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대한 소고小考

등교선택권

by 릴리에

살다 보면 민원인이 될 때가 있다.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길을 걷다 로드킬 당한 작은 동물을 보게 되면 120 다산콜에 신고를 한다. 민원인의 이름과 연락처를 기재해야 접수가 되는 방식인데, 실명이 맞는지 허위 번호는 아닌지 확인 장치까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본인확인인증 절차가 없더라도 내 이름을 걸고 민원을 요구하는 일에 소극적일 이유는 없다. 로드킬 당한 작은 생명의 최후가 존엄하게 수습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의 수고로움 끝에 거리가 다시 평화를 되찾게 되면 이 슬기로운 관료 시스템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문제는 민원의 사례가 작지 않은 것이 될 때, 슬기로울 거라 기대했던 시스템이 온갖 모순과 부조리를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관료제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에서 가장 흔하게 남용되는 면피성 답변으로, “소관이 아니다”라는 표현이 있다.

지금의 코로나-19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이제 누구도 소관이 아닌 어떤 것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책임론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신학기 개학을 보름 정도 남겨둔 오늘까지도 아이가 3월 2일에 학교를 어떻게 가는지, 가긴 하는지, 안내받은 것이 전혀 없어 준비조차 할 수가 없다. 학교도 알지 못하기에 안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굳이 물어보지 않는다. 뉴스를 통해 간헐적으로 접하는 보도자료 이상의 결정된 내용이 아직 없고, 급하게 만들어진 것들을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아이를 키우다 보니 만 2년간 등교 방침에 관해 소관 부처에 많은 문의를 했었다. 대체로 나의 많은 질문들은 큰 하나의 주제로 수렴될 수 있을 것 같다.

등교선택권을 달라는 입장이다.

초중등교육법을 근거로 소관부처에 의해 이 주장은 완곡하게 반려되었다. 살면서 법이나 제도가 일순간에 안 되던 것에서 되는 것으로 급변하는 것을 여러 번 봐와서 그런지 수긍이 잘 되지 않았다. 재난 현장을 방문한 vip의 긴급 지시로 일이 되는 방향으로 검토해보라 했다던 에피소드는 적지 않다. 소관부처에 검토라도 해달라는 취지로 의견을 낸 것이기에, 검토조차 해보려 하지 않는 관료주의에 약간의 환멸을 느꼈던 것 같다.

탈학교론이나 급진적인 실천과는 거리가 먼 소시민적 학부모인 나는, 가능하면 제도권 안에서 새로운 것을 꿈꾸고 싶었다. 아이의 학교생활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입장이지만 학교가 언제까지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시적인 것이든 미래시대를 준비하는 방식이든 등교선택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볼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자 비로소 학교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시작되었고, 이미 많은 학교에 대한 고민들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으며 당연히 존재했던 것들을 근본부터 성찰했던 급진적인 연구자들이 많았다는 것 또한 감사하게 되었다. 다만 우리 사회가 그 논의들을 이어가고 확장해 나갔으면 좋았을 거라는 많은 아쉬움은 남는다. 아이들의 등교 문제를 겨우 소관부처의 성과주의 정도로 접근하려는 “그들의 일하는 방식”이 실망스럽다.

인생을 결정론적으로 보지 않기에, 학교를 가고/안 가고 자체가 아이의 생애 주기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다. 학교를 꼭 매일 가야 한다는 사고 자체도 상대적인 개념이어서, 과거엔 토요일에도 학교를 갔었고 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 아이들에게도 놀토가 생겼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주 4일제가 시행되면 학교를 주 4일만 가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전면등교를 소관부처의 성과 정도로 여기는 방식에 대해 복고주의 사고라 비판한다면 거센 교육전문가들의 반격을 맞게 될까. 그들이 전문가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교육이 아닌 타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무려 교육 부처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 또한 안타까운 현실이기에 이 시점에서 너무 확신에 찬 주장을 하는 것도 독선일 수 있다.

학위논문을 준비하듯 아이의 갭 이어Gap year를 잘 준비해서 도와주고 싶었다. 언스쿨링Un-Schooling 방식의 갭 이어를 시작하게 된 우리의 결정을 합리화하는 과정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수많은 선택에서 어떤 레퍼런스를 취하고 어느 조언에 귀를 기울이든 선택의 관리자는 스스로이기 때문에 많은 노력과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의무교육에 해당되는 초등학교 과정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결정은 단순하지가 않다. 아동복지법에서부터 초중등교육법을 이해해야 하고, 자녀를 부모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존중하지만 동시에 미성년자의 보호자로서 때때로 입장을 취해야 하는 무겁고도 외로운 길이 부모의 숙명 같다.


소수일지는 모르지만 등교선택권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해 일종의 타협안으로 생각되는 교육부처의 조치가 있었는데, 코로나-19 상황에서 등교를 주저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출석인정 결석의 범위를 조금 확대해준 것이다. 연간 수업일수의 30% 내외에서 가정학습을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것으로, 초등학교의 경우 연간 57일 정도를 등교하지 않아도 출석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합법적인 언스쿨링이 가능한 57일간의 시간들을 아이와 함께 소중한 갭 이어Gap year로 보내기 위해 기록하고 퇴고하는 일, 학교에 대한 소고小考.


D-14
언스쿨링Un-Schooling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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