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의 집으로

추억 서랍을 열면 미미가 보여

by 릴리에

원래 수집이란 해외여행 중에 로컬 상점에서 고르고 골라 내 캐리어의 여유 공간을 가늠해 보며 한두 점 어렵게 사고 아쉽게 돌아서는 추억 같은 것이었는데.

물류의 발달로 요즘엔 클릭 몇 번이면 먼 나라의 물건들도 장바구니에 담고 항공으로 배송까지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5개월여 만에 다시 쓰는 글인데
수집 이야기라니.


글쓰기를 멈췄던 그동안 일들이 있었다.

보니하니가 종영할 무렵 이사를 해서 내겐 고향 같은 그리운 동네로 돌아왔고, 소중한 이와 아픈 이별을 했다.



잠깐 보니하니에 대해 추억하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야겠다. 생방송 톡! 톡! 보니하니(2003.9.29 ~ 2021.3.26)는 4313부작을 끝으로 종영했다고 한다(출처: EBS 공식 홈 https://home.ebs.co.kr/bonihani). 마지막 회를 앞두고 <우당탕탕 경찰서>의 서장님은 청장님으로 진급하셨다고 아이에게 전해 들었다. 작별 인사말을 하시던 서장님(현 청장님)의 붉게 상기된 얼굴은 아이들과의 헤어짐과 지난날들의 추억이 교차하는 만감 속에서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을 삼키시는 듯했다. 종영일이 마침 이사 당일과 겹쳐 오고 가는 분주함 속에 어른들은 마지막 회를 시청하지 못했고, 이삿짐이 다 나가고 덩그러니 TV만 남은 집에서 아이 혼자 보았다고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저녁 6시면 꼭꼭 보니하니를 챙겨보았던 아이는 태어나지 않아 보지 못했던 시절을 제외하곤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TV 앞을 지켰다. 펭수도 축하공연을 왔다는 4천 회 특집 어워즈도 함께 하며 1만 회까지 가자던 어린이들의 바람을 아쉽게 뒤로 해야 했던 어른들의 고민도 무거웠을 거라 짐작할 뿐. 이사를 다 마치고 아이에게 차마 물어보지 못했지만 마지막 회를 보며 아이는 울었을까?

요즘엔 후속 프로그램인 <생방송 방과 후 듄듄>을 보며 듄듄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돌고 돌아 다시 처음의 수집 이야기를 이어보자.

팬데믹으로 여행길이 막히며 모니터 앞에 앉아 클릭 클릭 수집품이 늘게 되었다. 모으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이웃님들의 수집 이야기를 듣는 것도 큰 기쁨인데. 나는 모으지 않지만 많은 이웃님들을 애타게 하는 어떤 인형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즘도 마트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미미 인형은 내가 어릴 적에도 이름이 미미였다. 한국의 바비(?)라고 해도 될지 12인치쯤 되는 아이들 완구로 대표적인 미미 인형은 역사도 길고 컬렉터들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내가 어릴 적 세뱃돈을 모아 문방구에서 샀던 미미 인형이 아마도 한국의 1세대 미미였던 것 같다. 당시 미미는 일본의 반다이사 인형의 복각 혹은 요즘의 OEM 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되고, 반다이/타카라 구도로 이해되는 일본 완구의 역사는 미국의 바비 인형과도 관련되어 있고, 그 바비의 역사 또한 방대하기 때문에 인형의 역사도 인간사와 맞물려 있다. 수집은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는데 가장 필요한 건 물론 돈이겠지만^^ 역사나 예술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성숙한 컬렉터가 될 수 있다.


어렸을 적에 이미 다 가져보았기에 나는 고전 미미 인형을 수집하지는 않는다. 자라면서 저절로 버려졌던 내 미미들이 더 이상 아쉽지도 않을 만큼 내 취향도 기호도 달라졌고 그 시절 세뱃돈 모아 충분히 살 수 있었던 미미가 지금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수집 세계의 현실도 부럽지 않다. 다만 내 어릴 적 친구가 궁금해서 찾아보던 중에 이렇게 알게 되었다.

내 나이보다 오래된 일본 나카지마 제작소의 인형 가구. 모던한 감성과 음각된 서체가 멋스럽다. 제품명은 Hi-Look 퍼니처. @개인 소장품.



