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동맹과 글쓰기 깐부 사이
관성 때문인지 휴일에도 새벽같이 잠에서 깬 날이면 덤으로 사는 인생 같아 다시 잠들기 어렵게 하는 설레는 마음이 있다. 출근 안해도 되는 아침은 잠자는 시간도 아깝다. 우연히 겨울잠에서 혼자 깨어났다가 모두가 잠든 세상을 비밀스럽게 탐험하는 무민의 겨울처럼. 아직 곤히 자고 있는 아이 곁을 살짝 빠져나와 고방에서 혼자 글을 쓰며 맞이했던 동트는 아침.
무민들은 11월부터 4월까지는 늘 겨울잠을 잔답니다. 겨울잠을 자는 건 조상 대대로 내려온 관습이거든요.
……
그런데 여태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지금 방금 일어났답니다. 무민트롤이 잠에서 깨어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게 된 거예요.
……
…무민트롤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낯설고 신비로운 집 안을 혼자서 이리저리 돌아다녔어요.
@출처 : 토베 얀손, <무민 골짜기의 겨울>, 도서출판 한길사, 2012.
어렸을 땐 어쩌다 저절로 깨어난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하려다 엄마가 일요일인걸 알려주면 신나게 이불속으로 다시 쏙 들어가 달콤한 늦잠에 빠지기도 했었다. 출근이 없는 주말이자 동시에 연휴이기도 한 넉넉한 휴일의 처음 이틀을 쓰고 읽는 아침 시간으로 시작했더니- 첫날은 쓰기만 했고, 둘째 날은 읽기만 했더니- 곧 다시 새로운 글감이 떠오르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라이킷을 매개로 하는 브런치 플랫폼의 독서효과로 인해 또 다른 글을 창작하게 되는 생산적인 삶이 이어졌다.
현대인의 삶 자체가 많은 시간을 하나의 플랫폼에만 집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정신분열적인 생존 상태에 가깝지만, 많은 작가님들이 생업과 생활로 이어지는 인생의 회전목마 속에서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집중하기 위해 지.정.의를 총동원하여 내공을 닦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같은 비대면의 시대에 직업도 관심도 세대도 다르지만 글쓰기를 통해 인생의 진실을 탐구해나가는 타인의 취향을 읽고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브런치 플랫폼에 고맙다. 익명이어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에 브런치 대나무숲에 오기도 한다. 글쓰기 깐부 사이.
시인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배달하던 마리오는 시를 통해 인생을 이해하고 성장하게 된다(일 포스티노, The Postman, Il Postino, 1994). 너무 오래전이고 공식적인 유통 경로로 본 것도 아니었던 시절이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마리오가 네루다의 시를 읽고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인간으로 사는 것도 힘들다’, 왠지 모르겠지만 시의 그 구절이 너무 좋았어요” (출처: 마리오의 대사였다고 기억되는 희미하고 신뢰롭지 않은 추억)
미자(윤정희)는 동네 문화센터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듣고 66세 인생에서 사춘기 같은 성장통을 겪는다(시, Poetry, 2010). 꽃으로 장식된 미자의 고운 페도라보다도 오히려 그녀가 맞닥뜨린 인생의 부조리와 지난함 속에서 미자의 영혼은 아름답고 꽃 같았다.
만 8년의 인생을 살아온 아들에게 엄마가 직장에서 힘들었던 일들을 어린이용으로 번안/편집/각색하여 고충을 토로할 때가 있다. 항상 내편이 되어 경청해 주고 같이 웃어주고 울어주기도 하는 고마운 벗이다. 뒷담화 동맹이자 모태 깐부 사이.
아이도 학교에서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마음 상한 일들이 있으면 엄마에게 조곤조곤 알려 준다. 그 순간의 힘들었을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주는 것 못지않게 아이가 경험했던 일의 의미를 우유팩 펼치듯 전개도로 같이 살펴보는 것도 때론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뭐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억울하고 속상해서 눈물 났던 아이의 순간에 대해, 네가 존중받고 배려받지 못했기 때문에 속상했던 것이라고 변호를 해준다. 아이들도 자신이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했을 때의 감정을 안다. 내 마음속의 말을 나 대신 잘 말해주어서 어려움에 처한 약자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변호인이라고 한단다.
일터의 관리자 중에 “요즘 젊은 분들은~” 이렇게 논의를 시작하는 좋지 않은 습관을 지닌 분이 있다. 그냥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를 뿐이지 굳이 세대론으로 접근하려는 방법론은 별로 도움도 안 된다. 요즘 사람 답지도 않고 젊지도 늙지도 않았지만 종종 옛날 사람 선별 테스트에 당첨되기도 하는 나는 왜인지 중간관리자 이상의 입장보다는 요즘 젊은 사람들의 입장에 더 자주 공감이 간다. 더 많은 것들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더 슬기롭게 행동해야 할 책임, 혹은 의무는 아니겠지만 미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이 대체로 서사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은 결정권자의 그룹보다는 주로 그들의 결정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는 권역에 분포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선한 영향력을 경험하고 넓은 아량과 유연한 결정권자들의 권역에서 업무를 해본 사람들이 결국 선한 관리자로 성장하게 되므로, 선순환을 위해 노력해야 할 도의적인 책임이 관리자에게 있다고 본다.
아이 학교에서 가정통신이 와서 올해 코로나 때문에 우유 급식을 어떻게 할지 설문조사를 했다. 아이에게 알려주었더니 왜 그런 걸 엄마들한테 물어봐, 우리한테 물어봐야지! 그냥 학교 간 날 우리한테 물어보고 찬성 반대 손 들라고 하면 될걸. 아무래도 다음 세대는 우리보다 슬기로운 것 같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이렇게 명쾌한 인생을 어른들은 왜 복잡하고 어렵게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