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코알라

고양이를 부탁해

by 릴리에



왜 코알라야?


코알라는 말이야, 잠이 아주 많은 동물이야.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도 알겠다. 아기였을 때부터 아침이면 아이가 나를 깨웠고, 밤 수유에 밀린 설거지에 자기 전 스마트폰 검색까지, 늘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 엄마였다. 종일 아이랑 책 읽기와 블록 놀이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 보면 졸음이 스르륵 와서 놀다가도 쿨쿨 잠을 자는 엄마였다. 아기는 잠든 엄마 몸에 등을 딱 붙이고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혼자 블록 놀이를 하곤 했다.

학교 갈 나이가 돼서야 내가 아침에 아이를 깨울 수 있게 되었다. 학교와 직장이란 아침에 일어나기 싫게 만드는 그런 것들인가 보다.


일요일이 가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 위안을 주기도 하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고양이를 부탁해>(EBS1, 시즌7)를 온 가족이 함께 우리 집 고양이들도 다 같이 본다. 제일 큰 형아가 열세 살 고양이인 우리 집에선 TV를 보며 아마추어 냐옹신 솔루션 정도는 다들 한다. 중성화를 안 해서 그렇다, 화장실 위치가 좋지 않다, 밥 자리를 바꿔야 한다는 식의 훈수를 두기도 한다.


치즈, 턱시도, 삼색이, 흰둥이, 러시안 블루까지 많은 냥이들이 우리 집을 거치는 동안 정착해서 살거나 새로운 가족을 찾아 떠나기도 했다. 내가 구조하기도, 구조된 아이들을 데려오기도, 다묘 가정이라 소문이 나면서 지인의 지인에게서 업둥이를 데려온 적도 있었다.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우리 흰둥이. 영정 사진 속엔 ‘호동이’가 되었네.


하지만 애초엔, 처음이고 아주 오래전이었던 그때엔 나와 흰둥이 우리 둘 뿐이었다. 우리 둘만이 알고 있는 추억과 비밀과 눈물이 너무도 많은데, 너는 가장 먼저 내게로 와주었고 가장 먼저 떠나기도 했다. 공부하러 처음 서울에 왔었고,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공부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아니라 일만 해도 되는 상태가 되었을 때 흰둥이가 나의 자취방으로 오게 되었다. 그 뒤로 둘리가 왔고, 린시가 왔고, 남편이 오고 아이가 왔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왔던 삼색이 청운이는 비 오는 날 아이를 데리고 하원 하던 청운공원에서 처음 만나 청운이가 되었다. 현재 청운이는 할머니 댁에 홈스테이 중인데, 팬데믹으로 우울했던 할머니께 안마도 해드리고 약도 챙겨드리며 효도하고 있다고 한다.


흰둥이가 떠나던 날 밤에 왠지 모르지만 갑자기 나는 라디오를 틀고 잠을 청했다. <응답하라 1994>에 나올 것 같은 라디오 진행자의 밤에 잠긴 목소리를 들으며,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잠을 잤다. 그 밤에 흰둥이는 몇 번인가 야옹야옹 말을 했었고 해가 뜰 무렵 숨이 잦아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이별의 순간이 오면 생각나는 말은 늘 같았다. 미안하고 고맙다.


고운 상자가 없어 라면박스를 아이가 색지로 꾸며 흰둥이를 담고. 사람이 죽으면 간다던 벽제로 갔다. 슬픔에 잠긴 우리를 웃게 해 주시려고, 영정 사진엔 ‘호동이’ 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벽제로 가던 길에 화원에 들러 꽃다발을 주문했는데 포장을 어떻게 해드릴지 물어보시는 질문에 저희 고양이가.. 마침 화원에서 오래 키우시던 고양이가 옆에 앉아 있길래 잠시 손을 내밀어 보았다. 얼마나.. 십 년쯤.. 뭐라 위로의 말을.. 그렇게 끊기듯 대화를 이어갔다.


원래 흰둥이였지만 집에서는 흐둥이라 불렀다. 말 배우기 시작하던 무렵 아이가 부르던 말투로 세 마리 냥이들의 이름도 점 하나쯤 달라졌다.


흐둥이는 말도 없이 아팠다. 밥을 잘 먹지 않아 살피던 중에 귓불이 노란 것을 보았다. 황달은 고양이에겐 좋지 않은 징후라 한다. 새해를 같이 맞이 하자고 기도했는데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무렵 별이 되었다.

흔히 고양이는 독립적인 동물로 알려져 있어 집사 혹은 친구 같은 느낌으로 십 년을 넘도록 같이 살았지만, 죽고 나서야 자식이었단 걸 알게 되었다.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되거라.

-벽제에서 본 글.


화구를 앞에 두고 저고리 입은 흐둥이와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아이가 서늘하게 물었다.


뭐 하(려)는 거야?


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밖에. 그땐 설명해 줄 수 없었던 것들을 최근에야 아이에게 비밀처럼 조심스레 보여줄 수 있었다.

아주 조금씩 은유적인 것들을 사실적으로.


명복공원에서 물끄러미 전광판을 보던 아이가 갑자기 물어보았다.


엄마, 화장이 뭐야?


사람이 죽어 장사 지내는 것을 장이라 하고,

화는 불 화..


그제서야 지난 일의 의미들까지 모두 알아버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명복공원 가득 번져갔다.

고인을 위한 눈물인지 고양이를 위한 눈물인지 헤아릴 수 없는.


우리 집 막내였던 청운공원의 그 청운이가 요즘 집사로 모시고 있는 내 어머니는 얼마 전 아들을 떠나보내셨다. 고인을 생전에 불렀던 그 호칭을 차마 내 입으로 부르기 어려워 자꾸만 에둘러 고백하고 있는 내 모습도 어색하다.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할 땐 살아생전에 하듯 목소리 내어 말로 했다.


고맙고..


미안하단 말은 목으로 삼킨 채 아이 손을 잡고 내가 먼저 돌아서 나왔다. 그 마지막 문이 닫히는 것을 본다면 평생 고인을 떠나보낸 미안함 속에 살 것만 같아 우리 다시 만나는 날까지 잊지 말자고,

보내는 이의 눈물보다 두고 떠나야 하는 이의 눈물이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울지 말자고 약속하자.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최순애 요, 박태준 곡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