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6시간도 짧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by 릴리에

동틀 무렵 일어나니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뽀얗다. 뽀얀 국물에 새하얀 떡국을 먹는 설날 아침이었다.

마음이 심란할 땐 미뤄둔 집안일이 때론 도움이 된다. 뽀얀 물벽지를 꺼내 부분 도배가 필요한 집안 곳곳을 셀프 도배했다. 요즘엔 뭐든 편리한 세상이라, 작게 재단해서 풀까지 발라둔 상태로 벽지를 판매해주니 클릭 몇 번이면 벽지가 집까지 배송되고 물에 빠뜨려 벽지를 쓱 붙이기만 하면 된다. 부부가 커플 도배 장인이 되어 순식간에 끝낼 수 있었다.

열세 살 된 우리 집 냐옹이가 긁어 너덜 해진 벽이 깔끔해졌다. 기분이 새롭고 뿌듯하다. 땀 흘려 생산적인 노동을 하면 어수선한 마음이 정돈되는 원리 같다. 마음도 수습되고 집안까지 정리되니 매우 바람직하다.

냐옹이가 또 긁어놓으면 또 붙이면 되고, 살다 보면 심란해서 몸 풀 거리 찾을 일은 영원히 있을 테니 괜찮아 또 긁어도 돼, 냐옹아.

영원한 영원히,가 아니라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에만 영원히,라서 다행이라 해야 하나, 끝나지 않는 인생의 굴레란 너.


대중가요만 들어보더라도 세상에 수많은 연인들이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하게 되는 가슴 시린 사연들이 많다. 연인 간의 결별에도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까지 상처가 깊어지는 아픔의 시간이 있고, 인간관계에서도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관계의 단절이 일어나기도 한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그만둘 정도로 힘들었던 건 누군들 아니었을 것이다. 인생에 수많은 선택들이 있지만 떠나야 할 때를 판단하고 결심하는 일은 늘 어렵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낙화>


연휴의 마지막 날엔 머릿속이 내일 출근 준비-정확히는 방학기간이라 집에 혼자 남겨질 아이 걱정-으로 가득하다.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가끔은 궁금하다. 나만 하루가 20시간 인가 싶을 만큼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살아도 출퇴근하고 아이 돌보는 일로 하루가 모자라는데. 반찬 가짓수를 줄이거나 잠을 줄이거나 집안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는 정도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게으르거나 일머리가 없거나 손이 느려서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자각할 정도의 교육을 받고 자란 것에 감사하고 있다. 단지 운이 좋아서 우리의 어머니들보다 세련된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내 탓이요 자학하는 불행은 예방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여자들은 다 그런 줄 알고 살았다던 어머니의 쓸쓸한 고백처럼.


유쾌하고 재주 많은 우리 어머니는 지금 세상에 태어났다면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커리어를 이루었을 것 같다고 가끔 상상을 한다. 엄마가 그 시절에 태어나서 온전히 주부로만 엄마로만 살아주어서 내겐 무척 고마운 일이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내 아이에게 온전히 엄마로만 곁에 있어주지도 못했을뿐더러 직업적으로 이룬 이깟 성취들이 자랑스럽지도 않다.


누군가에겐 하루가 26시간일 필요가 있다. 아이가 더 어렸던 시절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활용했던 적이 있다. 근무시간을 하루 2시간씩 단축했더니 하루가 26시간 같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2시간 일찍 퇴근하고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하던 늦은 오후의 햇살을 지금도 기억한다. 우리나라가 왠지 선진국 같았다. 아이 손을 잡고 낙엽을 밟으며 걸어오던 하원길에 둘이서 빵도 사 먹고 개미도 구경하고 도란도란 충만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왠지 내 직업이 만족스러웠다. 보육기관에 맡겨져 보내는 시간이 적절히 짧아지면서 아이도 안정감 있게 어린이집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동화 같던 그 시간은 그리 길진 못했다. 제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던 시절에 일하고 아이 키우며 승진까지 할 수 있었던 과거의 승리자들은 요즘 일하는 엄마들을 월급 루팡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괴도가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일하는 엄마를 지원해 주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이 크기 때문에 그렇다. 내겐 남편이자 아이 아빠인 이 남자는 그의 직장에서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기 다소 힘든 직업 특성을 갖고 있다. 맞벌이 가정에선 부부가 육아 동지가 되어 2인 1조로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직업 특성상 내가 조금 더 아이를 돌보고 남편이 조금 더 직장 일에 실력을 발휘하는 편이 사회적으로도 유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 직업이 상대적으로 대체가능성에서 좀 더 유연한 직종이기 때문에 그렇다. 직장을 선택하던 시기에 그 부분을 나는 많이 고려했는데, 말하자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인력으로 살고 싶었다. 존재감 있는 인생이 조큼 부담스러웠다고 해야 하나.

좋은 남자이지만 남편으로서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기 때문에 만 8년간의 수련 끝에 자발적인 육아 동반자가 될 수 있었던 남편의 성장도 사회적으로 큰 유익이 될 것이다. 일터에서 만나는 일하는 엄마 직원들에게 남편이 좋은 동료가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눈물 모아 이루어낸 성취인데 사회가 어찌 내게 보상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일하는 엄마의 눈물과 한숨을 먹고 자란 내 아들은 배려와 존중과 양성평등을 장착한 멋진 청년이 될 것이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시를 노래할 수 있는 청년. 일하는 부모를 지원하는 정책이 미래 세대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


전무후무한 팬데믹으로 유연근무와 재택근무 주 4일제 등의 미래형 근무 방식에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업무 시간 자체를 줄이기 어렵다면 출퇴근 시간을 근무 시간으로 인정해주는 사고의 혁신도 이웃 나라엔 있다고 하니 긴 연휴의 끝에 출근을 앞둔 내 맘을 두근거리게 한다.


통근 개혁, 통 큰 개혁?!

https://news.v.daum.net/v/20220131133828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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