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이지 않은 일상

갭 이어 Gap year

by 릴리에

화이자-바이오엔텍 백신 3차 접종을 한 후,

졸린 느낌과는 조금 다른.. 의식의 소실 같은 느낌이 반복되는 기면증 같은 3일을 보냈다.


누군가 애타게 불렀어도 깨어나지 못하는 상태였을 거라 짐작되는 죽음 같은 잠에 빠져들고(sleep attack) 지척에 아이 목소리가 들리는데도 입술조차 움직일 수 없었던 가위눌림(sleep paralysis)이 있었다. 이것도 접종으로 인한 이상반응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상적인 경험은 아니었다.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신 접종 후에 미리 진통제를 구입해 두려고 방문한 약국에서 상비약을 종류대로 과하게 사서 귀가했다.

가정상비약 사재기 현상이 유행이라 한다.



봄이 오려는지 동네 길고양이들의 합창이 자주 들린다. 올해도 귀여운 아기 고양이들을 보게 될 거라는 뜻. 산 아래 마을이라 길고양이들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어서 눈 내린 아침이면 작은 발자국들이 새벽부터 분주하게 오고 간 흔적들이 정겹다.


봄 학기에 아이의 갭 이어(Gap year)를 준비하고 있다. 오미크론이 정점에 이를 무렵 개학을 맞이할 아이를 위해 언스쿨링(Un-Schooling)을 준비하게 되었다. 코로나-19 이후 한시적으로 가정학습을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제도가 시행되었는데 연간 수업 일수의 30% 내외로 운영되고 있다. 오미크론이 지나가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될 때까지 가정학습을 하기로 아이와 마음이 통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기간 동안 집에서 무엇을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해보자.

우연히 시작된 언스쿨링을 갭 이어로 당당하게!


올해 초3이 되는 아이는 코로나 학번(?)으로, 생애 처음 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코로나-19가 시작되어 학교에 가지 않는 2020년의 3월을 경험했었다.

역사상 처음이었을 그 해 3월의 학교 휴업.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학교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아이의 갭 이어로 생각하자며 코로나-19 학교의 휴업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리에게 그 시간이 불편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내가 휴직이 가능했던 직종에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일하는 부모와 아이들이 그 시간을 힘겹게 보냈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란 걸 믿지만 팬데믹의 교훈은 왜곡되지 않은 역사로 기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초1 때의 언스쿨링과 초3이 된 새봄의 언스쿨링이 차이가 있다면, 그 땐 휴직 중이었던 엄마와 온종일 함께였고 이번엔 아이의 책임감이 필수인 나홀로 언스쿨링에 가깝다는 점이다. 아이를 방임한 부모라고 아동학대로 신고해도 좋다. 우리 사회가 내게 돌을 던질만큼 잘한 게 있는지 한번 따져보자는 도발이라면 기꺼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어쩌면 아이는 만 2년간의 코로나 시대를 사는 동안 학교는 매일 가는 것이고 쉬는 시간엔 우유를 먹고 봄 가을엔 소풍을 가는 흔한 학교 생활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학교가 꼭 어때야 한다는 것도 어쩌면 철수와 영희가 나오는 교과서적인 사고인지도 모르겠다.


이맘때쯤이면 신학기 노트와 연필과 실내화와.. 준비물을 구입하며 분주하게 보냈을 텐데, 이번엔 언스쿨링을 계획하느라 조금 다른 많은 것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이가 읽을 많은 책들,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용기와 절제와 모험가의 마음.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 때까지.

언스쿨링이라 쓰고 갭 이어라고 읽다.


D-15
언스쿨링Un-Schooling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