예쁘게 포장하려는 정책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터와 돌봄이 긴밀하게 간섭해야 하는 삶을 살아오는 동안, 아이 키우기에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의 노동을 유연하게 해주는 정책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집에 가는 시간은 언제나 기쁘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것도, 하교하는 아이 손을 잡고 집에 가는 그 시간도 참 좋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고난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움은 견디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도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잘 있어! 인사하고 떠나온 그 집에게, 그곳으로. 그리움에 마음이 달려가는 날이 있다. 그리운 것들은 꿈에 보기도 한다는데, 꿈에라도 가보고 싶어 이렇게 글로 쓰는가 보다.


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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