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오늘부터 1일

입춘立春의 기록

by 릴리에

팬데믹으로 삼시 세 끼를 집에서 해 먹는 휴일이면 상추 꽃꽂이를 한다. 꽃다발처럼 상추를 만들어서 밥상을 차린다. 살다보면 힘듦이 지나쳐 농담만 나올 때가 있다.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인 입춘立春이라고 한다.

봄, 오늘부터 1일.


“입춘”, https://m.search.daum.net


이른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오던 길에 낮의 햇살이 살갑게 느껴졌다. 한낮의 여유 있는 퇴근길이었기에 넉넉한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일주일 새 달라진 건 미묘한 절기의 변화나 태양의 고도, 온화해진 대기의 변화만은 아닌 듯했다. 거리의 인파 속에서 언뜻 여유로움을 보았던 것 같다.

전운이 감돌던 긴장된 분위기가 반전을 보인 것은 오히려 오미크론의 과감한 습격 이후부터 같은데, 날마다 기록을 갱신하던 확진자 통계에서 어느 순간 너무 초월적인 수치를 보아서 그런지 얼떨떨하면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인생에서 감당하기 힘든 큰 시련을 만났을 때 인간이 경험하는 감정 상태의 변화를 설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1926-2004)의 연구가 있다.

시련을 받아들이는 5단계(five stages of grief)를 설명하는 DABDA모델에 따르면, 부정(Denial)-분노(Anger)-타협(Bargaining)-우울(Depression)-수용(Acceptance)을 경험한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였던 그녀는 죽음과 임종에 대한 오랜 연구를 통해 이러한 이론을 정립하게 되었다(출처: 위키백과,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삼 년째 접어드는 코로나-19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5단계 모델로 돌아보게 된다. 많은 죽음과 희생이 있었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 또한 무겁기만 하다. 대체로 서사적인 순서를 말하는 5단계이기도 하지만 개별적인 경험은 조금씩 다른 양상이었을 것이고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시간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논리적 순서를 의미하는 5단계로 본다면 설령 지금 분노나 우울의 단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수용의 과정을 향해 갈 수 있으리란 희망에 기댈 수 있다. 물론 수용에서 분노를 우울에서 부정을 역순으로 점프하거나 무한 반복하는 혼란을 더 많이 이겨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이해와 설명을 목적으로 만든 이론적 도식은 명료해 보일지라도 인간의 실천은 단순하지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사투를 도와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나 사회적인 합의가 성숙한 사회라면 반드시 필요하다. 오미크론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는 것이지만, 인생이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펼쳐지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개인의 잘못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정책을 결정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슬기로운 공직생활이 요구될 수 있으며, 부디 태만하지도 자만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선출직에 있는 이들의 자화자찬은 절대 사절이다. 그래서 투표를 앞둔 선택은 늘 쉽지가 않다.

자기가 뭘 잘해서 선출된줄로 착각하는 이들은 BTS가 아미들을 대하는 태도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최전선에서 환자들을(확진자이기 이전에 환자임을 잊지 말자) 돌보는 의료진의 희생과 재택치료의 기본 전제가 되는 집 자체가 없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마련하는 분들을 기억한다. 그분들의 헌신을 기록하는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다는 빚진 마음으로 쓰고 있다.

환자를 치료하고 바이러스를 분석할 전문 지식은 내겐 없지만 이제 마음을 회복하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 인문학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느끼기에 읽고 쓰는 일을 부지런히 이어가고 있다.


오미크론 소문에(정보라기보다는 소문에 가까운) 도피처를 찾다가 한번 맞서 보자는 용기를 다시 내보고 있다. 사직서를 남몰래 품에 넣고 다니듯 한동안 휴직을 깊이 고민했다가, 용기 내어 다녀보기로 마음먹은 날 달력을 보니 문득 입춘立春이었다. 감염병의 확산으로 아이 돌봄 걱정이 해소된 것도 전혀 아니지만, 휴직으로 늘어날 가계부채가 염려돼서도 아니었고, 직장에 휴직 청원을 못할 만한 아쉬운 입장도 아닌데, 굳이 힘든 길을 왜 가려고 하는지 묻는다면 입춘立春이어서 그랬다고 해야 하나.

찬란한 슬픔의 봄을**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먹은 떡국만큼 한 살 더 용감해진 나는 한 살 더 뻔뻔해지기도 했는지 요즘따라 관리자에게 이 시국에 출근해 주는 것만으로도 내게 감사하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다. 연가를 조퇴로 나누어 1분기에 전부 소진하겠다는 각오로 거의 매일 이른 퇴근을 하고 아이와 오후 시간을 누리고 있는 요즘이다. 조퇴하고 일터의 밀집도를 낮춰주겠다는 싱거운 농담 같은 각오로 매일 아침 출근하면 그날의 일정 체크 후에 조퇴 시간을 결정하고 복무를 입력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른 퇴근길에 생긴 여유를 매일 3킬로미터를 걷는 것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하기 힘든 일하는 엄마 인생이라 출퇴근길을 활용해서 걷는 방법을 종종 쓰는데, 집에서 엄마 기다리고 있을 아이 생각에 보통의 퇴근길은 최단경로를 이용해야만 했다. 퇴근 시각이 빨라지니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좋았다. 걸어가는 동안 아이와 통화하며 어디쯤 왔는지를 알려주고 퇴근길은 원래도 신나는 것이지만 이렇게 집으로 가는 길이 달콤했던 적이 없다. 연가를 활용해서 자체적으로 만든 단축근무 정도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지금은 개인적인 실천이지만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유연한 근무형태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착되기를 꿈꾸고 있다.


출퇴근용 마스크를 미리 주문하고, 온 가족 비타민을 조금 넉넉하게 구입하고, 쿠션이 좋은 새 운동화를 검색해보며 곧 닥쳐올 오미크론의 파고와 오는 봄의 희망을 겹쳐보듯 가늠해보는 절기상 입춘立春의 기록.


*살아남은 자의 슬픔. 베르톨트 브레히트.

**찬란한 슬픔의 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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