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광인狂人
부모 노릇이 힘든 이유는 아이가 한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는 성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발달에 맞춰 부모도 필요한 아이템을 적시 구비하여 대응해야 한다. 요즘 아이가 공들이고 있는 이슈는 포켓몬이다.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세계관이라 엄마 취향은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해한 놀잇감도 아니라는 판단에 적극 지원해주고 있다. 대체로 아이의 취향을 존중해 주는 편이고 뭐가 됐든 유년시절을 충만하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에 아이의 사생활을 내 잣대로 제한하진 않는다.
잠들기 전에 불 끄고 누워 최소 30분 이상 아이의 포켓몬 강의를 들어주어야 하고 가위바위보로 선공 후공을 정해 포켓몬 배틀도 상대해 주어야 하지만, 젤 어려운 건 단종된 포켓몬 카드를 프리미엄 붙여 구매해 주어야 하는 일이다. 이 부분은 약간의 경제적 가치 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데, 우린 넉넉한 형편도 아니지만 엄마가 힘들게 돈 버는 스트레스를 포켓몬 카드 과소비를 통해 보복 소비로써 보상받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고 보는 편이다.
대개 유년시절 아이들의 몸의 소유권(?)이 보호자인 부모에게 위임된 경우가 많다. 아이들을 위험에서 지켜야 하고 불의에서 구해야 하고 입에 쓴 약도 권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때론 아이를 울려가며 보육기관에 맡기거나 싫어하는 학원에 보내거나 사달라는 장난감을 사 주지 않기도 하지만 그 부모를 아동학대로 신고하지는 않는다. 모호하고 애매한 것 같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세상 이치 안에서 이해되고 설명되는 일들인데, 다만 어린이 입장에서도 억울한 일들은 없었으면 한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학교에서 방학생활계획표를 아이가 만들어 왔다며 보여주었다. 국민학교 시절에도 방학이면 늘 했었던 동그란 시계 모양 안에 아이가 방학 하루 일과표를 그려왔는데 <아침밥-자유시간-점심밥-독서-자유시간-저녁밥-자유시간-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먹고 자고 놀겠다는 작정인데 다행히 중간에 독서 30분이 있어 감사했다. 기다란 시간 띠 모양으로 된 일주일 방학생활계획표에는 할 일을 적는 커다란 표에 오직 두 단어만이 쓰여 있었는데 <독서, 모름>이었다. 방학 동안 할 일을 딱히 모르겠다는 주장인데 그나마 독서가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운다는 자부심을 가진 부모들조차도 엄마표 OO법 등으로 결과적으로는 경쟁에서의 성취를 점하는 것이 아이 인생에서 가치롭다고 보는 것 같았다. 아이의 잘됨을 인생에서의 성취적 결과물로 평가한다면 성공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과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초3 아이가 나중에 꼭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면 그 마음 고3 때까지 변치 않을 자신 있냐는 질문으로 재차 확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까지 그렇게 키웠고 나이가 자람에 따라 점점 아이의 주도성이 커질 텐데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거라 믿는다고 대답한다. 아이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같은 보물을 내게 보내주신 창조주의 섭리를 무한 신뢰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기어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기에게 해서는 안될 것과 허용된 것을 구별해주고 시민사회에 필요한 윤리나 규범, 인간에게 계시된 선한 양심의 도리에 관해서는 유아기의 저항에 부딪쳐도 물러서지 않고 가르쳤다.
어릴 땐 엄하게 훈육하되 성장하여 다 자란 인격체를 지배하려는 방식은 부모라도 정당화될 수 없을뿐더러 효율적이지도 않다. 인간의 도리와 질서는 창조주께서 이미 계시하였으니 부모의 역할은 창조 질서 안에서 하위 덕목들을 잘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를 성실히 돕는 겸손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3이 처음 학교에 신입학하던 해에 코로나-19가 시작되어 코로나몬(covid monster)은 이제 메가 진화를 거쳐 오미크론이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악 타입(惡-type) 몬스터로 인간의 기술이나 지식을 쉽게 “기절”시킨다.
불안의 많은 원인들이 사실은 일어나지 않을 일 때문이라고 하지만, 오미크론이 몰고 올 쓰나미는 예고편 만으로도 충분히 공포를 주었다.
때론 팬데믹이라는 괴물에 먹힐 것만 같은 두려움이 몰려오고, 그게 뭐라고 싶다가도 말처럼 담대하긴 어려웠다. 코로나 범불안장애라고 불러야 할지 일상적 공포와 만성적 스트레스를 외면하기 어렵다.
Fear Eats the Soul
오미크론이라는 대유행의 쓰나미가 촉발할지 모를 내 안의 광인狂人이 두렵다.
새해 복 많이.. 새해니까 새 마음 새 계획 새 출발 새 다짐으로 퐈이팅하며 꾹꾹 눌러 담았다가 어느 순간 다 내던질 만큼 분출할지 모를 마음 깊은 곳 끓고 있는 마그마가 두렵다. 지금도 대폭발의 전조 같은 약한 심리적 지진이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어쩜 아이가 훨씬 더 어렸던 그 시절에 일하는 엄마로서 맹수같이 울부짖었던 사건들의 여진이 현재까지 남아 이어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대충 살 거라고 주장해보지만 실천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늦은 밤 검색창에 이것저것을 넣어보며 만능 키를 찾으려 시도하거나. 어떤 날엔 위로되는 음악을 들으며 실컷 울어도 본다. 기본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반성과 함께 진리의 말씀도 매일 읽기로 했다. 몸과 마음이 하나이듯, 열흘 째 이어온 걷기 운동과 더불어 나는 몸도 마음도 튼튼하게 오미크론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다짐하며.
우리가 두려워하는 실체가 감염병 자체는 아니라는 걸, 평화의 시대에도 일-가정 양립은 원래부터 어려운 주제였기에 재난이 닥쳐오면 더욱 궁지로 사람을 몰아갈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면 아이를 안고 업고 피난 가야 하는 모성의 조급증처럼, 대확산의 피해가 고스란히 어린이들에게 수렴될까 두렵다.
노란 민방위 잠바를 입은 공무원들이 내 백신 효력이 90일이 지나 갑자기 소멸되었다는 판정을 내려 세 번째 접종을 예약해 두었다. 그 예약일이 도래하기 전에 많은 것들을 결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깊은 밤에 잠에서 깨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일이 있고 나서 남편이 휴직을 권했다. 초3이 될 때까지도 휴직을 고민해야 할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아기를 낳고 회복실에서 처음 눈 떠 울었던 그 시절엔 알지 못했다. 코로나-22가 오미크론처럼 올 거라고는 코로나-19 시절에도 미처 알지 못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