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농담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거인巨人이나 무명인이나, 타인이나 지인이나.
현대사의 큰 지성이셨던 고인의 부고를 며칠 전에 들었다. 이슈가 워낙 많은 요즘이라 뉴스의 메인에서 자주 보이진 않았고 유명 연예인이나 대선 후보자들이 고인의 빈소를 다녀갔다는 뉴스를 간간이 보는 정도여서 안타까운 마음에 쓰는 글인지도 모르겠다. 잘은 모르지만 그분의 빈소를 다녀간 유명인들의 성취나 업적에 비교할 수 없는 거인巨人으로 고인에 대해 알고 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분이 어떤 측면에서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한 사람의 인간이라고 전제하더라도, 적어도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서점가에선 그분에 대한 조용한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인의 저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고 지금껏 살아왔다는 것이 부끄럽다. 22세 청년 이어령의 화려한 데뷔작이었다는 <우상의 파괴>(한국일보, 1956년 5월 6일) 일부를 나무 위키에서 겨우 읽어본 것이 전부인 게으르고 가난한 마음이지만 그를 추모하는데 함께하고 싶다.
한 달쯤 전 우연히 고인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를 읽었던 기억이 나서 지난 기사를 찾아보았다. 기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지 그 사이 기사 제목을 수정한 것도 볼 수 있었다.
내가 그 기사를 기억했던 이유는 기사에 실린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자택에서 인터뷰 중이셨던 그분의 모습에서 병환이 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풍채 좋은 젊은 날의 모습으로만 알고 있던 내겐 큰 충격이기도 했다.
병환 중에 인터뷰 중이셨던 그분의 얼굴에서 작년에 고인이 되신 내 가족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던 것도 고백한다. 말기암 환자의 마지막은 대게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고 알려져 있다. 사회적으로는 대가의 삶으로 평가받는 분이지만 누군가에겐 한 사람의 소중한 가족이었을 것이다.
고령과 병환 속에서도 마지막 인터뷰에서 보여주셨던 이어령 선생님의 열정과 위트를 기억한다. 그분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는 동안 나의 시간도 작년 여름으로 거슬러 갔던 것 같다..
.. 그 여름에 우린 소도시에 살았던 고인의 집에 모여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가족 모임을 했었다. 오랜 병원 생활을 벗어나 집에 다녀오기 위한 말기암 환자의 외출. 그 외출을 조심스레 허락했던 의사의 행간을 우린 모두 알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집에 돌아온 그는 좋아 보였고 많이 웃었고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 다음번 병원에서 다시 만났을 땐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 농담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 꿈에 고인을 보기도 했다.
돌아가신 이를 꿈에 보는 것이 더 슬프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꿈에 본 그는 늘 좋은 모습이었는데 곱게 웃었고 평안한 얼굴이었다. 해님처럼 빛나고 따뜻했다. 그의 마지막 농담처럼.
이어령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https://news.v.daum.net/v/EhT9Ovx53I
고인이 되신 사랑하는 가족에게 보내는 글입니다
https://brunch.co.kr/@c4ab1a4e65b649d/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