미미와 언니 미리 인형은 거의 중학생이 될 무렵까지 우리 집에 있었던 것 같고 학교 마치고 집에 와서 혼자 인형 놀이하던 내 방 풍경이 기억 속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다. 미미는 아쉬움이 없지만 그 시절 갖지 못했던 것이 미미의 집, 돌하우스 세트였다. TV 광고에서 미미의 집을 처음 보았을 때 그 벅찬 기분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다섯 살 위였던 언니는 미미의 집은 너무 비싸서 우리 형편에 살 수 없다고 자기도 아이였을 텐데 더 어린아이 앞에서 어른처럼 말했다. 그 당시 미국에서 들어온 양배추 인형이 인기였는데, 온 가족이 백화점 구경을 갔다가 만져만 보고 비싸서 사지 못해 어린 내가 울었던 일이 있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사고 싶어서 떼쓰며 엉엉 울었던 게 아니라 사지 못하는 현실이 슬퍼서 훌쩍훌쩍 돌아선 건데. 집에 오는 길에 발길을 돌려 부모님이 다시 가서 양배추 인형을 사주셨다. 부모가 되고 나서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비싸서 살 수 없었던 그 미미의 집을 나중에 친구 집에 가서 실물로 보게 되었다. 교육열이 높았던 부모님 덕분에 우리 집은 부자 동네에 있는 평범한 집이었는데, 내 친구들은 그 당시에도 고급주택에 살았다. 친구 집에 갔더니 학생 책상 위에 미니미 작은 인형 책상이 놓여 있었는데, 책상 위의 책상! 그 풍경이 오래도록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미미의 집이든 인형 책상이든 그 당시의 나는 당연히 그것들은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별로 슬프지도 않았다. 아마도 양배추 인형에서 미미인형으로 그 사이 나도 조금 자랐던 것 같다.


친구 엄마를 따라 친구들과 당시 처음 가보는 시내에 따라갔는데 그 무렵 일제 물건들을 취급하는 상점이었던 것 같다. 작은 연보라색 예쁜 수첩을 친구 어머니께서 사주셨다. 어른이 되고 나서 그 옛날 친구 집에서 보았던 인형 책상과 인형의 집을 다시 보게 되었다. 빈티지 타카라 제품이었고 예쁜 핑크 책상을 구해서 이제 나도 책상 위의 책상! 을 갖게 되었다.


해외 수집을 하다 보면 오래된 물건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때가 많다. 온라인으로 만나는 해외 컬렉터들은 주름진 손의 할머니들도 많았고, garage 세일에서 만났던 옛날 인형들을 저렴하게 팔거나, 아이 성탄절 선물을 사주려고 오래 소장했던 빈티지를 판매한다는 사연도 기억에 남는다.


유럽에 갔을 때 로컬 중고 상점에서 헌책을 몇 권 샀는데 읽을 줄 모르는 핀란드어로 쓰인 표지 안쪽의 짧은 메모가 무슨 내용일까 누군가의 추억일까 상상하는 것이 좋았다. 정신없이 구경하는데 문 닫을 시간이라며 해가 일찍 지는 북유럽의 나라에서는 오후 5시에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그때 사 오지 못한 누군가가 쓰다 내놓은 오려진 종이인형을 가끔 아쉽게 추억하기도 한다.


그렇게 수집을 이어오다 어떤 빈티지는 더 구하기 어렵고 이미 단종된 물건들 중에서도 발매 수량이 적었던 물건들은 컬렉터들 사이에서 더 특별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경우엔 객관적인 평가보다도 내가 혼자 좋아하는 것들을 조용히 모으는 편이라 컬렉터들 사이의 경쟁과는 늘 거리가 있었는데, 유독 이것만큼은 구하기 힘들다고 느꼈던 빈티지 물건이 있었다. 단종된 것은 당연하고 발매 수량이 매우 적었다고 한다. 살다 보면 만나겠지 잊고 살던 중에 우연히 얼마 전에 드디어 만나게 되었는데. 물론 실물로 보아도 정말 좋았다. 우연히 내가 찾던 매물이 미국에서 나온 것을 볼 수 있었던 건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상태였기에. 백신 부작용으로 초능력이 생겼나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결국 내 품에 오고 나서야 문득 알게 되었는데, 많은 수집품들이 다 소중하지만 이건 평생 소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하늘로 떠나신 소중한 이의 선물이라고 울지 말라고 내게 보내주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